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재원 월간 샘터 전 편집장이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샘터사 사무실에서 휴간호(2026년 1월호)와 창간호를 들고 있다. 그는 비닐 포장 안에 곱게 싸인 잡지를 꺼내며 “이 창간호는 복간호가 아니라 진짜 원본”이라고 말했다. 창간호 표지를 오마주한 휴간호와 창간호의 크기가 조금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
그가 내민 명함에는 잡지사업본부 과장/ 월간 ‘샘터’ 기자라고 적혀 있었다.
“죄송해요. 편집장 명함은 모두 썼는데 다시 찍지 않았어요.”
한재원 월간 ‘샘터’ 전 편집장은 말했다. 1985년생. 꼭 10년 전인 2016년 샘터사에 경력직 기자로 입사했다. ‘샘터’ 기자가 되었다고 하니 부모님과 친척 어른들이 무척 자랑스러워했다. 그 또한 마찬가지였다.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앞, 김수근 건축가의 설계로 지은 유서 깊은 벽돌 건물에 드나들면서 자부심으로 충만했다. 선량한 사람들의 따사롭고 다정한 이야기가 가득한 잡지. 매달 연예인부터 일반인까지 인터뷰하면서 그 또한 차곡차곡 마음을 포갰다. 2023년 2월호부터 편집장이 되어 잡지를 만들던 그는 이제 한동안 월간 ‘샘터’의 마지막 편집장으로 불리게 됐다.
1970년 4월 창간되어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월간지로 꾸준히 사랑받던 ‘샘터’는 2025년 12월10일, 무기한 휴간을 선언했다. 2026년 1월호인 통권 671호를 내고 발행을 중단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샘터’는 2019년에도 한차례 휴간을 공지했다가 독자들과 기업 후원 등으로 발행을 재개했지만 월간지 수익 악화로 다시 휴간 결정을 내리게 됐다. 중단된 월간지가 발행처를 옮기지 않고 다시 발행된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 종이매체가 외면받는 시대적 흐름 등을 고려해 ‘사실상 폐간’이라고 보는 시선도 없지 않았는데, 샘터 사람들은 이런 표현에 섭섭해했다. 그 역시 ‘사실상 폐간’이란 표현을 완강하게 거부했다.
“폐간이라면 복간의 여지가 없잖아요. 언제든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가능성을 좀 남겨놓고 싶어서 휴간으로 통일하기로 했습니다. 단행본도 있기 때문에 진짜 회사 문을 닫는 것도 아니고, 더 힘을 기르기 위해 약간 숨 고르는 기간으로 삼기로 했습니다. 절망하거나 많이 슬퍼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내부 다짐들도 있었어요.”
한재원 월간 샘터 전 편집장이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샘터사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
그는 지난달 휴간호를 만들고 회사에 남기로 결정한 또 다른 기자와 함께 1월부터는 샘터사가 발행하는 단행본 편집을 맡았다. 무기한 휴간이 결정된 뒤 김성구 발행인을 포함해 직원들은 구독자 1600명 한명 한명에게 환불 안내 전화를 돌리고 있었다. 전화를 받지 않는 독자에게는 문자를 남겼는데, 놀랍게도 남은 구독료를 받지 않겠다고 하는 것은 물론이고 따뜻한 응원이 쏟아졌다.
“전화를 드리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해서 하고 있거든요. 마지막까지 선물을 많이 받는 것 같아요. 살면서 받을 격려를 지금 다 받고 있어요. 어떤 독자는 ‘엄마가 구독하셨던 건데 많이 아쉬워하면서 환불받지 말라고 하셨다’며 고맙다는 인사를 남기셨어요. 한번은 동료 기자가 전화를 드렸더니 독자께서 그저 ‘욕봤소’ 하셔서 너무 위안을 받았나 봐요. 이런 선량하고 좋으신 분들, 구독자분들이 진짜 저희 보물이죠. 계속 샘터를 제공해 드렸어야 했는데, 제 잘못인 것만 같은 거예요. 지키지 못했다는 게.”
‘샘터’ 초대 편집장은 염무웅 문학평론가다. 시인 강은교, 소설가 윤후명, 시인 정호승, 동화작가 정채봉, 소설가 한강 등은 편집부 기자로 일했다. 필자들도 기라성 같았다. 수필가 피천득의 애정은 특히 각별했고 소설가 최인호는 1975년부터 35년간, 법정 스님은 143회나 연재했다. 이해인 수녀는 휴간호인 2026년 1월호에도 글을 썼다. 창간호부터 지금껏 ‘샘터’에 글을 준 필자들은 약 4만4000명(중복 포함)을 헤아렸다. 만화가 들개이빨, 배우 봉태규처럼 젊은 감각의 필자들도 ‘샘터’에 글을 보탰다.
“샘터에 입사했는데 엑셀 파일이 넘어오더라고요. 창간호부터 지금까지 필자를 정리한 것이었어요. 편집장이 된 뒤에는 정기 구독을 본격적으로 늘려보자는 목표가 있었고, 이에 더해 20~30대 젊은 독자층에게 샘터를 조금 더 인지시키고 싶었어요. 샘터를 조금 더 친근하게, 알리고 싶은 목적이 커서 이것저것 시도를 했죠.”
‘샘터’는 매년 개편을 했는데 특히 그가 편집장이 되기 2년 전인 2021년 4월엔 창간 51돌을 맞아 제호를 영어로 하고 표지 스타일을 바꾸는 등 큰 변화를 시도했다. ‘취향을 반영한 문화 라이프 매거진’을 지향하면서 찬사와 항의를 동시에 받았다. “그때도 과도기였다”고 한 전 편집장은 말했다.
“조금 독한 마음을 먹고 시도를 했는데 반응이 딱 절반이었어요. 왜 우리 한글을 두고 영어로 제호를 바꿨느냐는 얘기를 정말 많이 들었고, 젊은 독자분들한테는 세련되어지고 재미있게 읽힌다는 얘기를 많이 받았어요. 항상 딜레마였어요. 어떻게 나이 드신 독자분과 젊은 독자분 모두를 충족시킬 수 있을 것인가. 하지만 그 와중에도 창간 의도는 변질되지 않게 신경을 많이 썼고요.”
창간 당시 ‘샘터’는 ‘평범한 사람들의 행복을 위한 교양지’를 목표로 하고 ‘거짓 없이 인생을 살아가려는 모든 사람의 마음의 벗’을 자임했다. 김재순 창립자는 담배 한갑 정도의 월간지 가격에 잡지를 만들고자 했다. 1972년 단행본 출판을 시작한 샘터사가 발간한 ‘TV동화 행복한 세상’은 어마어마한 베스트셀러가 됐다. 한때 월간 ‘샘터’는 50만부까지 찍었다. 1994년 ‘어머니에게 드리는 편지 보내기’ 행사에는 한달 동안 1만여통의 편지가 왔다. 2000년대 이후에도 매년 봄 샘터 공모전을 할 때는 3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한 연령의 독자들이 작품을 보내왔다.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샘터는 독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았다.
“저는 샘터의 전성기가 지나서 입사했지만 샘터가 전통이 깊다고 해서 너무 고지식하거나 촌스러운 매체가 아니라 여전히 유서 깊고 힘 있고 강인한 잡지로 느껴졌거든요. 그 세월이 주는 힘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해요. 특히 문인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의 진솔한 글에 애정이 많이 가요.”
한재원 월간 샘터 전 편집장이 창간호 원본을 들어 보여주고 있다. 오른쪽 책장 맨 앞에 꽂힌 것이 휴간호인 2026년 1월호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
그가 지금까지 인터뷰한 이들 중에서는 2025년 이문동에서 만난 주민들이 떠오른다고 했다. 재개발로 오래 운영하던 세탁소 폐점을 앞두고 있던 주인 최동순씨는 손님들이 찾아가지 않은 옷들을 남은 자식처럼 걱정하고 있었다. 독자 사연을 보낸 이들 중에는 한 의사가 보낸 편지가 기억난다고 했다. 눈을 감기 며칠 전 말기암 환자가 주머니에 넣어둔 레몬 맛 사탕 두개를 차마 먹지 못하고 서랍에 넣어두었다는 얘기였다.
“꾸밈없이 진솔한 글들이 우리 사회에 더 많이 퍼져나갔으면 좋겠어요. 제가 편집장을 하며 조금이라도 역할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바람이 그랬습니다. 앞으로 단행본을 만들면서도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불안해하지 않고 조금이라도 방향을 제시해 줄 수 있으면 좋겠어요. 마음에 여운이 남는 글,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글을 만들고 싶어요.”
‘샘터’는 2026년 1월 휴간호를 찍으면서 창간호를 복간해서 함께 판매하는 이벤트를 벌였다. 딱 1000부씩 2쇄를 인쇄했는데 곧바로 전량 매진됐고, 구하지 못하는 독자들이 지금도 발을 동동 구르며 전화를 해온다고 했다. 한 전 편집장은 변함없이 사랑받는 ‘샘터’의 글을 모아 필사를 할 수 있는 단행본을 만들고 있다.
“그 시대의 언어가 울림이 있더라고요. 사랑이나 가족이나 우정처럼 중요한 가치들은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 시대의 언어로 만나니 훨씬 진중하고 무게감이 있고 울림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그 옛 언어들을 앞으로 조금 더 전파시키고 싶습니다.”
이유진 선임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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