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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아 휜 다리, 과학은 무엇을 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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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아 휜 다리, 과학은 무엇을 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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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김대중

일러스트 김대중


소아 휜 다리는 오다리, 엑스다리, 안짱다리가 대표적이다. 진료실에서 부모를 만나면 “아이 다리를 곧게 해주고 싶다”는 바람을 자주 듣는다. 이 마음은 자연스럽고 이해할 만하다. 다만 현대 의학에서 어떤 치료를 권할 때는 선의만이 아니라 과학적 근거를 함께 살펴야 한다.



근거중심의학(Evidence-Based Medicine)의 기준에서 볼 때 생리적 오다리, 엑스다리, 안짱다리에 대해 보조기 치료가 자연 경과를 바꾸거나 변형을 교정한다는 명확한 증거는 없다. 이 결론은 갑자기 내려진 것이 아니다. 실제로 20세기 중반까지 소아정형외과 영역에서는 안짱다리를 교정하기 위해 ‘데니스 브라운 보조기’(Denis Browne Splint) 같은 장치가 사용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축적된 임상 연구에서 이러한 보조기가 다리의 회전이나 정렬을 의미 있게 변화시키지 못한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현재의 표준 진료에서는 더 이상 권고되지 않는다.



현대 의학은 고정된 신념이 아니라 검증과 수정의 과정이다. 과거에는 최선이라 믿었던 치료가 새로운 근거 앞에서 내려놓아지는 일도 적지 않다. 질병을 네 가지 체액의 불균형으로 설명했던 갈레노스의 4체액설은 무려 천 년 넘게 의학의 정설로 받아들여졌다. 열이 나면 피를 뽑았고, 아이가 아프면 체액의 불균형을 의심했다. 이러한 설명 체계 역시 이후 과학의 발전 속에서 자연스럽게 역사 속으로 물러났다. 중요한 것은 과거의 판단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근거가 바뀌면 실천도 함께 바뀌어야 한다는 태도다.



소아의 오다리와 엑스다리는 성장 과정에서 나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변화한다. 이 시기에 보조기를 착용한 뒤 시간이 지나 다리 모양이 달라졌다고 해서 그것이 보조기 때문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생리적 성장 과정 그 자체가 매우 강력한 변수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짚어볼 점이 있다. 보조기 치료는 때로 아이의 다리 상태 자체보다 부모가 느끼는 불안을 완화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아이의 다리가 정상 발달 범위에 속하더라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켜본다는 선택은 부모에게 매우 어려운 결정일 수 있다. 간혹 경과 관찰만 하자는 설명에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지” 되묻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불안을 이해하는 것과 과학적으로 효과가 입증되지 않은 치료를 권하는 것은 분명히 다른 문제다. 의료의 역할은 불안을 이용하거나 즉각적인 개입을 선택하는 데 있지 않다. 충분한 설명을 통해 불안을 낮추고 불필요한 치료를 줄이는 것 역시 중요한 치료의 일부다.



무엇보다 생리적 휜 다리는 질병이 아니다. 통증도 없고 기능적 장애도 없는 아이에게 자연 경과를 바꾸지 못하는 치료를 장기간 적용하는 것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 아이에게는 불편과 스트레스를, 부모에게는 불안과 부담을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학령기에 접어든 이후에도 변형이 지속되고 보행 이상이나 통증, 관절에 대한 부담이 동반되는 경우에는 전문의와 함께 수술적 교정을 하나의 선택지로 고려해볼 수 있다.



소아 휜 다리를 대하는 가장 중요한 출발점은 ‘정확한 이해’다. 무엇이 정상이고 언제 개입이 필요한지를 구분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 판단은 현재까지 축적된 과학적 근거 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이동훈연세정형외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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