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검색
아주경제 언론사 이미지

【중국을 제대로 알자 ④】  중국인은 개인보다 '관계'를 먼저 본다

아주경제 허찬욱 e경제일보 부장
원문보기

【중국을 제대로 알자 ④】  중국인은 개인보다 '관계'를 먼저 본다

서울맑음 / -3.9 °
중국의 애국주의는 감정이 아니라 시스템이다[사진=연합뉴스]

중국의 애국주의는 감정이 아니라 시스템이다[사진=연합뉴스]



[이코노믹데일리] 중국 사회를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키워드를 하나만 꼽으라면 ‘관계’다. 중국에서는 개인의 권리나 명확한 규칙보다 인간관계가 먼저 작동한다. 법과 제도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실제 삶의 현장에서는 관계가 제도를 앞서는 경우가 훨씬 많다. 이 구조를 이해하지 못하면 중국 사회는 늘 비합리적이고 불투명한 공간처럼 보일 수밖에 없다.

한국 사회 역시 인간관계를 중시하지만 그 작동 방식은 중국과 다르다. 한국의 관계는 대체로 제도 안에서 형성되고 작동한다. 반면 중국에서는 제도가 충분히 신뢰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관계가 제도를 보완하거나 대체한다. 중국 사회에서 관계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중국인이 관계를 중시하는 이유는 문화적 습관 이전에 역사적 경험에 뿌리를 두고 있다.

중국은 오랜 기간 중앙 권력이 강했지만 행정과 법 집행은 지역과 개인의 재량에 크게 의존해 왔다. 법은 존재했으나 언제나 공정하게 작동하지 않았고 제도는 있었지만 모든 상황을 해결해 주지 못했다. 이런 환경에서 사람들은 법보다 사람을 믿는 방식으로 살아남아야 했다. 관계는 불확실한 제도 속에서 자신을 보호하는 가장 현실적인 안전망이었다.

이런 배경 속에서 형성된 개념이 바로 ‘꽌시(关系)’다. 한국에서 꽌시는 흔히 연줄이나 인맥, 때로는 편법의 다른 이름으로 오해된다. 그러나 중국 사회에서 꽌시는 단순한 인맥을 넘어선다. 꽌시는 신뢰의 축적이며 상호 책임에 대한 암묵적 약속이다. 한번 형성된 관계는 일회성 호의가 아니라 장기적인 의무 관계를 전제로 한다.

중국에서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상대방과 일정한 책임을 공유한다는 의미다. 도움을 받으면 언젠가는 반드시 돌려줘야 하고 관계를 깨뜨리면 사회적 신뢰를 잃는다. 중국 사회에서 평판은 개인의 중요한 자산이다. 그래서 중국인은 관계를 가볍게 맺지 않고 한번 맺은 관계를 쉽게 끊지 않는다. 관계의 유지 여부는 개인의 신뢰도와 직결된다.

이 구조는 중국 비즈니스를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많은 한국 기업이 중국 시장에서 실패하는 이유는 계약서에 조건을 충분히 명시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관계 관리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한국 기업은 계약 체결을 거래의 종료로 인식하지만 중국에서는 계약이 관계의 시작에 불과하다.


중국에서는 계약서보다 관계가 우위에 놓이는 경우도 적지 않다. 관계가 유지되면 계약서에 없는 문제도 협의를 통해 해결할 수 있지만 관계가 깨지는 순간 계약서의 문구 하나하나가 무기가 된다. 이는 법치가 부재해서가 아니라 법이 모든 상황을 해결해 주지 못한다는 현실적 인식에서 비롯된 행동이다.

중국인이 개인보다 관계를 중시하는 또 다른 이유는 집단 중심 사고방식이다. 중국 사회에서 개인은 언제나 어떤 집단에 속한 존재로 인식된다. 가족, 지역, 학교, 조직이 개인의 정체성을 규정한다. 개인의 판단과 행동 역시 집단의 맥락 속에서 평가된다. 이런 구조에서는 개인의 권리 주장보다 관계의 안정이 우선시된다.

중국에서 공개적인 갈등을 피하려는 문화 역시 관계 중심 사고에서 나온다. 중국인은 갈등을 해결하기보다 갈등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경향이 강하다. 체면을 중시하는 문화는 단순한 예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 유지를 위한 전략이다. 공개적인 비판은 상대방의 체면을 손상시키고 이는 곧 관계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


이 때문에 중국 사회에서는 ‘말하지 않은 합의’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명시적으로 표현되지는 않았지만 관계 속에서 암묵적으로 공유되는 기대와 규칙이 존재한다. 외부인은 이를 불투명하다고 느끼지만 내부자에게는 매우 명확하다. 이 암묵적 규칙을 읽지 못하면 중국 사회에서는 오해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중국 정치 역시 관계의 논리로 움직인다. 중국 공산당 내부의 인사 구조는 공식 규정보다 개인 간 신뢰와 관계망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이는 단순한 부패 문제가 아니라 조직 운영 방식의 문제다. 중국에서는 조직의 안정이 개인의 능력보다 우선한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중용하는 구조가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중국 사회에서 개인주의가 약하다고 말하는 것은 절반만 맞는 평가다. 중국인 역시 개인의 이익을 중시한다. 다만 그 이익을 실현하는 방식이 개인의 권리 주장보다는 관계 관리에 가깝다. 개인은 고립된 존재가 아니라 관계망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계산하며 행동한다.


이 구조는 외국인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관계망 밖에 있는 외부인은 정보 접근과 문제 해결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이기 쉽다. 그러나 이는 배타성의 문제라기보다 신뢰를 관계를 통해 축적하는 사회의 특성에 가깝다. 중국 사회는 단기적 효율보다 장기적 신뢰를 더 중시한다.

중국의 관계 중심 문화는 단기간에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법과 제도가 정비되고 디지털화가 진행되고 있지만 관계는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오히려 디지털 기술은 관계를 관리하는 새로운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온라인 네트워크 역시 또 다른 형태의 꽌시로 작동한다.

한국이 중국과 관계를 맺을 때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한국식 합리성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다. 중국에서 합리성은 제도 안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관계 속에서도 나름의 합리성이 작동한다. 이 점을 이해하지 못하면 중국은 늘 불투명하고 불공정한 나라로만 보일 것이다.

중국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들의 방식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채 비판하는 것 역시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중국인은 개인보다 관계를 먼저 본다. 이 단순한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중국 사회는 훨씬 더 설명 가능한 공간이 된다.

중국은 개인의 자유보다 관계의 안정을 중시하는 사회다. 이는 장점이자 동시에 한계다. 중요한 것은 이 차이를 정확히 인식하는 것이다. 중국을 서구식 개인주의의 잣대로만 재단하면 오해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중국을 제대로 안다는 것은 중국식 관계의 논리를 이해하는 데서 출발한다. 관계를 이해하지 못하면 중국은 늘 불합리해 보인다. 그러나 관계의 구조를 이해하면 중국은 계산 가능하고 예측 가능한 사회가 된다. 그리고 예측 가능한 사회는 감정의 대상이 아니라 전략의 대상이다.
허찬욱 e경제일보 부장

- Copyright ⓒ [이코노믹데일리 economidaily.com] 무단전재 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