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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만 치료제 전성시대…“‘살’이 아닌 ‘삶’을 치료하고 있는가?” [건강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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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만 치료제 전성시대…“‘살’이 아닌 ‘삶’을 치료하고 있는가?” [건강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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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GLP-1) 계열 치료제는 비만으로 고장 난 시스템을 일시적으로 보정한다. 게티이미지뱅크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GLP-1) 계열 치료제는 비만으로 고장 난 시스템을 일시적으로 보정한다. 게티이미지뱅크


비만 치료제가 의료계의 중심 무대로 올라섰다. 위고비와 마운자로로 대표되는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GLP-1) 계열 신약이 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리서치앤마켓은 지난해 622억달러(약 91조6천억원) 규모였던 GLP-1 계열 비만 치료제 시장이 2035년에는 1575억달러까지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들 약물은 비만 치료를 넘어 알츠하이머병, 비알코올성 지방간염(MASH), 수면무호흡증 등으로 적응증을 넓히고 있다. 투여 방식도 주사제에서 경구용 약물, 이식형 장치, 패치형 제제로 진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제 살을 빼는 약이 아니라, 만성질환 관리의 ‘플랫폼’으로 확장되고 있다.

한국 사회의 반응은 특히 뜨겁다. 2024년 10월 국내에 출시된 위고비는 누적 매출 4천억원을 달성했다. 지난해 8월 상륙한 마운자로 역시 출시 석 달 만에 26만 건 이상 처방됐다. 일부 소비자는 일본으로 원정 구매를 떠날 정도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우리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이 약들은 ‘정말’ 비만을 치료하고 있을까?

체중계 숫자의 유혹, ‘가짜 감량’ 뒤에 숨은 함정

국내 비만 치료 분야의 권위자인 오상우 동국대 일산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30년 넘게 비만을 연구해왔다. 그는 “최근 신약들은 분명 혁신적이지만, 약에만 매몰되어서는 비만을 해결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비만은 생활습관, 정신건강, 유전적 요인 등 다양한 요인이 얽힌 복잡한 질환이기 때문이다.

오 교수는 특히 약물 의존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약물에만 의존해 체중을 줄일 경우 지방과 함께 근육이 빠지면서 기초대사량이 급격히 낮아진다. 이 상태에서 약을 중단하면 몸은 이전보다 더 쉽게 체중을 늘리는 방향으로 반응한다. 오 교수는 “약에만 의존하면 단기간 감량은 가능하지만, 그 과정에서 몸의 대사가 망가지면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더 불리한 상태가 된다”고 강조했다. 이는 최근 임상 연구 결과들과도 궤를 같이한다.

비만은 나태함와 의지 박약의 문제가 아닌 ‘고장 난 시스템’

“덜 먹고 더 움직이면 되는데, 게을러서 찐 살에 왜 비싼 돈을 쓰나?”

비만 치료를 향한 흔한 시선이다. 하지만 이는 비만의 본질을 오해한 데서 오는 편견이다. 의학적으로 비만은 개인의 나태함이 만든 결과물이 아니라 우리 몸의 정교한 조절 시스템이 무너져 발생하는 ‘복합 만성 질환’이기 때문이다.

단순화하자면 우리 몸 안에는 실내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자동 온도조절기’처럼 체중을 일정하게 유지하려는 ‘체중 조절 시스템(Set-point)’이 존재한다. 이 시스템은 식욕, 에너지 소비, 호르몬 분비를 치밀하게 조합해 몸의 항상성을 유지한다. 특정 체중을 ‘정상’으로 인식하면 그 범위를 벗어나지 않도록 우리 몸은 끊임없이 노력한다.

문제는 우리가 처한 환경이다. 고열량 식단, 불규칙한 생활, 만성 스트레스, 그리고 반복적인 다이어트 실패가 누적되면 비만한 상태가 되면서 조절기가 고장 난다. 예를 들어, 과거엔 55㎏을 정상으로 인식하던 몸이 시스템 오류로 인해 70㎏을 정상으로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이때부터 몸은 70㎏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같은 양을 먹고 비슷하게 움직여도 살은 더 쉽게 찌고 빼기는 훨씬 고통스러운 상태가 되는 것이다.

오상우 교수는 “비만을 단순히 칼로리의 더하기 빼기나 의지의 문제로 접근하면 해결은커녕 오히려 악화할 수 있다”며 “근육량을 회복하고 망가진 호르몬 체계를 바로잡는 등 무너진 체중 조절 시스템을 복구하기 위한 장기적이고 다각적인 의학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30년 넘게 비만을 연구해온 오상우 동국대 일산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최근 신약들은 분명 혁신적이지만, 약에만 매몰되어서는 비만을 해결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최승식 기획위원

30년 넘게 비만을 연구해온 오상우 동국대 일산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최근 신약들은 분명 혁신적이지만, 약에만 매몰되어서는 비만을 해결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최승식 기획위원


GLP-1 약물, 무엇을 하고 무엇을 못하나

GLP-1 계열 치료제는 비만으로 고장 난 시스템을 일시적으로 보정한다. 원래 제2형 당뇨병 환자를 위해 개발된 이 약들은 우리 몸의 GLP-1 수용체를 자극한다. 음식이 위장에 남아 있는 시간을 늘려 포만감을 오래 유지하게 하고, 식후 인슐린 분비를 촉진해 혈당을 조절하며, 뇌의 시상하부에 작용해 배가 부르다는 느낌을 준다.

과거의 약물이 뇌 신경전달물질을 직접 자극해 심혈관 질환이나 정신과적 부작용을 일으켰던 것과 달리, GLP-1 계열은 장 호르몬을 모방해 상대적으로 안전하게 식욕을 조절한다. 그러나 ‘비교적 안전하다’는 것이 ‘부작용 없음’을 뜻하지는 않는다. 근손실, 탈모, 위장관 증상은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다. 췌장을 지속적으로 자극하기 때문에 드물지만 췌장염의 위험성도 있다.

무엇보다 약물 중단 후의 반등이 매섭다. 최근 영국 옥스퍼드대학 연구팀이 국제학술지 영국 의학 저널(BMJ)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GLP-1 계열 약물을 중단한 뒤의 체중 증가 속도는 생활습관 개선만으로 감량한 경우보다 최대 4배나 빨랐다. 약물 사용군은 평균 15㎏을 감량했지만, 중단 6개월 내에 평균 10㎏이 다시 증가했다.

오 교수는 “약물 사용 중 단백질 섭취와 근력 운동을 병행하지 않으면 근육 손실이 빠르게 진행된다”며 “같은 몸무게라도 근육은 적고 지방은 많은 몸은 요요 현상이 더 쉽게 온다”고 지적했다.

더불어 최근 유행하는 극단적 저탄수화물 식단도 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탄수화물이 부족하면 단백질이 에너지로 전환되면서 근육이 분해된다. 앞서 말한 것처럼 살찌기 쉬운 몸이 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근육을 지켜 살이 쉽게 찌지 않는 몸을 만들기 위해서는 탄수화물을 적절히 섭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물론 탄수화물은 현명하게 선택해야 한다. 설탕과 가공 음료 같은 유리당은 줄이고, 통곡물·채소·과일 같은 복합 탄수화물을 중심으로 식단을 구성하는 게 좋다.

‘생존’을 위한 투약, 치료의 사각지대

결국 비만 치료제는 몸의 감지 시스템을 잠시 정상처럼 작동하게 돕는 ‘도구’일 뿐, 설정값 자체를 바꿔주지는 못한다. 진정한 치료는 약물이 제공한 ‘기회의 시간’ 동안 규칙적인 식사, 근력 운동, 수면 관리 등을 통해 몸의 조절 시스템을 다시 정상화하는 과정에서 완성된다.

오 교수는 “비만약 외에도 채소나 과일 등 몸에 좋은 음식을 충분히 섭취하고, 신체 활동을 활발히 하는 습관은 만성질환인 비만을 극복하는 데 꼭 필요하다”며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이런 환경을 갖추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일부에게 약물치료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발달장애나 거동장애인, 조현병이나 우울증 등 정신건강 질환으로 장기 약물치료를 받는 환자들이 대표적이다. 특히 항정신병 약물이나 일부 항우울제는 심각한 체중 증가를 유발한다. 이들에게 “의지로 조절하라”는 조언은 가혹할 뿐 아니라 현실성도 없다.

용인정신병원 스마트 낮병원의 윤희경 센터장은 “환자 중에는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처방한 약 복용 후 빠르게 체중이 늘면서 몸이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고 고통을 호소하는 경우도 있었다”며 “비만은 정신질환 환자의 삶의 질을 갉아먹는 치명적인 만성질환으로, 적절한 약물 사용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문제는 가격이다. 절실한 환자들이 경제적 부담 때문에 치료를 중단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오 교수는 “비만 치료제가 삶의 질과 생존에 직결되는 환자들에 한해서는 건강보험 적용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비만 치료제가 미용의 도구를 넘어 공공의료 영역으로 들어와야 한다는 제언이다.

윤은숙 기자 sug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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