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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재발-전이’ 모두 극복한 비결은 환자 의지와 노력[병을 이겨내는 사람들]

동아일보 김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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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재발-전이’ 모두 극복한 비결은 환자 의지와 노력[병을 이겨내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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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열 한양대병원 교수-신장암·전이 폐암 김양순 씨

무통증 혈뇨 후 신장암 3기 진단… 한쪽 콩팥을 들어내고 추적 관찰

9개월 뒤 폐에서 암 여러 개 발견… 힘든 항암, 죽 끓여 먹으며 버텨

치료 잘 돼 6개월 만에 폐암 소멸… 10년 후 다른쪽 콩팥 암도 이겨내
김양순 씨(오른쪽)는 16년 전 신장암에 걸린 후 전이와 재발을 거치며 암과 오래 싸워 지금은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다. 김 씨를 치료한 박성열 한양대병원 비뇨의학과 교수는 “항암 치료를 포함해 힘든 치료 과정을 환자 스스로 극복하겠다는 의지와 적극적인 노력이 비결이다”라고 강조했다. 한양대병원 제공

김양순 씨(오른쪽)는 16년 전 신장암에 걸린 후 전이와 재발을 거치며 암과 오래 싸워 지금은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다. 김 씨를 치료한 박성열 한양대병원 비뇨의학과 교수는 “항암 치료를 포함해 힘든 치료 과정을 환자 스스로 극복하겠다는 의지와 적극적인 노력이 비결이다”라고 강조했다. 한양대병원 제공


2008년, 당시 50대 후반의 김양순 씨(75)는 모처럼 자녀들과 거제도로 여행을 떠났다. 몸 상태는 썩 좋지 않았다. 급기야 현기증이 일더니 식사도 못 할 지경이 됐다. 여행을 중단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잠을 잔 후에는 피로가 좀 풀리는 것 같았다. 다만 소변을 봤을 때 변기 물이 빨개진 게 맘에 걸렸다. 혈뇨다.

김 씨는 평소 당뇨병 약을 처방받던 동네 의원에 갔다. 의사는 큰 병원에 가 볼 것을 권했다. 그해 11월, 김 씨는 박성열 한양대병원 비뇨의학과 교수를 만났다.

격렬한 운동 후 소변에 피가 일시적으로 섞여 나올 수 있다. 충분히 쉬면 사라진다. 이런 경우를 제외하면 혈뇨는 신장(콩팥), 방광, 전립샘 질환 같은 비뇨기계 질환 증세일 확률이 높다. 특히 통증이 없는 혈뇨가 반복되는 게 가장 심각할 수 있다. 암까지도 의심해야 한다.

● 신장암 3기, 한쪽 콩팥 들어내

박 교수는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복부 CT(컴퓨터 단층) 검사에서 왼쪽 콩팥에 15cm 정도 되는 암 덩어리가 발견됐다”고 했다. 콩팥을 다 덮었는데, 다행히 다른 장기로는 전이되지 않았다. 신장암 3기였다.

암이 이토록 커질 때까지 김 씨는 전혀 인식하지 못했다. 신장암으로 인한 혈뇨의 경우 통증이 없을 때가 많은 탓이다. 박 교수는 “40세 이상이며 무통증 혈뇨가 나온다면 일단 비뇨기계 종양을 의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게다가 김 씨처럼 변기 물 색깔이 변할 정도라면 당장 병원에 가는 게 옳다.

암이 너무 크면 보통은 항암 치료로 크기를 줄인 후에 수술한다. 신장암은 다르다. 항암 치료 효과가 작아 곧바로 수술을 통해 콩팥을 제거하는 것을 표준 치료로 삼는다. 다만, 최근에는 16년 전과 달리 신장암에 효과적인 표적항암제나 면역항암제가 많이 출시돼 상황에 따라 항암 치료를 하기도 한다.


김 씨의 경우 암 덩어리가 너무 커서 복강경 수술이 어려웠다. 부득이하게 배를 여는 개복 수술을 했다. 왼쪽 콩팥을 통째로 들어냈다. 약 3시간 만에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일주일 정도 더 입원한 상태로 경과를 지켜본 후 퇴원했다.

김 씨의 신장암 치료는 사실상 이것으로 끝났다. 이후 3개월 혹은 6개월 단위로 재발이나 전이를 살피는 추적 관찰만 시행했을 뿐이다. 요즘에는 재발이나 전이를 예방하는 차원에서 면역항암제를 투입하기도 한다. 하지만 16년 전에는 그런 치료 절차가 없었다.

● 폐로 전이… 6개월 만에 사라져

암이 다른 장기로까지 전이되면 4기로 진단한다. 박 교수는 암이 너무 커서 전이 가능성을 염두에 뒀다. 다만 전이가 발견되지 않아 3기로 결정된 것이다. 신장암 수술을 끝내고 9개월이 흘렀다. 2009년 8월, 김 씨의 폐에서 작은 암 여러 개가 발견됐다. 원격 전이가 발생한 것. 암은 4기로 조정됐다.


신장암은 전이와 재발이 잦은 암으로 악명이 높다. 특히 수술 후 2년 이내에 그렇게 될 확률이 높다. 김 씨 또한 3기였기에 재발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박 교수는 “아주 미세해서 첨단 장비로도 발견할 수 없는 ‘미세 암세포’가 뒤늦게 자라면 재발 혹은 전이가 되는데, 김 씨가 그런 사례였던 것 같다”고 추측했다.

신장암은 간이나 폐로 잘 전이되는 경향이 있다. 신장암 세포는 새로운 혈관을 잘 만든다. 게다가 콩팥에서 나온 혈액은 폐로도 흐른다. 이러니 신장암 세포가 혈관을 타고 간과 폐로 쉽게 이동하는 것이다.

폐로 암이 전이되면 항암 치료가 우선이다. 다행히 효과 좋은 표적항암제가 출시돼 있었다. 게다가 건강보험이 적용돼 치료비도 아낄 수 있었다. 곧바로 항암 치료에 들어갔다. 따로 입원하지는 않았다. 약을 처방받아 매일 아침과 저녁 두 차례 복용하는 방식이었다.


항암 치료에 돌입하고 아주 짧은 시간에 효과가 나타났다. 3개월 만에 폐암 크기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다시 3개월이 지난 후 CT 검사를 했다. 폐암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안전을 위해 그 후 6개월 동안 항암 치료를 이어갔다. 두 차례 추가 검사에서도 폐암은 발견되지 않았다. 물론 추적 관찰은 해야 하지만, 사실상 모든 치료가 끝났다. 박 교수는 “항암 치료 효과가 이렇게 좋은 경우는 흔하지 않다. 김 씨가 정말 열심히 치료받았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 10년 만에 재발한 신장암도 이겨내

두 차례 암을 이겨냈고, 건강도 되찾았다. 오랜만에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하지만 다시 시련이 찾아왔다. 처음 신장암을 발견하고 딱 10년이 지난 2018년 11월이었다. 이번엔 오른쪽 콩팥에서 암이 발견됐다. 첫 번째 신장암과 똑같은 종류였다. 10년 만에 암이 재발한 것이다.

김 씨는 낙담했다. 유독 운이 나빠서 그런 걸까. 신장암을 영영 극복할 수 없는 걸까. 그렇지는 않다. 박 교수는 “신장암은 재발이 잦다. 1기에 발견돼 치료를 끝냈는데도 10년 혹은 20년이 지난 후 재발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특히 고령이라면 면역력이 떨어져 신장암이 재발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신장암은 ‘완치’로 규정하는 5년이 지난 후에도 지속적으로 추적 관찰해야 한다.

추적 관찰 과정에서 신장암이 발견되면 보통은 크기가 작은 1기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처가 수월하다. 콩팥은 살리고 암 조직만 떼어낼 수 있다. 암 덩어리가 커진 상태로 뒤늦게 발견하면 이런 대처가 어려워질 수 있다. 신장암 환자는 5년이 지난 후라도 정기적으로 검사를 받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평생’ 추적 관찰해야 한다.

김 씨도 1기였다. 암 크기는 약 2cm였다. 콩팥은 살리고 암만 제거하는 수술을 무사히 끝냈다. 항암 치료는 추가로 받지 않았다. 이로써 세 번째 암 치료를 끝냈다. 물론 추적 관찰을 계속하고 있다. 처음에는 3개월 단위로, 다음에는 6개월 단위로 검사를 받았다. 지금은 1년 단위로 검사를 받는다.


● ‘정석대로 투병’이 중요

김 씨는 “정말 건강해졌다”고 말했다. 매주 네댓 번은 집 근처 산자락에 있는 공원에서 1시간씩 걷는다. 스퍼를 집에 들여놓아 틈틈이 하체 근력 운동도 한다. 음식도 가리지 않고 먹는다. 다만 당뇨병 때문에 혈당을 관리해야 한다. 여러 곡물을 섞은 밥을 먹는다. 박 교수는 “암 환자라고 해서 먹는 것을 가려야 할 필요는 없다. 영양 균형을 맞추고 충분히 먹어도 된다”고 말했다.

병을 이겨 내고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비결을 물었다. 박 교수는 “환자가 ‘정석대로’ 관리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전체 치료 과정에서 의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10% 정도이고, 나머지는 병을 이겨 내려는 환자의 의지와 철저한 관리라는 것. 박 교수는 “김 씨는 의사의 처방과 지시를 항상 100% 이행하려고 했고, 덕분에 치료 효과도 좋았다”고 말했다. 전이된 폐암을 치료할 때 놀라울 만큼 항암 효과가 컸던 것도 김 씨 자신의 노력 때문이라고 했다.

실제로 항암 과정은 다시 생각하기 싫을 정도로 힘들었다. 손바닥과 발바닥에서 진물이 났다. 입 주변도 헐었다. 머리카락도 뭉텅이로 빠졌다. 항암 치료를 견뎌 내려면 잘 먹어야 하는데 음식을 먹을 수가 없었다. 물도 넘어가지 않았다. 간신히 먹었나 싶으면 잠시 후 다 토해 냈다. 서 있을 기운도 없었다.

그래도 매일 오전 10시가 되면 산에 가서 걸었다. 정오가 되면 집에 돌아와 죽을 끓여 먹었다. 흰죽, 채소죽, 전복죽…. 죽밖에 못 먹으니 재료라도 바꿔 만들었다. 그나마 죽이라도 먹어 항암제를 견뎌 냈다. 박 교수는 “항암 치료가 힘들어 중단하거나 용량을 줄이는 환자가 많다. 하지만 김 씨는 그렇게 힘들어 하면서도 정량을 유지했고, 단 한 차례도 중단하지 않았다. 치료 효과가 좋은 게 그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앞으로도 추적 검사를 잘 받으며 건강을 유지할 것을 당부했다. 김 씨는 입원 당시에 아침저녁으로 병실을 찾아 독려한 박 교수를 떠올리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두 사람은 의사와 환자로 17년째 이어 가는 인연이야말로 가장 소중한 것이라며 웃었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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