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검색
쿠키뉴스 언론사 이미지

용인 반도체, 협력사들은 왜 망설이나 [멈춰선 K-클러스터②]

쿠키뉴스 이혜민
원문보기

용인 반도체, 협력사들은 왜 망설이나 [멈춰선 K-클러스터②]

서울맑음 / -3.9 °
분양가·임대료·인력난…협력사에겐 ‘삼중 부담’
美·日 ‘직접 보조금’ 쏟을 때 韓 ‘나중에 세금 감면’
“대기업 공장만 들어서면 반쪽”…협력사 ‘생태계’가 변수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조감도. SK하이닉스 제공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조감도. SK하이닉스 제공 


정부가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클러스터”를 내세우며 용인행(行)을 독려하고 있지만, 정작 이 단지를 채워야 할 협력사들의 발걸음은 더디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라는 ‘앵커(핵심 기업)’는 이미 자리 잡았지만, 반도체 공장을 떠받칠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기업들이 함께 들어와야 비로소 ‘클러스터’가 완성된다.

본지 ①편이 전력·인허가·환경 변수로 ‘속도’의 한계를 짚었다면, ②편은 왜 협력사들이 용인행을 망설이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같은 ‘용인’인데…협력사 유치 속도는 왜 갈렸나

같은 ‘용인 클러스터’여도 협력사 유치 속도는 갈린다. SK하이닉스 원삼 클러스터 협력화단지는 분양용 필지 37개 가운데 35개가 계약을 마쳤고, 공개된 입주 기업만 30여 곳에 이른다. SK가 내세운 1조2200억원 규모 상생 프로그램(상생펀드·공동 R&D·협력센터 등)은 협력사 입장에선 “투자 판단을 앞당길 근거”로 작동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반면 삼성 국가산단은 분위기가 다르다. 정부는 다수 소부장·설계 기업 유입을 전망하고, 입주 협약·의향을 밝힌 기업들이 있다고 설명하지만, 중소·중견 협력사들 사이에서는 “조건이 한눈에 안 보인다”는 반응이 여전하다. 핵심은 ‘지원이 있느냐’보다 지원이 실제로 언제, 어떤 요건으로, 어느 정도 규모로 집행되는지다.

한 협력사 대표는 “SK는 프로그램 구조가 눈에 보여 내부 의사결정이 빠른데, 국가산단은 세제·제도 지원이 중심이라 우리 회사에 적용되는 시점과 혜택이 계산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고 말했다. 즉, ‘지원의 여부’가 아니라 ‘체감 시점’에서 온도차가 벌어진다는 얘기다.

“오고 싶어도 못 왔다”…규제가 만든 미분양 35%

제도 장벽도 협력사 유입을 늦춘 요인으로 꼽힌다. 협력화단지 입주는 반도체 소재·부품·장비업체에 한정되고, 민·관 심사위원회 심사를 거쳐야 한다. 여기에 한동안 ‘비수도권 기업은 기존 공장을 옮겨올 수 없다’는 조건이 더해지면서, 지방 기업들의 입주 길이 사실상 막혔다.


실제로 협력업체 전용 협력화단지 55개 부지 가운데 분양용 37개 필지를 세 차례 모집했지만, 13개 필지(약 35%)가 미분양으로 남았다. 용인시는 미분양의 원인으로 “수도권 규제에 따른 비수도권 기업 입주 제한”을 지목한 바 있다.

이후 국토교통부가 2023년 11월 ‘기존 공장을 축소·이전하지 않는 조건으로 비수도권 기업도 입주 허용’을 의결하면서 4차 분양부터 지방 기업들의 참여 길이 열렸다.

다만 업계에서는 “규제 완화가 뒤늦게 이뤄진 만큼, 초기 모집 단계에서 누적된 관망 심리를 해소하는 데 시간이 더 걸릴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수도권 비용 구조… 땅값·임대료·인력 ‘삼중 부담’

비용 부담도 현실적인 장벽이다. 용인 일대는 개발 기대감이 커지며 지가가 상승했고, 협력사들은 ‘부지·임대료·건축비’가 한꺼번에 오른 상황에서 투자를 결정해야 한다. 중소기업일수록 자금 여력이 제한적이어서 “용인 입주보다 기존 공장 증설이나 다른 입지를 택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판단이 나올 수 있다.

여기에 인력·정주 여건 문제까지 겹친다. 대기업은 기숙사나 통근 인프라를 자체로 마련할 수 있지만, 협력사들은 그렇지 않다. “사람을 뽑아도 오래 버티기 힘들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클러스터가 공장만으로 굴러가지 않는다는 점에서, 협력사들은 비용 구조와 생활 여건까지 함께 본다.

해외는 ‘현금+원스톱’… 한국은 ‘작동 조건’이 관건

해외 반도체 클러스터는 협력사 유입 장벽을 낮추기 위해 정부가 더 깊게 개입한다.


미국은 반도체 지원법(Chips Act)을 통해 대형 보조금과 세제 혜택을 결합해 기업의 초기 부담을 줄이고, 주정부까지 나서 용지·인프라·세금 인센티브를 패키지로 제시한다. 실제로 미국은 반도체 지원법을 통해 삼성 텍사스 공장에 47억5000만달러(한화 약 7조원), TSMC 애리조나 공장에 66억달러(약 9조7000억원) 규모의 보조금을 집행한 바 있다.

일본 정부도 TSMC 구마모토 공장에 약 4조원을 보태는 등 대형 프로젝트에 지원금을 투입해 공급망을 끌어모았다. 대만은 과학단지에 연구기관과 대학을 함께 배치해 R&D·인력·기술이전을 함께 설계하면서, 클러스터 자체를 ‘산학연 생태계’로 키워왔다.

‘세액공제’ 한계… 중소기업 “지금 당장 돈이 필요하다”

반면 한국의 대표 지원 수단은 세액공제 중심이다. 반도체는 초기 투자비가 막대하고, 적자가 불가피한 기간이 길다. ‘이익이 나야 혜택을 체감하는’ 구조에서는 중소기업이 당장 필요한 현금흐름을 맞추기 어렵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정부도 이런 문제의식을 반영해 지원책을 단계적으로 확대한 바 있다. 2023년 말 ‘K-칩스법’으로 세액공제를 확대했고, 2025년 4월에는 소부장 중소기업에 투자액의 최대 50%를 보조금으로 지원하는 대책을 발표했다. 송전선로 지중화 비용 국비 부담 확대 등 인프라 비용 분담 방안도 함께 내놨다. 다만 업계에서는 “지원이 실제로 현장에서 작동하려면 대상·기준·집행 시점이 더 선명해져야 한다”는 주문이 나온다.

결국 정부가 ‘세계 최대’를 표방하려면 전력·용수 같은 기반 시설뿐 아니라, 협력사가 체감할 수 있는 유입 조건을 더 구체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업계는 △입주 요건·절차의 예측 가능성 △지원의 대상·기준·집행 시점 명확화 △중소기업용 임대·공용 R&D 인프라 △인력·정주 여건 패키지를 ‘필수 조건’으로 꼽는다.

한 업계 관계자는 “용인에 핵심 기업만 있고 협력사가 따라붙지 않으면 생산기지의 효율과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협력사들이 투자를 결심할 수 있는 ‘조건’을 얼마나 빨리 갖추고 체감할 수 있도록 하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