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강력한 개인이 온다’는 머잖아 AI 도구를 활용하는 ‘강력한 개인’이 속속 탄생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게티이미지뱅크 |
경고음이 울린다. 인공지능(AI)이 인류의 생존을 위협할 테니 개발의 속도를 늦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인류가 인공지능을 거부할 수 있을까. 문명을 등지고 산속으로 들어간 ‘자연인’이라도 스마트폰만큼은 버리기 힘들다.
‘로봇 시대, 인간의 일’ ‘메타인지의 힘’ 등의 저술로 인공지능과 로봇의 세계를 설득력 있게 설명해 온 디지털 인문학자 겸 저널리스트 구본권(전 한겨레 기자·언론학 박사)이 ‘AI 시대, 강력한 개인이 온다’를 펴냈다. 격변의 시대를 사는 이들이 갖춰야 할 핵심 역량을 콕콕 찍어 제시한 야심작으로, ‘AI 시대, 인간의 일’을 다룬다.
“강력한 개인이 오고 있다.”
저자는 이 강렬한 한 문장으로 책을 시작한다. 오랫동안 ‘강력한 인간’은 거대 조직의 우두머리를 가리켰다. 봉건 시대에는 계급이 신분을 결정했다. 이제는 누구나 AI로 지식과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문송’(문과라서 죄송하다)이라는 말이 유행했지만, 인공지능의 세계에서 전공이나 출신은 무관하다. 동영상 생성 AI 기업 ‘런웨이’의 최고경영자 크리스토발 발렌수엘라는 전형적인 문과생이다. AI 플랫폼 기업 ‘뤼튼’의 창업자 이세영 대표와 피지컬 AI 기업인 ‘마음AI’의 유태준 대표도 문과 출신이다.
AI 시대, 강력한 개인이 온다 l 구본권 지음, 김영사, 1만8000원 |
이제는 모든 사람이 최전선에서 최고경영자와 리더가 되어 조직을 관리하고 이끌어야 한단다. 너무 먼 미래의 일 같아 아득하게만 들린다. 하지만 디지털 세계를 지배하는 원칙은 지금까지 인류가 겪은 속도와는 다르다. 디지털 세계는 차곡차곡 일정량이 늘어나는 산술적 증가가 아니라 일정한 비율(두 배)로 껑충 뛰는 ‘지수적 증가’라는 속성을 갖는다. 이대로라면 인류가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불안정한 시대가 느닷없이 도래하게 된다. 2020년 초 코로나19 감염자 폭증이나 2022년 11월 출시된 챗지피티(GPT) 사용자가 두달여 만에 월 사용자 1억명에 도달한 경우가 그 예다. 저자는 그 변화가 “서서히, 그러다가 갑자기” 올 것이라고 예견한다.
이런 사태에 대응하려면 첫째, 지금까지 의존하던 사고의 틀과 관행에서 완전히 벗어나야 한다. “인공지능 세상은 액체 상태”라는 게 저자의 판단인데, 이는 지그문트 바우만이 말한 ‘액체 근대’와는 차원이 다르다. 거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수시로 필요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헤라클레이토스가 말한 ‘판타 레이’(만물유전: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한다), 부처의 핵심 가르침인 제행무상(諸行無常: 모든 것은 항상하지 않다)의 원리와도 같다. 이런 시대엔 의도적으로 낯선 관점, 경험을 수용하는 자세와 실패를 학습의 수단으로 삼는 실천이 필요하다.
‘새로고침’을 위해 저자는 ‘언러닝’과 ‘비움 학습’을 제안한다. 정보 업데이트의 필수 역량인 ‘언러닝’은 알고 있는 것을 의도적으로 지우거나 포기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이전의 공부가 더 많은 지식을 수집하고 기억하는 활동이었다면, ‘언러닝’은 과거 지식과 신념 체계를 비우는 노력을 의미한다. 학습의 목표는 ‘더 많은 정보’가 아니라 ‘더 적절한 정보’가 되었다. 적절한 정보의 기준은 자기 자신이다. 기존의 것을 정리하기 위해서는 버려야 할 것과 필요한 것을 잘 아는 자기 객관화, 메타인지가 필수적이다. 지식과 경험이 많은 자가 더 위험해질 수 있다.
에이치비오(HBO)의 영화 ‘마운틴 헤드’는 실리콘밸리의 빅테크 재벌이 산속 고급 별장에 모여 휴가를 보내던 중, 딥페이크로 세계적인 위기가 닥치며 벌어지는 소동을 다룬다. AI리스크가 커지면 감식안은 더 필요한 덕목이 된다. 쿠팡플레이 제공 |
또 다른 필수 역량은 ‘감식안’이다. 앞으로는 누구나 미세한 차이를 읽어내고 미묘하게 다른 점을 정확하게 식별하는 감별 능력을 갖춰야 한다. 인공지능, 로봇, 자동화 기술이 아무리 발달하더라도 최종 단계인 감리·감독은 사람이 맡는다. 인공지능이 만든 딥페이크, 진본 같은 사본, 거짓말을 밝혀내고 판단하는 능력은 누구나 살아가는 데 필요한 자질이 된다. 이를 설명하려고 저자는 김소월의 ‘진달래꽃’을 예로 든다. 이 시의 영어 번역을 4개의 인공지능에 의뢰했는데 각각 결과가 달랐다. 문장의 뉘앙스는 물론이고, 정반대 의미로 해석한 인공지능도 있었다. 이런 감별을 하려면 정확한 한국어 독해 능력과 영어 문장 읽기 실력을 갖춰야 한다.
생성형 인공지능(AI) ‘챗지피티’(Chat GPT)에게 “‘제조업 장인\'과 인공지능 휴머노이드 로봇의 모습을 만들어줘”라는 지시어를 입력해 생성한 이미지. |
저자는 ‘암묵지’의 습득 또한 중요하다고 밝히는데, 암묵지는 “할 줄 알지만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지식과 능력”(마이클 폴라니)을 가리킨다. 암묵지는 기계가 모방하고 대체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곧, 앞으로의 일자리는 인공지능이 사람을 밀어내기보다 인공지능을 다룰 줄 아는 직원에 의해 그렇지 못한 직원이 밀려나는 형태가 될 거란 얘기다. 인공지능은 인간의 대체재가 아니라 ‘역량 증폭기’다.
현실은 인공지능의 세계보다 훨씬 복잡하기에 인공지능을 쓸 때는 부작용이 따른다. 예컨대 영국 정부는 코로나19로 대학입시를 치를 수 없게 되자 알고리즘을 이용해 학생별 점수를 산출했다. 하지만 저소득층 거주지역 학교 학생들이 낮은 점수를 받게 되자 교육부가 계급 격차를 그대로 재생산한다며 시민들의 분노를 샀다. 교육부는 결국 이를 폐기하고 시험을 치렀다. 아마존은 인공지능 활용 채용 알고리즘을 개발했지만 여성 지원자를 자동 배제하는 성차별 편향이 문제가 돼 이를 폐기했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뭘까. 동시에 여러 AI 에이전트에 다른 성격을 부여하고 각자 고유한 역할과 업무를 할당하는 것이다. 인공지능에 근거한 1인 유니콘 기업이 탄생할 가능성도 여기에 근거한다. 하지만 저자는 이런 강력한 개인의 시대에 역설적으로 협업의 힘이 커진다고 강조한다. 인공지능은 절대 반지처럼 개인이 배타적으로 소유할 수 없고, 개인의 주의력과 역량에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인공지능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는 타인과 협력하고 공조 체제를 만드는 것이 필수적이다.
빅히스토리에 기반해 코앞에 닥친 근미래를 설명하기 때문에 인문학적 재미가 있고, 인공지능 활용을 위한 필수 역량도 점검할 수 있어 실용성까지 갖춘 책이다. 그러나 양극화의 세계가 예견되기에 마음이 어두워지는 건 피하기 힘들다. 이 예측대로라면 ‘강한 개인’은 걷잡을 수 없이 빠른 속도로 재산을 증식하고 권력을 얻을 것이며, 그 반대도 역시 성립한다. 저자 또한 경고한다. “개인은 어느 때보다 취약해진다. 강력한 개인들이 등장한다는 것은 다수의 취약한 개인들이 생겨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찔하다. 디스토피아를 막는 길 또한 협력과 연대에 있을 것이다.
이유진 선임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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