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후/관점 디자이너 |
[파이낸셜뉴스] 국내 증시가 오랜만에 활기를 띠고 있다. 반도체, 방산, 2차전지, 심지어 전통 제조업까지 주가가 꿈틀댄다. 흔히 말하는 ‘불장’이다. 이런 장세에서는 대형주, 특히 한때 성장주의 상징이었던 종목들이 자연스럽게 탄력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예외가 있다. 바로 카카오다. 시장 전체가 오르는데도 카카오 주가는 좀처럼 힘을 받지 못한다. 이유는 단순히 실적이 나빠서도, 단기 악재가 있어서도 아니다. 시장이 카카오에서 미래를 읽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가는 현재의 성적표가 아니라, 미래에 대한 집단적 기대를 숫자로 압축한 결과다. 특히 불장에서는 이 속성이 더 극명해진다. 시장에 유동성이 풍부할수록 자금은 ‘지금 잘하는 기업’이 아니라 ‘앞으로 더 잘할 것 같은 기업’을 찾아 움직인다. 그런데 지금 시장의 질문은 이렇다. “카카오는 앞으로 무엇으로 성장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선명하지 않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김범수 의장 무죄 판결 이후, 카카오는 분명 여러 메시지를 던졌다. AI 중심 기업으로의 전환, 카카오톡의 재정의, 경영 쇄신과 거버넌스 개선. 방향성만 놓고 보면 틀린 말은 없다. 그러나 시장은 방향이 아니라 증거를 요구한다. AI가 어디에 적용되고, 이용자의 행동이 어떻게 바뀌며, 그 변화가 언제 어떤 숫자로 실적에 반영되는지까지 보여주어야 한다. 지금 카카오의 메시지는 ‘전략적 선언’에 가깝지, ‘투자 판단을 바꿀 만큼의 미래 설계도’로 읽히지 않는다.
특히 카카오톡은 혁신의 기회이자 동시에 가장 큰 리스크다. 카카오의 모든 밸류에이션은 카카오톡이라는 단일 플랫폼에 기초해 있다. 그런데 최근의 카카오톡 개편은 시장에 기대보다 불안을 먼저 안겼다. AI를 붙이는 과정에서 사용자 경험이 훼손되는 것 아니냐, 광고와 상업성이 과도해지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먼저 제기됐다. 시장은 혁신을 좋아하지만, 핵심 자산을 건드리는 실험에는 매우 보수적이다. 그 순간 AI 전략은 성장 서사가 아니라 ‘실험 리스크’로 해석된다.
또 하나 간과하기 쉬운 점은, 무죄 판결이 주가에 미치는 영향의 성격이다. 시장에서 무죄는 ‘플러스 요인’이 아니라 ‘마이너스의 제거’에 가깝다. 즉, 사법 리스크라는 족쇄가 풀렸을 뿐, 그 자체로 새로운 성장 동력이 생긴 것은 아니다. 무죄 이후 주가가 잠시 반등했다가 다시 힘을 잃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시장은 “이제 정상으로 돌아왔다”고 평가했지, “그래서 더 비싸게 살 이유가 생겼다”고 보지는 않았다.
반면 불장에서 강한 종목들의 공통점은 분명하다. 미래가 숫자로 보인다. 수주 잔고, 기술 로드맵, 시장 확장 경로가 비교적 명확하다. 투자자는 그 숫자가 맞을지 틀릴지를 두고 베팅할 뿐, 방향 자체를 의심하지는 않는다. 카카오는 아직 이 단계에 도달하지 못했다. 미래 이야기는 있지만, 미래를 가늠할 수 있는 측정 가능한 좌표가 부족하다.
결국 카카오 주가가 불장에서도 힘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시장은 카카오를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판단을 유보하고 있다. “리스크는 조금 줄었지만, 미래가 아직 보이지 않는다”는 메시지다. 주가는 오해가 풀렸다고 오르지 않는다. 오를 이유가 명확해질 때 오른다. 카카오가 해야 할 일은 더 많은 혁신 구호를 외치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숫자와 시간표로 번역해 보여주는 것이다. 시장은 그 순간까지, 기다릴 뿐이다.
박용후/관점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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