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문희 소설가가 13일 오후 서울 은평구의 한 카페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
“10여년 전에 어느 출판사로부터 전혜린을 소설로 써보라는 제안을 받았지만 거절했습니다. 그이의 과도한 자긍심과 약간의 광기에 대한 거부감, 그리고 어린 딸을 두고 세상을 떠난 게 너무 이기적이라는 선입견 때문이었지요. 그 뒤로 전혜린에 관해 더 공부를 해본 결과 생각이 바뀌었어요. 바퀴 없는 리어카를 끌고 45도 경사를 오르듯 고되고 힘든 날들을 헤쳐간 그녀의 삶을 써야겠다 싶었어요. 같은 여자로서요.”
전혜린(1934~1965)의 삶과 죽음을 다룬 장편 ‘이별은 사랑이다’를 펴낸 최문희 작가의 말이다. 최 작가는 전혜린과 같은 1934년 갑술생. 현역으로 활동하는 작가로는 최고령에 해당한다. 그는 1988년 ‘월간문학’을 통해 등단했고 환갑을 넘긴 1995년 국민일보문학상과 작가세계문학상 장편 공모에 동시 당선하며 큰 화제를 모았다. 국민일보문학상 상금은 1억원으로 당시 최고 수준이었고 작가세계문학상 상금은 2천만원이었다. 최 작가는 그 뒤로도 꾸준히 장편과 소설집을 내놓았고 2011년에는 다시 장편 ‘난설헌’으로 제1회 혼불문학상을 수상했다. 상금은 5천만원. 속된 계산이지만, 장편소설 공모 당선 상금 총액으로는 ‘문학상 4관왕’을 기록한 장강명과 투톱을 이룰 만한 수준이다.
최문희 소설가 13일 오후 서울 은평구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한 뒤 사진을 찍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
‘이별은 사랑이다’는 전혜린의 독일 유학에서부터 마지막 날들까지를 그린 작품이다. 전혜린이 단골이었던 대학로 다방 학림에 들어서는 장면으로 시작해 유학 시절로 거슬러 올라갔다가, 그토록 쓰고 싶었던 소설을 쓰지 못한 채 삶과 문학의 패배자로서 세계와 이별하는 순간으로 마무리된다. ‘린’으로 표기되는 전혜린 자신의 시점을 택해 이 요절한 천재의 상처투성이 내면을 가까이에서 들여다보게 한다.
“전혜린은 어려서부터 천재로 불렸고 특히 아버지의 사랑을 독식했습니다. 아버지는 혜린을 한국 최초의 여성 법조인으로 만들고자 서울 법대로 보냈죠. 그러나 혜린은 법보다는 문학을 하고 싶었고, 독일 유학은 그런 아버지로부터 독립하기 위한 결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자신보다 더 견고하고 보수적인 남자를 남편으로 정해서 독일로 보냅니다. 남편은 아버지의 대신이었던 거죠.”
13일 오후 서울 은평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최문희 작가는 “부부 사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존중감인데, 전혜린 부부에게는 그게 없었다”고 말했다. 소설 속에는 남편 ‘수’가 말하는 혜린에게 등을 돌리고 앉아 책을 읽고 있는 장면, 그리고 혜린의 아버지가 역시 딸에게 등을 돌린 채 책에 코를 박고 있는 장면이 데칼코마니처럼 등장한다. 아버지와 남편이 혜린을 무시하고 억압하는 가부장으로서 쌍둥이 같은 존재였음을 알게 한다. 소설 속의 이런 문장들을 보라.
“말하는 투나 방식, 돌아앉은 뒷모습까지 사위와 장인은 닮았다.”
“수는 아버지를 대신한다. 아버지가 쇠창살 감방이었다면 수는 벽돌 성벽 깊숙이 매몰된 지하 감방이다. 더더욱 견고한 울타리다.”
전혜린의 삶과 죽음을 다룬 장편 ‘이별은 사랑이다’를 펴낸 최문희 소설가가 13일 오후 서울 은평구의 한 카페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전혜린이 요절하지 않고 살아 있었다면 젊은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많은 서사를 남겼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
그런 아버지와 남편에 맞서 자유와 독립, 자존을 위해 피를 흘리는 주인공의 모습은 전혜린 자신이 남긴 글들과 작가가 상상으로 빚은 상황 및 대화를 통해 설득력 있게 그려진다. 소설에는 이봉구와 박경리, 이호철 같은 실존 문인들과 함께 속물적인 고교 동창 강이숙과 제자 장순애, ‘수’의 후배 박훈 등 허구적 인물들이 등장해 혜린의 고통과 고독을 부각시킨다. 다방 학림과 “문객들의 쉼터”였던 명동 은성, 음악 감상실 돌체 같은 문단사의 명소들도 반갑다.
“명동대성당을 지나 국립극장 네거리에서 좌회전, 충무로 쪽으로 방향을 틀면 바로 은성이다. (…) 음악 감상실 돌체를 지나 충무로 이면도로에 주저앉은 은성. 주머니가 가벼운 예술인들이 열정과 낭만을 탁주 사발에 버무려 기염을 토하는 대중음식점이다.”
주인공과 같은 나이로 1950~60년대 서울을 함께 호흡했던 작가의 경험과 감각이 빛나는 대목이겠거니와, 생전의 전혜린을 두번 목격했다는 증언은 사뭇 귀하고 흥미롭다.
“제가 1953년에 서울대에 입학해서 등록차 동숭동에 갔는데, 근처에 있던 누군가 ‘어머, 전혜린이야!’라고 하더군요. 전혜린은 월반을 해서 입학은 한두해 먼저 했고 고교 시절부터 천재로 유명했거든요. 그때 본 전혜린은 머리 모양이며 옷차림이 단정하지 않고 자유분방한 모습이었어요. 또 한번은 학림에서 마주쳤는데, 제가 학림에 들어갈 때 그분은 밖으로 나오면서 안에 있던 후배들을 향해 ‘이리 와, 따라와!’라고 소리치더군요. 당시 통념으로 ‘여자가 저렇게 소리쳐도 될까’ 싶을 정도였는데, 안에 있던 많은 이들이 그런 전혜린을 경외의 눈길로 보던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소설에서 ‘수’는 여성의 일과 경제적 독립을 주장한 혜린의 글이 실린 여성지를 발로 툭툭 차며 말한다. “이런 잡문 때문에 밤샘을 하냐? 여긴 한국이야. 제발 나대지 좀 마.” 문학과 자유를 추구했으나 가부장들의 구속으로 좌절했던 전혜린의 몸부림에는 작가 자신의 경험도 반영된 듯 보인다. 최 작가는 인터뷰에서 “남편과 자식들은 제 건강을 염려해서 소설 같은 걸 쓰느라 스트레스 받지 말라고 합니다만, 누가 뭐래도 저는 소설을 쓰고 싶은 걸 어떡합니까?”라고 말했다.
이별은 사랑이다 l 최문희 지음, 도화, 1만6900원 |
전혜린은 독일 유학 이후 베스트셀러 번역가로 자리 잡았지만, 번역이 아닌 자신의 글을 쓰고자 하는 열망을 끝내 놓지 않았다. 소설 말미에서 퇴근길에 원고지 두권을 구입한 그가 씻지도 않은 채 책상 앞에 앉아 모눈종이의 빈칸을 메우는 장면이 시사하는 대로다. 그렇지만 이른 죽음은 그 열망마저 앗아갔고, 소설의 마지막 문장들은 끝까지 세계와 불화한 혜린의 고집과 자존을 고독하게 증언한다.
“난 그래. 사유하지 않고 텅 빈 자아를 인식 못 한 채 내용 없이 거들먹거리는 인간들을 증오해. 모든 평범한 것들, 목적 없이 사는 인생들을 미워해.”
지난해 초에 낸 장편 ‘열여섯 번의 팔월’ 이후 불과 1년 만에 새 장편을 선보였고, 초고를 완성한 장편이 두편 더 있다고 말하는 최문희 작가. “95살까지는 소설을 쓸 생각이다. 그 이후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이라는 말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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