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어반베이스 창업자 하진우 전 대표가 투자자 신한캐피탈을 상대로 한 항소심에서도 패소했다. 서울고등법원은 지난해 12월 18일 하 전 대표의 항소를 기각하고, 원금 5억 원에 연복리 15%를 적용한 이자 8억 원 등 총 13억 원을 지급하라는 1심 판결을 유지했다.
하 전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서울고등법원은 '창업가는 투자를 통해 사업이 성공했을 때 막대한 이익을 누릴 수 있는 기회를 얻는 만큼, 반대급부로 실패했을 때 투자자에게 투자금을 배상하는 것 또한 합리적'이라고까지 명시했다"며 "이것이 현시점에서 대한민국의 법"이라고 토로했다.
8년 만에 160%, 이것은 투자인가
신한캐피탈은 2017년 어반베이스에 상환전환우선주(RCPS) 형태로 5억 원을 투자했다. RCPS는 지분투자다. 회사가 성장하면 보통주로 전환해 시세차익을 얻을 수 있고, 상장이나 M&A 시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투자자가 감수하는 위험의 대가로 높은 수익 가능성이 열려 있는 구조다.그런데 이번 사건에서 드러난 회수 구조는 다른 그림을 보여준다. 회사가 회생절차에 들어가자 신한캐피탈은 투자계약서의 주식매수청구권 조항을 근거로 하 전 대표에게 원금과 이자를 청구했다. 8년간 누적 수익률 160%. 하 전 대표는 "역대 모태펀드의 최고 수익률이 2022년 12.4%인데, 이것을 크게 상회한다"고 꼬집었다.
벤처투자의 기본 전제는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이다. 투자자는 높은 실패 확률을 감수하는 대신, 성공한 포트폴리오에서 큰 수익을 거둔다. 그런데 이번 구조에서 투자자가 감수한 '리스크'는 무엇이었을까. 성공하면 지분 상승의 과실을 얻고, 실패해도 원금과 고율의 이자를 회수한다면, 이는 투자라기보다 담보부 고금리 대출에 가깝다.
신한캐피탈 측은 "적법한 계약에 근거한 정당한 권리 행사"라는 입장이다. 투자계약은 연대책임이 금지되기 전인 2017년에 체결됐고, 계약서에 명시된 권리를 행사하지 않으면 오히려 배임 등의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논리다.
연대책임 금지했지만, 우회로는 열려 있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2018년부터 창업자 연대책임 폐지를 정책적으로 추진해왔다. 2022년에는 벤처투자촉진법 시행령을 개정해 창업자에게 고의나 중과실이 없으면 연대책임을 물을 수 없도록 제도화했다. 실패를 용인하는 창업 생태계를 만들겠다는 취지였다.그러나 이번 판결은 그 제도적 노력의 빈틈을 드러냈다. 법원은 신한캐피탈의 청구가 '연대책임'이 아니라 '주식매수청구권에 따른 정상적인 거래'라고 판단했다. 게다가 신한캐피탈은 벤처캐피탈이 아닌 신기술사업금융사여서 애초에 벤처투자촉진법의 보호 규정이 적용되지 않았다. 연대책임이라는 문은 닫혔지만, 주식매수청구권이라는 창문이 열려 있었던 셈이다.
현직 액셀러레이터 업계에서는 판결 이후 창업자들의 문의가 부쩍 늘었다고 전한다. 자신이 서명한 투자계약서에 유사한 조항이 있는지, 소송 대상이 될 수 있는지를 묻는다. 특히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요건에 '창업자의 고의 또는 중과실'이 명시되어 있는지, 단순히 회생절차 개시나 가압류만으로도 청구권이 발동되는 구조인지를 확인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GP의 딜레마, 소송하지 않으면 배임?
판결의 파장은 VC 업계 전반으로 향한다.하 전 대표는 "2심까지 판례로 나온 만큼 앞으로 다른 VC들도 신한캐피탈과 같은 소송을 진행하지 않으면 GP로서 배임이 되기 때문에, 투자금 반환소송을 무조건 진행해야 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벤처펀드의 업무집행조합원(GP)은 유한책임조합원(LP)의 자금을 운용하며 선관주의 의무를 진다. 계약서에 회수 가능한 조항이 있음에도 이를 행사하지 않는다면, LP에 대한 의무 위반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 금융감독원의 감사를 받는 금융권 투자사로서는 계약상 권리를 행사하지 않았을 때 담당자가 문책받을 수 있는 구조다. 투자자 입장에서도 딜레마인 셈이다.
하 전 대표에 따르면 어반베이스 소송이 공론화된 2024년 이후 유사한 소송이나 청구 사례가 빠르게 늘고 있다. 대부분 공개되지 않은 채 진행 중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계약의 자유와 생태계의 지속가능성 사이
법원의 판단은 명확했다. 계약 당사자가 자유의사로 합의한 조항은 유효하다는 것이다. 1심 재판부는 "회생절차 개시만으로 주식매수청구권을 부여할 경우 피고에게 불리한 측면이 있기는 하다"면서도 "그런데 만약 피고가 이러한 위험을 해소할 의도였다면, 관련 내용을 계약서에 포함했어야 마땅하다"고 판시했다. 2심도 "계약에 따른 주식매매대금 청구는 당사자들 간 계약에 기반한 투자금 회수의 성격을 가질 뿐"이라며 1심 판단을 유지했다.그러나 초기 스타트업과 투자자 사이의 협상력 격차를 고려하면, 계약의 형식적 자유가 곧 실질적 대등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자금이 절실한 창업자가 불리한 조항을 거부하기는 쉽지 않다. 2017년 당시에는 이런 조항의 위험성에 대한 업계의 인식도 지금보다 낮았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이번 판결을 계기로 창업자 연대책임 제한 범위를 확대하는 법 개정을 검토 중이다. 현행 벤처투자촉진법의 보호 대상을 벤처투자조합뿐 아니라 창업기획자, 개인투자조합, 신기술사업금융사 등으로 넓히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풋옵션 조항의 악용을 막기 위한 벤처투자 표준계약서 개정도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하 전 대표는 "이번 판결은 실패한 창업자가 아니라, 앞으로 실패할 수 있는 모든 창업자들에게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는 기준이 됐다"고 말했다.
행정부와 입법부는 창업자 보호를 위한 제도 정비를 이어가고 있지만, 사법부의 판단은 계약 문언에 충실했다.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나라'라는 구호는 아직 법정에서 힘을 얻지 못하고 있다.
글 : 손요한(russia@platu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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