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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톡톡] ‘제미나이’ 역전극 뒤에 이 사람 있다… 챗GPT 독주 끝낸 ‘알파고의 아버지’

조선비즈 이경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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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톡톡] ‘제미나이’ 역전극 뒤에 이 사람 있다… 챗GPT 독주 끝낸 ‘알파고의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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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손민균

그래픽=손민균



불과 2~3년 전만 해도 구글은 생성형 인공지능(AI) 경쟁에서 ‘뒤처진 공룡’으로 불렸습니다. 2022년 말 오픈AI가 챗GPT를 공개하자, 검색과 광고로 성장해 온 구글의 사업 모델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위기감이 시장과 내부를 동시에 덮쳤습니다. “구글의 시대는 끝났다”는 평가까지 나왔고, 급하게 내놓은 챗봇 바드(Bard)는 부정확한 답변 논란으로 신뢰를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지난해 하반기를 기점으로 판도가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챗GPT 독주 체제에 균열이 생기고, 구글의 제미나이가 빠르게 존재감을 키운 것입니다. 최근 삼성증권은 최신 모델 ‘제미나이 3.0’이 최고 성능 모델로 평가받으면서 챗GPT 중심의 AI 판도를 역전했다고 분석했습니다. 실제 글로벌 AI 성능 평가 플랫폼인 ‘LM아레나’에서 제미나이 3.0은 오픈AI의 GPT-5.1을 제치고 종합 1위를 차지했으며, 고난도 추론 능력을 측정하는 인류마지막시험(HLE)에서도 정답률 37.5%로 정상에 올랐습니다. 변화의 한가운데에는 ‘알파고의 아버지’로 불리는 데미스 허사비스가 있습니다. 13세에 세계 체스 랭킹 2위에 오른 천재이자 게임 개발자, 뇌과학자를 거쳐 2024년 노벨화학상까지 수상한 그는 이제 구글 AI 전략의 ‘야전 사령관’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구글 내부의 전환점은 2023년이었습니다. 구글은 연구 조직인 딥마인드와 구글 브레인을 통합해 ‘구글 딥마인드’를 출범시켰고, 전권을 허사비스에게 맡겼습니다. 이어 2024년 말에는 제미나이 앱 조직까지 딥마인드 산하로 편입되면서, 허사비스는 연구·개발·서비스를 관통하는 수직 계열화 권한을 확보했습니다. 연구 조직과 제품 조직이 따로 움직이던 기존 구조를 해체하고, 모델 개발부터 서비스 출시까지 하나의 지휘 체계로 묶겠다는 판단이었습니다.

이 체제에서 본격적으로 힘을 받은 결과물이 바로 제미나이입니다. 제미나이는 단순히 챗GPT를 따라잡겠다는 전략이 아니라, 구글이 가진 체급을 전면에 활용하는 방식으로 진화했습니다. 구글이 수십 년간 검색·광고·유튜브 등을 통해 축적해 온 방대한 비정형 데이터와 사용자 행동 패턴은 제미나이만의 독보적인 학습 자산이 됐습니다. 여기에 네이티브 멀티모달 구조와 자체 AI 반도체 TPU ‘아이언우드’를 활용한 연산 비용 통제까지 결합되며, 성능과 확장성을 동시에 끌어올렸습니다. 특히 최근 애플이 아이폰의 생성형 AI 파트너로 제미나이를 낙점하고, 구글 모회사 알파벳이 시가총액 세계 2위(약 4조달러)를 탈환한 것은 구글의 기술력이 시장의 ‘표준’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로 평가됩니다.

시장 반응도 빠르게 달라지고 있습니다. 글로벌 트래픽 분석을 종합하면, 2025년 하반기 이후 챗GPT의 웹 트래픽 성장세는 눈에 띄게 둔화된 반면, 제미나이는 비교적 안정적인 이용자 증가 흐름을 보이고 있습니다. 구글은 제미나이 월간 활성 이용자 수(MAU)가 2025년 7월 4억5000만명에서 같은 해 10월 6억5000만명으로 3개월 만에 44% 이상 늘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특히 제미나이가 검색, 지메일, 안드로이드 운영체제 등 기존 구글 서비스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앰비언트 AI’ 전략을 택한 점이 주효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연합뉴스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연합뉴스



이 같은 변화는 경쟁사에도 직접적인 압박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오픈AI는 제미나이 3.0의 추격이 가시화되자 내부에 ‘레드코드’를 발령하고, 지난해 12월 성능을 보강한 ‘GPT-5.2’를 서둘러 조기 투입했습니다. 샘 올트먼 CEO는 쇼핑 등 AI 에이전트 개발 프로젝트를 잠시 중단한 채 챗GPT 수성에 전사적 역량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다만 1조4000억달러에 달하는 인프라 투자로 인해 흑자 전환 시점이 2031년 이후로 늦춰지는 등 재정 리스크가 커지면서, 자체 인프라를 갖춘 구글과의 장기전에서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허사비스는 이 경쟁을 단기적인 챗봇 싸움으로 보지 않습니다. 그는 여러 공개 발언에서 오픈AI 등이 주장하는 ‘박사급 지능’에 대해 “근거 없는 소리”라고 일축하며, AI는 단기적으로 과대평가됐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여전히 저평가돼 있다고 강조해 왔습니다. 진정한 범용인공지능(AGI)에 이르기까지는 여전히 핵심적인 간극이 남아 있다는 인식입니다. 동시에 그는 ‘알파폴드’처럼 AI가 과학과 산업 전반의 난제를 해결하는 도구로 확장돼야 한다는 방향성을 분명히 해왔습니다.

이 철학은 구글의 사업 전략과도 맞물립니다. 구글은 검색과 광고라는 기존 수익원 위에 생성형 AI를 결합하는 동시에, 클라우드·데이터센터·AI 반도체까지 아우르는 ‘풀스택 AI 기업’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외부 인프라에 의존하는 경쟁사들과 달리, 연산 자원과 서비스 유통망을 동시에 통제할 수 있다는 점은 장기전에서 결정적인 차별 요소로 평가됩니다.

결국 제미나이의 역전극은 단순한 기술 개선의 결과라기보다, 조직 구조와 전략 방향을 바꾼 선택의 축적에 가깝습니다. 생성형 AI 패권 경쟁은 이제 데미스 허사비스가 그린 설계도를 중심으로 다시 전개되고 있습니다.

이경탁 기자(kt87@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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