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그린란드 필요"… 매입·군사 옵션까지 거론하며 압박
덴마크 "정복욕 드러낸 발상 수용 불가"… 실무그룹 구성에도 평행선
북유럽 결집...미 국민 86%, '군사력 동원 점령 반대'
라르스 뢰케 라스무센 덴마크 외무장관(왼쪽)·비비안 모츠펠트 그린란드 외무장관이 1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의 덴마크 대사관에서 이날 백악관에서 진행된 J.D. 밴스 미국 부통령·마코 루비오 국무부 장관과의 협상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EPA·연합 |
아시아투데이 하만주 워싱턴 특파원 기자 = 미국이 북극의 전략적 요충지인 그린란드 '소유'를 요구하며 전방위적 압박 수위를 높이는 가운데 14일(현지시간) 미국 백악관에서 열린 미국과 덴마크·그린란드 고위급 회담은 양측의 '근본적인 이견'만 확인한 채 종료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은 국가 안보를 위해 그린란드가 필요하다"며 '매입'은 물론 군사적 개입 가능성까지 시사한 상황에서 열린 이번 회담은 77년 동안 이어온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동맹국 간의 신뢰가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 되었다.
◇ 백악관의 평행선 "정복욕 드러낸 트럼프" vs 덴마크 "레드라인 침범 불가"
이날 오전 백악관에서는 미국 측 J.D. 밴스 부통령과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이 라르스 뢰케 라스무센 덴마크 외무장관·비비안 모츠펠트 그린란드 외무장관과 회동했다.
회담 직후 라스무센 장관은 덴마크 대사관 앞에서 취재진과 만나 "우리는 솔직하고 건설적인 대화를 나눴지만, 그린란드의 미래에 대해 미국과 덴마크 왕국 사이에는 여전히 '근본적인 이견'이 존재한다"고 밝혔다.
특히 라스무센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의 의도를 '정복(conquering)'이라는 단어를 사용해 묘사하며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그는 "대통령이 그린란드를 정복하고자 하는 소망을 가지고 있음이 분명하다"며 "덴마크 왕국의 영토 보전과 그린란드 국민의 자결권을 존중하지 않는 발상들은 당연히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이와 관련,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라스무센 장관이 지난 1년 넘게 소셜미디어(SNS)에서 이어진 설전을 끝내고 긴장의 온도를 낮추기 위해 대면 회담에 나섰으나, 입장 차만 확인했다고 분석했다.
양측은 파국을 막기 위해 미국의 안보 우려를 논의할 '실무 그룹' 구성에는 합의했으나, 라스무센 장관은 이 그룹이 "미국의 안보 우려를 다루되 덴마크 왕국의 레드라인과 그린란드의 자결권을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14일(현지시간) 찍은 그린란드 누크 전경./AP·연합 |
◇ 트럼프 "골든돔 위해 필요" vs 덴마크 "중국 위협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전후로 압박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회담 직전 트루스소셜을 통해 그린란드가 미국의 차세대 미사일 방어망인 '골든돔' 구축에 필수적이라며 "나토는 우리가 그것을 얻도록 앞장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후 백악관 집무실(오벌오피스)에서 기자들을 만나 "어떻게 될지 두고 보겠지만, 우리는 그것(그린란드)이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러시아나 중국이 그린란드를 점령하려 하면 덴마크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며 "지난주 베네수엘라에서 벌어진 일을 보라"며 최근 군사작전 성과를 거론했다. 이는 덴마크·그린란드가 가장 우려하는 대목인 '강제력' 가능성을 사실상 시사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와 관련, 라스무센 장관은 "중국 군함이 그린란드 주변에 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고 일축했다. 북극 연구소 전문가는 "러시아와 중국 선박들은 사실 북대서양에 있지 않다"며 "그들은 (그린란드 반대편인) 베링해협에 있다"고 말했다고 NYT는 전했다.
시민들이 14일(현지시간) 덴마크 코펜하겐의 미국 대사관 앞에서 '그린란드는 그린란드인의 것'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EPA·연합 |
◇ 북유럽 결집, 스웨덴·노르웨이, 그린란드에 장교단·인력 파견
외교적 해법이 모색되는 동안 북극권의 군사적 긴장은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덴마크와 그린란드 정부는 회담 직전 북극 방위 강화 약속의 일환으로 동맹국들과 협력해 그린란드 일대의 군대 주둔과 훈련·활동을 강화하기 시작했다"고 발표했다.
울프 크리스테르손 스웨덴 총리는 "일부 스웨덴군 장교가 덴마크의 '북극 인내(endurance) 작전' 훈련의 일환으로 오늘 그린란드에 도착한다"고 밝혔고, 노르웨이도 병력 파견을 확인했다. 이는 미국이 안보 공백을 이유로 개입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북유럽 국가들의 공동 대응으로 풀이된다.
회담에 앞서 덴마크와 그린란드에서는 극도의 긴장감이 흘렀다. 덴마크 분석가 노아 레딩턴은 덴마크 사절단이 2025년 2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겪었던 '공개적 모욕'과 같은 상황, '젤렌스키의 순간'을 맞이할까 봐 전전긍긍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로이터는 누크의 공예가 리브 오로라 젠센이 "어젯밤 여동생에게 '공황 발작을 일으키지 않으려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며 미국의 강제 병합 위협에 떨고 있는 그린란드인들의 심경을 생생하게 전했다.
덴마크 외무장관 라르스 뢰케 라스무센 덴마크 외무장관(가운데)과 비비안 모츠펠트 그린란드 외무장관이 1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의 앵거스 킹 무소속 상원의원(메인주) 사무실에서 리사 머코스키 공화당(알래스카주)·루벤 갈레고 민주당(애리조나주) 상원의원들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로이터·연합 |
◇ 미 의회의 초당적 반발 "동맹 신뢰 소각하는 행위"
트럼프 대통령의 독단적인 행보는 미국 내에서도 역풍이 불고 있다.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의원은 상원 연설에서 "나는 현 행정부로부터 이 주권 국가(그린란드) 국민이 이미 우리에게 기꺼이 허용하려는 것 외에 우리가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단 하나도 듣지 못했다"고 지적했다고 AP는 보도했다.
그는 이어 이번 시도가 "북극 접근성에 의미 있는 변화 없이 충실한 동맹국들의 신뢰만 소각하는 것"이라며 직격탄을 날렸다.
퀴니피악대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 유권자의 86%가 군사력을 동원한 그린란드 점령에 반대한다고 답해 트럼프 대통령의 구상이 국내 여론의 지지도 얻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NYT는 전했다.
덴마크와 그린란드 장관 일행은 백악관 회담 직후 연방 의회를 찾아 '북극 코커스' 소속 상원의원들을 만나며 의회 차원의 지지를 호소했다.
미국과 덴마크는 향후 몇 주 내에 실무 그룹 회의를 가질 예정이지만,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는 트럼프 대통령과 "절대 팔지 않겠다"는 덴마크·그린란드의 입장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어 북극발 지정학적 위기는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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