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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매대 위 고단백 제품… 비만약, 식품 산업구조 이미 바꿔”

조선비즈 박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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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매대 위 고단백 제품… 비만약, 식품 산업구조 이미 바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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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훈 - 약사·푸드라이터, 서울대 약학, 캐나다 온타리오주 약사, 미국 미시간주 약사, 현 휴베이스 본부장,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모르는소식의 과학' 저자 /사진 정재훈

정재훈 - 약사·푸드라이터, 서울대 약학, 캐나다 온타리오주 약사, 미국 미시간주 약사, 현 휴베이스 본부장,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모르는소식의 과학' 저자 /사진 정재훈



“글루카곤 유사 펩티드-1(GLP-1) 계열 비만 치료제는 이미 한국의 식품 산업구조를 바꾸고 있다. 편의점 냉장고부터 매대까지 단백질 상품이 즐비하다. GLP-1 비만약은 덜 먹게 하는 거지, 아예 먹지 않게 하는 것이 아니다. 무엇을 먹을지가 바뀌고 있는 것이다.”

정재훈 약사·푸드라이터는 최근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GLP-1 비만약의 체중 감량과 성인병 예방 효과를 동시에 언급하며 “혈압약을 매일 먹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 비만약을 주기적으로 쓰는 건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있는데, 부작용이 있는 고지혈증약을 매일 먹는 것과 GLP-1 비만약을 쓰는 게 뭐가 다른 건지를 따져봐야 한다” 고 했다.

비만율이 낮은 한국에서 GLP-1 비만약의 오남용을 우려하는 시각에 대해 “GLP-1 비만약의 장점은 체중 감량뿐 아니라 심혈관계 위험을 줄이고, 염증도 감소시킨다는 점”이라며 “체중 관리 이상의 효과가 있다”고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GLP-1 비만약이 기존 향정신성 식욕 억제제와 비교해 어떤 우위를 보이나.

“이전 비만 치료에 쓰였던 향정신성 식욕 억제제와 기전 자체가 다르다. GLP-1 제제는 기본적으로 위장에 작용한다. 주사를 맞으면 더부룩하고, 메스껍고, 구토까지 나와 더 이상 먹을 수 없게 된다. 음식에 대한 갈망이나 배도 안 고픈데 먹고 싶다는 심리를 줄인다. 그런 기전으로 봤을 때, 사람을 흥분 상태로 만들어 먹지 못하게 하는 기존 식욕 억제제와 다르다. 기존 향정신성 식욕 억제제는 사람의 공격성을 높이고, 불안과 스트레스를 준다. 잠도 오지 않으며, 환각과 중독성 등 오남용 가능성이 크다.”

더 효과적으로 살을 뺄 수 있다는 건가.

“GLP-1 비만약을 써도 체중 감량에 실패하는 10~15%가 있다. 포만감을 주는 방식으로 살을 빼려 해 봤자, 궁극적인 식욕을 누르지 못하면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기존의 향정신성 식욕 억제제가 나을 수도 있다.”

먹는 즐거움을 차단하는 방식에 문제는 없나.

“저널리스트 요한 하리가 쓴 ‘매직 필’이라는 책에는 GLP-1 비만약 관련한 여러 인터뷰가 나온다. 여길 보면 경험적으로 먹는 즐거움이 사라질 것이라고 단정하는 말이 많은데, 조금 지나친 생각이 아닌가 싶다. 위고비를 맞는다고 먹는 즐거움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햄버거나 피자가 그대로 맛있다. 단지 먹는 양이 줄어드는 것이다. 먹는 즐거움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건 뇌 과학적으로 봤을 때 근거가 없는 얘기다. 과거 비만 치료에 사용했던 암페타민, 펜터민 등이 뇌에 영향을 주는 것이다.”


한국인은 다이어트 욕구가 강하다. 정상 체중이 위고비를 맞아도 될지.

“사실 이에 대한 연구 자료는 아직 많지 않다. GLP-1 비만약은 대부분 고도비만이나 과체중에 사용한다. 정상 체중이 쓴다고 했을 때, 어떤 부작용이 있을지 확실하게 알지 못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부작용이 고도비만 사용자보다 더 심할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본다. 미국에서도 정상 체중인 사람이 GLP-1 비만약을 사용한 경우가 많았는데, 실제로도 부작용의 경중이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오남용 가능성은.

“미국도 비만인 사람만 이 약을 맞은 게 아니다. 할리우드 스타들을 보라. 그들이 뚱뚱해서 위고비를 맞은 건 아니지 않나. GLP-1 비만약의 장점은 체중 관리 이상의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심혈관계 위험을 줄이고, 염증도 감소시킨다. 혈압약을 매일 먹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 비만 치료제를 주기적으로 쓰는 건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평생 복용해야 하는 고지혈증약 스타틴을 매일 먹는 것과 GLP-1 비만약을 쓰는 게 뭐가다른 건지를 따져봐야 한다.”

소셜미디어(SNS)를 통한 ‘성지’ 공유 등이 오남용을 막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오남용을 완벽히 막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보다 어떤 문제가 얼마나 생길지가 더 중요한데, 펜터민 같은 약과 GLP-1 비만약은 근본적으로 다르므로 오히려 긍정적인 변화를 전망해 본다. 웨이트워처스라는 식단 관리 서비스 회사가 시퀀스라는 원격 의료 플랫폼을 인수한 게 대표적이다. 시대가 바뀌고 있다는 거다. 따라서 향후 GLP-1 비만약의 오남용보다 어떤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을지를 봐야 한다. 미국에서는 GLP-1 비만 약을 우려하는 기사에 ‘조용히 해, 위고비 덕분에 먹던 우울증·혈압약 모두 끊었으니까’ 라는 댓글이 달리기도 한다.”


미국에서는 GLP-1 비만약의 경제적 효과를 분석하기도 한다.

“미국에 불어닥친 경제적 효과가 한국에서도 재현될 것으로 생각한다. 국내에서도 최근 식품 업계가 고단백·소포장 트렌드를 밀고 있는데, 이것이 GLP-1 비만약과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 만일 국내에서도 GLP-1 비만약 사용이 증가하면, 이에 맞춰 고단백·소포장 트렌드도 가속할 것이다. 이 방향이 같다 보니, 가속 정도가 더욱 거세게 나타난다.”

가공식품과 배달 음식이 중심인 한국 식품 산업의 구조도 바뀔 것이라는 건가.

“이미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고 본다. 미국의 경우 치즈 등을 만들면서 그냥 버려졌던 유청 단백질이 새로운 캐시카우(현금 창출원)가 되고 있다. 덜 먹는 트렌드가 확산하면서 치즈 판매 감소로 손실이 커졌는데, 이 손실을 고단백 선호 흐름을 탄 유청 단백질로 메우고 있는 것이다. 고품질 단백질은 정말 비싼 원료다. 한국도 이미 편의점을 가보면 냉장고부터 매대까지 단백질 식품이 즐비한 걸 볼 수 있다. 롯데칠성음료가 에너지 음료 핫식스에 단백질을 더해 출시했는데, 더 비싸게 팔 수 있는 방법을 식품 업계가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GLP-1 비만약은 덜 먹게 하는 거지, 아예 먹지 않게 하는 것이 아니다. 어쨌든 인간은 먹어야 살 수 있는데, 무엇을 먹을 건지가 바뀌는 거다.”

GLP-1 비만약은 비싸다는 게 단점이다.

“비용 문제는 현실이지만, 가격이 점진적으로 내려갈 것이다. 위고비부터 특허 만료 이슈가 있다. 또 미국에서도 당국이 약가를 내리라고 한다. GLP-1 비만약의 적절한 가격이 얼마인지에 대한 논의가 있다. 튀르키예에서는 10만원대에 팔리기도 하고, 최근 연구 등에서는 한 달 제조원가가 5달러(약 7000원)에 불과하다고 한다. 노보 노디스크, 일라이 릴리도 어떻게든 비만 환자뿐 아니라 건강한 사람에게도 GLP-1 비만약을 사용할 수 있도록 저변을 넓히는 게 목표다. 여러 대사 질환을 해결할 수 있다는 이유로 의료보험을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펼친다. 그렇게 되면 가격은 내려갈 여지가 있다. 다만, 지금 상태에서 보험을 적용한다면 재정적 충격이 클 것이다. 그 때문에 미국에서 정치적으로 약가 인하에 대한 얘기를 계속하는 것이다.”

Plus Point
위고비, 마른 당뇨에도 효과 있나

체질량지수(BMI)가 정상 범위(18.5~22.9)인 이른바 ‘마른 당뇨’ 환자에게도 위고비(세마글루타이드)나 마운자로(티르제파타이드) 같은 GLP-1 비만약은당뇨 치료제로 작용한다. GLP-1 비만약은 췌장의 베타 세포 기능을 보조하고, 인슐린 저항성을 개선하기 때문이다. 정재훈 약사는 “전문의 처방이 있다면 당연히 당뇨 치료제로서 효과가 있다”고 했다.

기존 제1차 당뇨 치료제인 메트포르민이나 DPP-4 억제제가 당화혈색소(HbA1c)를 약 0.5~1.0%포인트 낮추는 데 반해, GLP-1 비만약의 경우 1.5~2.0%포인트 이상 강하 효과가 보고돼 있다. 특히 인슐린 분비 촉진 폴리펩타이드(GIP) 수용체까지 작용하는 마운자로는 기존 GLP-1 단일 제제(위고비)보다 더 뛰어난 혈당 조절 능력을 보인다고 한다.

다만 마른 당뇨 환자의 GLP-1 비만약 사용에는 몇 가지 주의점이 있다. 먼저 GLP-1 비만약의 체중 감량 효과가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는데, 체지방이 적은 환자가 체중을 급격히 줄이면 근육량까지 소실되는 근감소증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마른 당뇨 환자는 통상적인 ‘비만 치료 기준(BMI 27 이상 + 동반 질환)’에 해당하지 않는다. 따라서 동일 성분이라도 비만 치료제로 허가된 위고비보다 당뇨 치료 목적으로 승인된 오젬픽 등을 전문의 처방에 따라 사용하는 게 원칙이다. 정교한 용량 조절과 모니터링도 필수다. 비만 환자를 대상으로 설계된 고용량 요법보다 혈당 조절에 최적화된 저용량부터 시작해 체중 변화를 관찰하는 것이 권장된다.



박진우 기자(nicholas@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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