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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VIBE] 석수선의 K-디자인 이야기…고령사회 디자인, 배려넘어 삶의 새기준②

연합뉴스 김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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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VIBE] 석수선의 K-디자인 이야기…고령사회 디자인, 배려넘어 삶의 새기준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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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2024년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2천500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으로 한국 문화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매주 게재하며 영문 한류 뉴스 사이트 K바이브에서도 영문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석수선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겸임교수[본인 제공]

석수선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겸임교수
[본인 제공]



◇ 생성형 AI, '디지털 문맹'을 고령 사회의 최강 사용자로 바꿀 기회

'디지털 문맹'이라는 말은 종종 개인의 능력 부족을 가리키는 말처럼 쓰이지만, 여기서는 그 반대다. 이 표현은 "왜 기계를 못 쓰느냐"고 사람을 탓해온, 기술 중심 설계 관행을 비판하기 위한 용어에 가깝다. 스마트폰과 키오스크, 온라인 뱅킹은 사용법이 익숙한 사람에게는 편리하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에게는 기본적인 생활권을 제약하는 장벽이 되었다. 특히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 중인 한국에서는 이 문제가 곧 사회 구조의 지속 가능성과 직결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5년이면 한국은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20%를 넘는 '초고령사회'로 진입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상황에서 "못 배워서 뒤처진 세대"라고 개인을 탓하는 태도는, 더 이상 설득력이 없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급부상한 생성형 AI(Generative AI)는 고령 사회의 디지털 격차를 해소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게임 체인저'가 될 잠재력을 지닌다. 지금까지의 디지털 기기가 복잡한 화면 구조와 아이콘을 외워야 하는 '학습의 대상'이었다면, 생성형 AI는 사람의 말을 알아듣고 맥락을 이해하는 '대화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노년층은 터치스크린의 좁은 간격을 정확히 누르는 데는 서툴 수 있다. 손가락 힘이 약해졌거나, 미세한 조작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풍부한 어휘와 상황을 짚어내는 언어 능력, 사람을 설득하는 대화 경험은 어느 세대보다 풍부하다. "서울역 가는 기차표 예매해줘, 오전 10시쯤으로, 창가 자리면 좋겠어"라는 자연스러운 한국어 문장은 실제 예매 앱에서 수많은 화면을 넘기며 날짜, 시간, 편도/왕복, 좌석 종류, 결제 수단을 하나하나 선택해야 하는 과정을 단 한 번의 대화로 압축한다.

즉, 생성형 AI 시대는 '기계를 잘 다루는 손기술'보다 '질문을 잘 던지고 상황을 설명하는 능력'이 중요해지는 시기다. 이는 시니어 세대가 가진 연륜과 언어 능력이 기술적 장벽을 넘어 빛을 발할 수 있는 결정적 기회다. 문제는 분명하다. 이 기술을 어떻게 고령자의 일상 속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도구로 설계할 것인가.


최첨단 AI를 탑재해 놓고도 여전히 작은 글씨와 촘촘한 버튼, 복잡한 메뉴를 내민다면 그것은 기술의 낭비다. 화면(GUI) 중심 설계를 넘어, 음성과 자연어 중심의 '무형 인터페이스(Zero UI)'를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눈과 손 대신 입과 귀로 상호작용하는 인터페이스야말로, 생성형 AI 시대 디자인이 수행해야 할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다.

◇ AI 인터페이스, 모두를 위한 '디지털 커브 컷'

고령자를 위해 설계된 대화형 AI 인터페이스는 고령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이는 도시 디자인에서 자주 언급되는 '커브 컷 효과'(Curb-cut Effect)와 닮았다. 휠체어 사용자를 위해 낮춘 인도 턱(커브 컷)이 유모차를 미는 보호자,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가는 여행객, 배달 카트를 몰고 가는 노동자에게도 편리함을 제공했듯, 고령 친화적인 AI 인터페이스는 결국 모든 사용자의 경험을 끌어올리는 하위 구조가 된다.


복잡한 터치 없이 말로 명령할 수 있는 시스템은 노안으로 작은 글씨를 읽기 힘든 고령자뿐만 아니라, 운전 중이라 시선을 떼기 어려운 운전자, 양손에 짐을 든 보행자에게도 가장 안전하고 편리한 도구다. 스마트폰 화면을 보지 않고도 "엄마에게 전화해 줘", "버스 도착 시간 알려줘", "혈압약 먹을 시간 알림 설정해 줘"라고 말하면 되는 환경은 특정 세대가 아닌 모두에게 이득이다.

따라서 "가장 디지털 약자인 고령자의 언어를 정확히 이해하고 수행하는 AI 모델"을 만드는 일은 곧 전체 사용자 경험의 품질을 극단적으로 높이는 '궁극의 품질 보증(QA)' 과정이 된다. 가장 사용하기 어려운 사람도 쓸 수 있게 설계했다면, 그보다 젊고 디지털에 익숙한 사용자에게는 이미 충분히 편리한 수준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 '가르치는 교육'에서 '찾아가는 AI'로


기술이 준비되었다면, 이제 필요한 것은 시니어 세대가 움츠러들지 않고 변화를 수용할 수 있도록 돕는 사회적 공감과 세심한 정책이다. 우리는 흔히 노년층이 키오스크나 스마트폰 앞에서 멈칫거리는 모습을 보며 "배움이 느려서"라고 쉽게 단정 짓는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 이는 노안이나 손의 건조함, 청력 저하 등 신체적 변화를 '결핍'이 아닌 '자연스러운 생애 과정'으로 이해하지 못한 시스템의 탓이 크다.

지금까지의 정책은 주로 "키오스크 버튼 누르는 법", "앱 설치와 로그인 방법"을 가르치는 일방적 교육에 머물러 왔다. 이런 교육은 당장의 두려움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는 있지만, 새로운 앱과 서비스가 계속 등장하는 현실에서는 항상 '뒤쫓기'식 대응일 뿐이다. 생성형 AI 시대의 정책은 방향을 바꿔야 한다. 고령자에게 기계의 언어(UI)를 억지로 외우게 할 것이 아니라, 공공 서비스와 필수 생활 영역에 사람의 말을 이해하는 AI 에이전트를 표준으로 도입하고 제도적으로 정착시키는 것이 핵심이다.

예를 들어, 주민센터의 무인 발급기는 더 이상 복잡한 메뉴판을 먼저 보여주는 대신, "무슨 서류가 필요하세요?", "혹시 건강보험이나 연금과 관련된 서류를 찾으시나요?"라고 먼저 말을 걸어올 수 있어야 한다. 사용자는 "통장 만들려고", "아들 유학 보내려고 서류 떼야 돼", "기초연금 관련된 서류 필요해"처럼 일상 언어로 답하면 된다. AI는 이 자연어를 행정 용어로 번역해 적절한 메뉴를 자동으로 찾아주고, 누를 버튼을 눈에 띄게 강조하는 식이다.

이를 위해 정책은 '디지털 교육' 제공 기능을 넘어, 기술이 고령자의 속도와 언어에 맞춰지도록 유도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금융·의료·행정 같은 필수 생활 영역의 모바일 서비스에 대해서는 '고령 사용자 접근성 가이드라인'을 법적·제도적으로 마련하고, 이를 준수한 서비스에 세제 혜택·인증마크·공공 조달 우대 등의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식이 가능하다.

또한, 고령자의 발화 특성을 이해하는 '고령 특화 AI 데이터셋' 구축도 필요하다. 말끝을 흐리거나, 정확한 용어 대신 "그거 있잖아, 지난번에 뭐… 그거"처럼 맥락으로 말하는 패턴, 사투리와 억양, 청력 저하를 고려한 음성 입력·출력 설계 등은 일반 AI 모델과는 다른 정교함을 요구한다. 이러한 인프라를 공공-민간 협력 형태로 구축하고 개방하면, 스타트업과 다양한 서비스 사업자가 그 위에서 고령 친화형 AI 서비스를 싹 틔울 수 있다. 사회가 이런 안전장치를 마련할 때, 시니어 세대는 비로소 두려움 대신 호기심과 기대를 가지고 AI라는 새로운 파트너를 맞이할 수 있다.

◇ 디자인의 목적지는 효율이 아니라 존엄

결국 고령 사회, 그리고 AI 시대에서 디자인의 최종 목적지는 효율이 아니라 '자율성'과 '존엄'이다. 은행 앱을 켜면서 자식에게 전화를 걸어 "이거 어떻게 하는 거냐"라고 묻지 않아도 되는 상태, 복잡한 무인 기계 앞에서 뒷사람 눈치를 보지 않고 여유 있게 AI와 대화하며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상태가 윤리적 디자인이 지향해야 할 지점이다.

AI를 결합한 잘 설계된 인터페이스는 은퇴한 전문 인력이 사회 활동을 지속하도록 돕는 연결 고리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의사·교사·기술자였던 시니어가 음성 기반 협업 플랫폼을 통해 온라인 멘토링·자문 활동을 이어간다면, 이는 개인의 고립을 막을 뿐 아니라 사회 전체의 지식과 경험이 단절되지 않도록 하는 장치가 된다. 이는 복지 비용을 줄이고, 사회적 생산성을 유지하는 경제적 전략이기도 하다.

결국 고령 친화 디자인은 '배려' 차원의 부가 기능이 아니라 국가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적인 사회 인프라다. 세계 최고 수준의 고령화 속도를 가진 한국에서 이 질문은 더욱 절박하다. "누구에게 익숙함을 전제하고, 누구에게 배움을 강요하고 있는가." 이 질문에 정면으로 답하지 못하는 디자인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디자인이 그동안 외면해 온 것은 노년의 '불편함'이 아니라, 그들의 '존엄'이었다. 이제 막연한 동정의 언어를 거두고, 기술의 기준점을 사람, 그중에서도 가장 약한 고리에 맞춰 다시 세워야 한다. 생성형 AI는 우리에게 그 작업을 할 수 있는 전례 없는 도구를 쥐여 주었다. 남은 것은 기술이 아니라, 그 기술을 어디에 맞추어 설계할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선택이다. 고령자의 눈높이에 맞춘다는 말은 곧, 모두가 더 안전하고 편안한 디지털 세계를 만든다는 뜻이다.

석수선 디자인전문가

▲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 대학원 박사(영상예술학 박사) ▲ 디자인 크리에이티브 기업 ㈜카우치포테이토 대표 ▲ 연세대학교 디자인센터 아트디렉터 역임 ▲ 현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겸임교수 ▲ 한예종·경희대·한양대 겸임교수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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