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검색
이데일리 언론사 이미지

74년 한우물 '배터리 명가'...전기차·요트 타고 제2의 도약

이데일리 김혜미
원문보기

74년 한우물 '배터리 명가'...전기차·요트 타고 제2의 도약

서울맑음 / -3.9 °
[경제 부활 이끄는 '1조 클럽']⑤박정희 세방전지 대표
자동차·산업용 납축전지 제조 외길
변화무쌍한 환경서 묵묵히 기술개발
리튬전지·AGM 등으로 영역 확대
2년 연속 연매출 2조원 돌파 전망
한국에 있는 중소기업들의 숫자는 얼마나 될까.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약 830만개에 이른다. 국내 전체 기업의 99.9%에 이르는 비중이며 서울시 인구(2025년 기준 932만명)와도 맞먹을 정도로 많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중소기업에서 중견기업(제조업 기준 매출액 1500억원 이상, 자산총액 10.4조원 미만 등)으로 성장한 기업 수(중견기업연합회 2023년 기준)는 5868개로 대폭 감소한다. 범위를 좀 더 좁혀 중견기업 중에서 매출 1조원 이상(2023년 기준)된, 말 그대로 이제는 어느 정도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기업들은 148개에 불과하다. 경제의 허리 역할을 해야 할 중견기업이 한국에서는 왜 이렇게 탄생하기 힘든 것일까. 이데일리에서는 성장률 0% 시대 위기를 벗어나고 한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서는 매출액 1조원 중견기업 육성이 절실하다는 생각으로, 이들 기업 경영인들을 만나 경영 노하우는 물론 이 같은 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들이 필요한 지 살펴볼 예정이다.


[이데일리 김혜미 기자] “세방전지가 70년 이상 영속하며 연매출 2조원이 넘는 중견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기본’에 충실했기 때문입니다. 변화무쌍한 환경에 잘 적응하면서 한 우물을 판 결과, 기술력에 있어서는 다른 어떤 곳보다 뛰어나다고 자부합니다.”

박정희 세방전지 대표가 최근 서울 역삼동 본사 사무실에서 이데일리와 인터뷰를 가졌다.(사진=방인권 기자)

박정희 세방전지 대표가 최근 서울 역삼동 본사 사무실에서 이데일리와 인터뷰를 가졌다.(사진=방인권 기자)




박정희 세방전지 대표는 최근 서울 역삼동 본사 사무실에서 이데일리와 인터뷰를 갖고 이같이 말했다. 박 대표가 지난 2024년 말 취임한 뒤 1년여 만에 처음 가진 언론 인터뷰다.

일반인들에게는 ‘로케트 배터리’로 잘 알려진 세방전지(004490)는 지난 1952년 설립된 회사다. 자동차 및 산업용 축전지 제조 및 판매 외길을 걸어온 뚝심 있는 중견기업이다. 지난 2017년 연매출 1조원 돌파에 이어 7년 만인 2024년에는 연매출 2조원도 넘어섰다. 증권가에서는 2025년 매출액이 약 2조 1870억원으로 전년대비 증가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꾸준한 R&D가 기술력의 원천…올 상반기 AI 도입 계획

박 대표가 강조한 세방전지의 ‘기본’은 오랫동안 쌓아 온 납축전지 제조기술에 있다. 납축전지는 충전과 방전을 반복하며 오래 사용할 수 있는 2차 전지로, 자동차는 물론 은행, 병원, 발전소 등에서 비상 전원으로도 사용한다. 세방전지는 이 분야에서 국내 1위를 오랫동안 유지해 왔으며 세계 5대 납축전지 제조사다. 볼보와 BMW 등 해외 자동차 업체에 꾸준히 제품을 공급해올 수 있었던 것도 이 같은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기 때문이다.

박 대표는 배터리 기술의 본질을 ‘일정한 품질을 유지하는 능력’이라고 본다. 그는 “축전지는 공정의 미세한 흔들림이 수명과 성능 차이로 직결된다. 세방전지는 자동화된 설계 및 공정, 검사 체계를 통해 항상 같은 품질을 구현하는 제조 역량을 갖췄다”며 “기술 고도화는 물론이고 AGM 베터리의 품질을 일관되게 구현하는 시스템이 경쟁력”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세방전지는 끊임없는 연구개발(R&D)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세방전지의 R&D 투자는 지난 2022년 70억 9000만원에서 2023년 78억 8000만원, 2024년 99억원으로 해마다 늘고 있다.


대기업처럼 자체 연구시설을 갖추기 어려운 만큼 외부 협력을 통한 R&D도 꾸준히 시도하고 있다. 최근에는 광주과학기술원(GIST)과 손잡고 배터리 수명 예측 기술을 개발 중이다. 세방전지가 70여 년간 축적해 온 각종 실험결과와 보고서 등의 데이터를 모두 집약한 만큼 현재 공동 개발 중인 AI 예측 프로그램이 완성되면 수개월 걸리던 절차를 1~2주로 단축 시킬 수 있을 전망이다.

박 대표는 “AI 수명 예측 프로그램이 도입되면 제품 개발 속도가 빨라지는 것은 물론 품질관리, 비용 절감에도 훨씬 더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며 “국내에서는 최초 시도하는 것으로 올 상반기에 도입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정희 세방전지 대표(사진=방인권 기자)

박정희 세방전지 대표(사진=방인권 기자)


국내 1위 안주하지 않고 고부가제품 개발·수출 확대로 돌파구 마련

세방전지의 올해 목표는 수익성을 동반한 성장이다. 2024년 처음으로 2조 매출을 돌파하며 외형을 키운 만큼 수익성과 지속 가능성을 우선하겠다는 것이다. 지난해 말 발표한 ‘2028년까지 매출성장률 7% 달성, 배당성향 25% 설정 및 유지, 자기자본이익률(ROE) 10% 유지’ 등 3가지를 골자로 한 기업가치 제고 계획도 이 같은 노력의 일환이다.


이를 위해 고부가제품 개발과 수출 확대를 적극 추진할 계획이다. 박 대표는 “오는 8월 경남 창원에 선행기술센터를 오픈할 계획”이라며 “선행기술센터가 구축되면 기존 제품의 품질을 높이는 한편 이전에는 시도하지 못했던 요트 전용 대형 배터리 등 고수익 제품을 개발해 새로운 시장을 열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해외 수출도 확대한다. 세방전지의 해외 매출비중은 2024년 기준 57.6%다. 세방전지는 정책적 불확실성이 높은 미국보다는 영국, 프랑스 등 유럽 수출을 확대할 계획이다. 박 대표는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아니더라도 관세 등에 있어서 지금과 같은 정책을 유지할 것으로 보고 있다”며 “유럽 중에서도 현재 비중이 낮은 프랑스 등에 집중하는 한편 반응이 좋은 일본 등에 AGM 베터리 등 고가 제품 공급을 늘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날씨가 더운 아랍 지역도 배터리 주기가 1년 밖에 안되기 때문에 수요가 많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동시에 납축전지 대비 비율이 15% 정도인 리튬전지 비중도 점차 높여갈 계획이다. 자회사 세방리튬배터리는 지난 2024년부터 현대차용 배터리 모듈 양산을 시작했다. 박 대표는 “차량 전원체계에 있어 납축전지가 여전히 시동·보조전원의 핵심 역할을 유지하고 있는 만큼 중심축이 리튬으로 급격히 전환된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원가 경쟁력과 시장 성숙 속도에 맞춰 점진적으로 리튬 비중을 늘리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기차 배터리로는 리튬배터리와 납축전지가 주로 쓰인다. 전체적인 성능과 효율성 면에서는 리튬 배터리가 우수 하지만 가격이나 특정 환경에서의 안정성을 중시한다면 납축전지도 여전히 활용 가치가 있다. 현재 주행을 위한 메인 배터리는 리튬 배터리가, 전장 부품을 돌리는 보조 배터리는 납축전지가 주로 쓰이고 있다.

“변화 클수록 기본에 집중…정부가 규제 대응·R&D 도움 줬으면”

최근 고환율과 대미관세, AI 등 기술 변화 등으로 사업 환경에 큰 변화가 이어지는 가운데 박 대표는 이럴 때일수록 기본과 방향성에 집중해야 한다고 본다. 박 대표는 “불확실성이 동시에 여러 방향에서 오는 환경이므로 단기 성과보다 품질, 공정, 운영 체력을 우선시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세방전지의 성장은 신뢰를 제품으로 증명해 온 시간의 결과”라며 “단기 매출보다 공정표준화와 품질체계, 설비·인력의 안정적 운영 등 기본기를 중시한 선택이 회복 탄력성을 만들었다”고 덧붙였다.

박 대표는 중견기업들이 대외 불확실성 및 규제에 빠르게 대응할 수 없는 만큼 이 부분에서 정부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중견기업의 경우 환경·사회·지배구조(ESG)는 물론 갈수록 환경 관련 규제가 많아지는데 관련 인력을 늘리고 학습하고 대응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며 “특히 유럽의 자원순환시스템 등에 개별 기업이 대응하기 어렵기 때문에 정부가 정보 수집은 물론 한국 기업에 유리한 방향으로 협상을 잘 해주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일반적인 중견기업은 R&D 진행 자체가 어렵기 때문에 대학 등에 더 적극적으로 연계해준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