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검색
문화뉴스 언론사 이미지

[윤광원의 도보여행] 신촌길(3)- 김대중, 이한열, 원두우와 윤동주

문화뉴스
원문보기

[윤광원의 도보여행] 신촌길(3)- 김대중, 이한열, 원두우와 윤동주

서울맑음 / -3.9 °
[윤광원 기자]
윤동주 기념관(핀슨 관)./사진=윤광원 여행작가

윤동주 기념관(핀슨 관)./사진=윤광원 여행작가


(더쎈뉴스 / The CEN News 윤광원 여행작가) 이어 연세대 정문을 만났다.

정문을 들어서면, 길 가운데 연대의 건학 이념인 '진리(眞理)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한복음 8장 31~32절)이 새겨진 비석이 섰다.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진리와 자유의 정신을 체득한 인재를 양성하는 것을 뜻한다고….

이곳은 조선 초기에 지은 이궁(離宮)인 연희궁(延禧宮)터다.

1420년 세종이 부왕인 태종을 위해 보수했으며, 세종 자신도 1426년 이곳에 잠시 머물렀다. 또 세종은 이곳 연희궁에 국립양잠소 격인 잠실도회(蠶室都會)를 설치했다. 그 뒤 세조는 여기를 '서 잠실'이라고 칭했다.

그러나 1505년 연산군은 이를 개축, 연회장으로 사용하기도 했다고…

백양로(白楊路)는 연세대 신촌캠퍼스의 중심대로다. 남측은 정문을 통해 성산로에 맞닿아 있고, 북쪽은 연대의 본관인 '언더우드 관' 앞 삼거리까지 이어져 있다. 전체 신촌캠퍼스에서 중심축의 역할을 하며, 연세대학교 내 수많은 학생이 이용하는 연세의 상징과도 같은 길이다.


백양로라는 명칭은 1930년 무렵에 농과의 실험을 위해, 도로의 양 측면에 은백양목(銀白楊木)을 심은 데서 유래한다.

그러나 은백양은 잎 가루가 날리는 데다, 병해충에 약하고 수명도 짧아, 1968년 베어버리고 지금의 은행(銀杏)나무로 대체됐다. '백양목 없는 백양로'인 셈이다.

그래도 그 역사와 상징성을 기억하는 공간으로, 백양로 오른쪽에 '은백양과 시간을 걷는 정원'을 조성해 놓았다. 오래전부터 백양로를 지키던 은백양 한 그루가 아직 그 자태를 자랑하고, 그 뿌리에서 자란 어린 분주(分株)들도 자라난다.


노폭 22m의 차 없는 도로인 백양로 오른쪽에는 박물관과 '백주년기념관'이 있는데, 백주년기념관에는 '연세대학교 140주년'과 '연세보감(延世寶鑑)' 플래카드가 걸렸다. 벌써 창학 140년이니, 성균관대학교 다음가는 역사다. 연세보감은 아마도 박물관이 있음을 의미하는 듯하다.

왼쪽에는 초대 총장인 용재 백낙준 박사의 좌상이 있다.

백낙준(白樂濬) 박사는 1957년 연희대와 세브란스 의대를 통합, 연세대로 다시 세웠다. 교육과 학문, 민족봉사와 자유 정신의 구현에 뜻을 두고, 평생 연세와 민족을 붙들고 키운 정신적 지주이자, 민족의 스승이다. 비록 동상이나마, 이곳에서 연세인들과 영원히 함께 할 것이다.


연세대의 교육과학대학이 들어선 용재관(庸齋館)은 백 박사의 호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어 상징 동물인 독수리상이 높이 솟았다.

중앙도서관과 백양관을 지나 백양로를 직진하면, 길 끝에 3단으로 구분된 돌계단이 나온다. 거기를 오르면, 핵심 구역인 '언더우드 홀'을 만나게 된다. 여기도 크리스마스트리가 드높다.

이어 언더우드 입상(立像)이 우뚝하다.

140년 전 연세대의 전신인 조선기독교 학교와 연희전문학교를 설립한 언더우드 선교사는 원두우(元杜尤)라는 한국식 이름을 고종황제로부터 직접 하사(下賜)받았다고 한다.

그의 동상은 1928년에 교직원과 사회 인사들의 기부를 통해 처음 세워졌으나, 1942년에 일제에 의해서 전쟁 물자로 공출되고, 그 자리에는 대리석으로 만든 흥아유신기념탑이 들어섰다. 1948년 두 번째 동상을 세웠으나 한국전쟁(韓國戰爭)으로 다시 파괴, 1955년에 또 건립했다.

동상 뒤의 언더우드 관을 중심으로 우측에 '아펜젤러 관', 좌측에는 '스팀슨 관'이 배치됐다.

언더우드 관(Underwood Hall)은 원두우 설립자의 장남 원한경(元漢慶) 교수가 초석을 놓았고, 1924년 지상 3층(중앙탑 4층)의 근대식 석조 건물로 준공됐다. 문과대학에서 사용해 문학관으로 불려오다가, 1982년부터 대학 본부로 이용하고 있다.

웅장한 석조 건물로, 중앙부에 탑옥(塔屋)이 솟았다. 대학 최고(最高) 건물로 보존 상태가 우수, 역사적 가치가 크다.

또 아펜젤러 관(Appenzeller Hall)은 언더우드와 함께 내한한, 미국 북 감리교 선교사 헨리 아펜젤러를 기념하기 위하여 명명됐다. 아펜젤러는 1885년 배재학당(培材學堂. 배재중·고등학교와 배재대학교의 전신)을 설립하는 등, 근대교육과 선교 사업에 지대한 업적을 남겼다.

우리식 이름은 아편설라(亞篇薛羅)다.

이 건물은 미국 매사추세츠주 피츠필드 소재 제일감리교회의 기부금으로 1924년 지상 2층, 지하 1층의 석조 건물로 준공됐다. 아펜젤러 관은 이학관(理學館)으로 연희전문 캠퍼스에서 두 번째로 건립된 건물이며, 현재 사회복지 대학원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스팀슨 관(Stimson Hall)은 1920년 9월에 지상 2층, 반 지하층의 석조 건물로 준공됐다.

스팀슨의 2만5천 달러 기부(寄附)로 지은 것으로, 대학 본부로 사용하다가 현재는 대학원과 대외협력처에서 활용 중이다. 3개의 중심 석조 고딕풍 건물 중, 제1호가 바로 스팀슨 관이다.

현관 밑 계단 난간석에는 "1924년 문·상·수리과(數理科) 졸업생 기부"라 새겨졌다. 이렇게 기부는 후대로 이어졌다.

언더우드·아펜젤러·스팀슨 관 모두 당시 화학과 교수였던 밀러가 공사 감독을 한, 멋진 석조 '준 고딕 양식' 건물이며, 튜더(Tudor) 풍의 아치가 중앙 현관문에 있다. 1981년에 사적(史蹟)으로 일괄 지정됐다. 건립 연도는 스팀슨-아펜젤러-언더우드 순이다.

이 고풍스러운 문화유산들이 언더우드 동상을 중심으로 'ㅅ자' 형으로 배열된 게 인상적이다.

언더우드 가 기념관. /사진=윤광원 여행작가

언더우드 가 기념관. /사진=윤광원 여행작가


스팀슨 관 뒤 언덕에 올라가 보니, 가장 먼저 '외솔관'이 반겨준다. 문과대학으로 이용된다. 건물 앞에는 국어학자이자 독립운동가였던 외솔 최현배(崔鉉培) 선생의 흉상이 지키고 있다.

"한 겨레의 문화창조 활동은 그 말로써 들어가며, 그 말로써 하여 가며, 그 말로써 남기나니, 조선(朝鮮) 말은 조선사람의 창조적 활동의 말미암던 길이요, 연장이요, 또 그 성과의 축적의 끼침이다"

최 선생의 1937년 저서 《우리말본》의 일부를, 흉상 대석(臺石)이 전해준다.

정문 방향 다음 건물은 '원두우 신학관'으로 불린다. 조선(한국)과 개신교의 만남을 상징하는 이름인 것 같다.

이어지는 단아한 3층 근대식 석조 건물은 '윤동주(尹東柱) 기념관'이다.

'핀슨 관(Pinson Hall)'으로도 불린다. 연희전문 창립 초기에 공이 큰 미국 남 감리교 총무 핀슨 박사를 기념하기 위해 명명된 이 건물은, 1922년에 학생기숙사로 준공됐다.

스팀슨 관에 이어 신촌캠퍼스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건축물이다.

핀슨 관은 좌우 대칭을 이루는 '고딕풍'으로, 3층 사방에 '도머 창(窓)'이 나 있는 게 특징이다. 도머 창은 지붕의 경사면 위로 튀어나온 작은 지붕이 있는 창으로, 서양식 건물에서 많이 보이는 양식이다.

1938년 연희전문학교 문과(文科)에 입학한 윤동주 시인은 이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사색하고 고뇌하면서, 주옥같은 시들을 썼다. 이를 기념해, 2020년부터 윤동주 기념관으로 활용 중이다.

핀슨 관 앞 경사진 언덕은 '윤동주 문학동산'으로 조성됐다. 윤동주 시비에는 대표작인 서시(序詩) 전문과 "1941년 11월 20일 윤동주"라 새겨졌다.

기념관 뒷길을 따라 광복관을 지나고, 산을 끼고 돌아간다. 삼성관에서 더 올라가면 '언더우드가(家) 기념관'이 있다.

'언더우드 가옥'이라고도 하는 이곳은 언더우드의 아들이자 연희전문 제3대 교장 원한경 박사가 1927년 직접 지은 사택(私宅)이다. 원 박사는 일제강점기 말에 강제 추방당한 시기를 제외하고는, 줄 곳 여기서 살았다.

당시 건물은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로 20세기 초 미국에서 유행한 주택 양식을 반영했으며, 차고와 정원 및 연못도 조성했다.

그러나 한국전쟁으로 집이 크게 파괴되자, 원한경 박사의 아들 원일한(元一漢) 박사가 1956년, 다락이 있는 단층 건물로 개축하고, 채광과 환기를 위해 지붕에 도머 창 3개를 설치했다.

1974년 원일한 박사는 사택과 토지 1만여 평을 연세대에 기증했다. 이에 연대는 한국의 첫 기독교(基督敎) 선교사인 언더우드를 포함, 한국 근대교육과 국가발전에 헌신했던 후손들의 삶과 업적을 기념하고자, 2003년부터 사택 건물을 기념관으로 활용 중이다.

기념관 앞 작은 건물은 별관으로, 옛 차고였다.

다시 삼성관을 돌아 나와, 연세삼성학술정보관(延世三星學術情報館)을 끼고 돌아간다. 길옆에서 우남 이원철(李源喆) 선생 흉상을 만났다.

우남(羽南) 선생은 대한민국의 천문학자다. 1919년 연희전문 수학 및 물리학과 1회 졸업생으로, 미국 미시간대학교에 유학한 한국인 최초의 이학박사이며, 연세대 교수와 재단 이사장, 인하공과대학 초대 학장, 초대 기상청장 등을 역임하며, 한국 과학 발전에 앞장섰던 인물이다.

특히 1926년 선생이 연구했던 '독수리자리' '에타성'은 별명이 원철성(源喆星)으로, 일제 치하의 조선인들에게 자긍심을 심어줬다고 한다. 흉상 대석에서 원철성을 확인할 수 있다.

길 건너편 소공원에는 측우기(測雨器)와 해시계 '앙부일구' 모형이 자리한다.

다시 백양로로 내려섰다. 길옆 '활천대'라는 특이한 조형물은 1974년 전기공학과 동창회에서 기증한 것이다.

이제 정문을 나와, 신촌역을 향해 걸었다.

[윤광원 여행작가는] 한양대학교에서 사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 30년가량 경제기자로 일해 왔다. 특히 금융과 정부정책 관련 기사를 많이 썼다. 그러면서도 많은 책을 읽으며 인문학적 소양을 길렀고 걷기와 등산을 열심히 했다. 특히 8년 넘게 트래킹모임 '길사랑'을 이끌면서 사람들과 산과 들을 무수히 걸었다. 매주 어딘가를 갔고 토요일과 일요일 이틀 연속으로 나간 적도 많다. 짬이 나면 주중에도 다니곤 한다. 이 글은 그 결과물이다.

저서로는 경제논술 전문서인 《깐깐 경제 맛깔 논술》과 해방 이후 우리나라 금융 산업의 역사를 야사를 중심으로 정리한 《대한민국 머니 임팩트》가 있다. 또 도보여행 작가로 쓴 《배싸메무초 걷기 100선》과 《산 따라 강 따라 역사 따라 걷는 수도권 도보여행 50선》 등 도 있다.

(더쎈뉴스 / The CEN News) 윤광원 여행작가 gwyoun1713@naver.com

<저작권자 Copyright ⓒ 더쎈뉴스(The CEN 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