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군경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기관총을 들고 있는 모습이 소셜미디어에 게시됐다. 출처 엑스 |
“대지진 때조차 이 정도 참상은 보지 못했습니다. 총소리, 연발 사격, 심지어 중기관총 소리까지 들렸습니다. 이런 장면은 영화에서나 봤지, 현실에서 본 적은 없습니다.”
이란 정권이 반정부 시위대를 무차별적으로 살상하며 인명피해가 확산하는 가운데, 테헤란과 이스파한에서 응급 의료 지원에 나섰던 한 의사가 이란 정권의 폭력 진압이 극에 달했던 지난 8~9일의 참상을 전했다.
영국에 기반을 둔 매체 이란와이어는 14일(현지시간) 익명을 요구한 의사와의 인터뷰를 공개했다. 이 의사는 8일 자정쯤 실탄에 맞은 환자들이 병원에 이송되기 시작했다며 “마치 전쟁터처럼 모두에게 총을 쏘라는 명령을 받은 것 같았다. 이란혁명수비대가 ‘오늘 밤은 우리 차례’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테헤란 인근 카라즈에서는 군경이 중기관총 두쉬카(DShk)를 사용했다는 증언이 나오고 소셜미디어에는 기관총을 든 군경의 사진이 게시됐다. 이 의사도 “두쉬카 소리를 들었다”며 이를 확인했다. 구소련에서 개발된 두쉬카는 12.7㎜ 구경 탄환을 쏘는 무기로, 베트남전과 이라크전, 시리아 내전 등에서 사용된 바 있다.
그는 창문을 여는 순간 화약과 최루탄 냄새가 진동했다며 총격이 끝난 거리에 “피가 1ℓ나 쏟아져 있었고 탄피가 널려 있었다”고 전했다. 또 “총알을 맞닥뜨리는 사람들은 추상적 ‘인권’을 위해서가 아니라 절망 때문에 시위에 나선 것”이라며 “식료품 가격이 세 배로 오르는 것을 보면 ‘천천히 죽느니 차라리 한순간에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해외 언론이 시위대의 영웅적인 모습에만 초점을 맞춰 고통스러운 현실을 제대로 보여주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란와이어는 피해자가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다양한 연령대였지만 대부분은 18~28세 사이였다고 전했다. 이 의사는 근거리에서 총격을 당해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된 시신, 산탄에 눈 부상을 입은 환자들이 많았다며 “산탄은 몸에 영구적으로 남아 신원 정보를 국가에 노출시킨다”고 말했다.
지난 9일에서 11일 사이 촬영되어 소셜 미디어에 유포된 이 영상 캡처 화면은 이란 테헤란주 외곽 카흐리자크에서 시위 진압 후 수십 구의 시신과 애도자들이 있는 영안실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AP연합뉴스 |
노르웨이에 기반한 이란인권(IHR)은 이란 북서부 라슈트에서 군경이 투항 의사를 밝힌 시위대를 향해서도 발포하고 있다는 목격자들의 말을 전했다. 또 숨이 아직 붙어 있는 부상자들을 향해 ‘확인 사살’을 가하는 보고가 수없이 들어오고 있다고 밝혔다.
워싱턴포스트(WP)도 온라인에 공개된 시위 진압 영상을 분석해 이란 군경이 시위대를 향해 살상용 탄환과 산탄총을 발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 영상에는 테헤란 거리의 한 건물 옥상에서 군경을 피해 달아나는 시위대를 향해 발사된 총성이 20초간 울려 퍼지는 모습이 담겼다.
영상을 검토한 무기·탄약 전문가그룹 군비연구서비스의 책임자 NR 젠젠존스는 이란 군경이 살상용 탄환이나 고무탄 같은 비살상용 탄약을 모두 발사할 수 있는 산탄총을 자주 사용한다고 전했다.
IHR은 이날로 18일째 이어진 시위에서 최소 3428명이 사망하고 수천명이 부상, 1만명 이상이 체포됐다고 밝혔다. 미국에 기반한 인권운동가통신(HRANA)는 2615명이 사망했다고 추산했다. 영국에 있는 반체제 매체 이란인터내셔널은 사망자가 1만2000명 이상에 달한다고 추산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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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khan.co.kr/article/202601151632001
이영경 기자 samemin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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