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90명, 지난해 ‘임금 2억원 체불’ 진정
노동부 ‘시정’ 지시에도 임금 받은 이는 1명뿐
법적 대응 위한 한국 특별 체류자격 요청에
법무부 “농장주 추천 다시 받아서 입국하라”
노동부 ‘시정’ 지시에도 임금 받은 이는 1명뿐
법적 대응 위한 한국 특별 체류자격 요청에
법무부 “농장주 추천 다시 받아서 입국하라”
필리핀 출신 이주노동자 A씨(31)가 2023년 강원 양구군 한 사과 과수원에서 일하던 모습. A씨 제공 |
지난해 여름 한국 농장에서 일하고 아직 임금을 받지 못한 필리핀 노동자들이 법적 대응을 위해 한국 입국 허가를 요청하자 법무부가 ‘농장 주인의 추천을 받아오라’고 안내했다. 채권자가 빚을 받기 위해 한국에 들어오려면 채무자의 추천을 받아야 한다고 전한 셈이다. 법무부가 외국인 노동자들의 임금 체불 고통을 사실상 방치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5일 경향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법무부는 지난달 필리핀 노동자 측이 제출한 ‘입국 요청’ 민원에 지난 8일 ‘농가 주인의 추천을 다시 받아서 입국하라’는 취지의 답변을 보냈다.
지난해 여름 강원도 양구군에서 일했던 필리핀 계절노동자 90명은 지난해 7월30일 고용노동부 강원지청에 ‘A업체가 가로챈 임금을 돌려달라’는 진정을 냈다. 이들은 농장주가 임금을 바로 주지 않고 취업알선 업체에 주는 바람에 약 2억원을 떼였다고 주장했다.
계절근로자는 농번기에 해외 노동자들을 데려오는 제도로 한국 지자체와 해외 지자체가 직접 업무협약(MOU)을 체결하는 것이 원칙이다. 양구군은 필리핀 팡길시 등과 MOU를 맺고 계절근로자를 데려왔는데 이 사이에 A업체가 끼어들어 수수료를 챙긴 것이 필리핀 당국의 수사로 적발됐다.
진정을 받은 노동부가 필리핀 노동자들의 임금 체불 문제를 시정하라고 농가에 지시했지만 이날까지 임금을 받은 노동자는 1명뿐으로 알려졌다.
필리핀 노동자들은 지난달 17일 법무부에 ‘임금 체불 문제 해결을 위해 한국 입국을 위한 특별 체류자격을 부여해달라’는 민원을 냈다. 노동청·경찰 수사에 직접 출석해 피해를 진술 할 권리를 달라는 취지다. 또 민사소송에서도 피해를 입증하기 위해 한국에 체류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법무부의 체류자격 매뉴얼에는 ‘임금 체불로 노동관서에서 중재 중인’ 경우 6개월 범위에서 체류 기간을 줄 수 있다고 나와 있다. 이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강원경찰청도 지난 12일 필리핀 노동자들을 대리하는 법무법인 원곡에 “수사 중인 피의자들이 수수한 금액에 대해 정상적 행정 비용이라고 주장하고 있다”며 “실제 근로자들의 임금 착취 피해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진정서, 진술 조서, 통화 녹음 등 일체 자료를 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법무부는 “계절 근로자로 근무한 경력이 있는 근로자의 경우 재입국 추천을 통해 입국이 가능하다”는 원론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최정규 원곡 변호사는 “기존 농가주인들이 ‘추천’을 빌미로 피해자에게 진정 취하를 종용하고 있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며 “농가주인로부터 재입국 추천을 받아서 입국하려면 ‘피해 회복을 위한 조치’를 사실상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초래될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이어 “법무부가 피해자들이 입국해 피해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해달라”고 말했다.
강한들 기자 handl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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