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전력·용수 협약 대부분 체결” 강조했지만
전력 부족·인허가·환경 소송 ‘3대 변수’ 여전
전력 부족·인허가·환경 소송 ‘3대 변수’ 여전
SK하이닉스 용인클러스터 전경. SK하이닉스 제공 |
정부가 ‘용인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 조성 의지를 다시 한번 공개적으로 못 박았다. 전력과 용수 등 핵심 인프라 공급 협약이 상당 부분 진척됐다는 점을 강조하며 ‘이번엔 다르다’는 신호를 보냈지만, 시장의 시선은 여전히 싸늘하다. 지자체 간 이해관계 충돌과 환경 규제라는 해묵은 과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탓이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의지를 공식적으로 재확인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7일 "전력·용수·기타 유틸리티 공급과 관련된 협약이 이미 상당 부분 체결됐다"고 밝히며 “클러스터 가동에 필요한 기반 조성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청와대도 8일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이전을 검토하지 않고 있다”라고 선을 그으며 최근 불거진 ‘새만금 이전론’ 논란을 진화했다.
1000조원 메가 프로젝트…기업이 먼저 선택한 ‘용인’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자발적으로 제안한 초대형 프로젝트다.
삼성전자는 2042년까지 용인 이동·남사읍 일대에 시스템반도체 공장 6기 등을 포함해 360조원 이상을, SK하이닉스는 인근 원삼면에 메모리 팹 4기와 연구시설 등을 포함해 약 600조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기흥캠퍼스 미래연구단지까지 포함하면 용인 일대에만 약 1000조원 규모의 투자가 예정된 셈이다.
평택·기흥·화성 등 기존 사업장이 포화 상태에 가까워진 상황에서, 두 회사가 스스로 새로운 거점으로 용인을 제안했고 정부가 2023년 이 일대를 ‘국가 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로 지정하며 힘을 실었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정부 정책에 대한 기업 신뢰가 가장 중요한데, 전력 문제를 이유로 언급된 ‘이전’ 논란은 투자 확신을 흔들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최대 복병은 전력… “15GW 중 6GW 부족”
가장 큰 변수로 꼽히는 건 전력이다. 정부와 업계가 추산한 용인 클러스터의 전력 수요는 최대 15기가와트(GW) 수준으로, 원전 10~15기에 맞먹는 규모다. 현재까지 삼성·SK가 확보한 전력은 약 9GW로, 최소 6GW를 추가로 확보해야 한다.
정부는 2025년 11월 삼성전자·SK하이닉스·한국전력·한국수자원공사·LH와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인프라 구축 협약’을 체결했다. 협약에 따르면 2030년대 중반까지 단지 내에 LNG 발전소 6기를 세워 3GW를 확보하고, 나머지 7GW 이상은 서해안·동해안 등 전력 여유 지역에서 초고압 송전선로로 끌어오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이 계획의 현실성을 놓고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가장 먼저 문제를 공식화한 사람은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다. 2025년 12월26일 CBS 라디오에 출연해 “용인 클러스터에 필요한 전력을 호남·동해안에서 송전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할 수 있다”며 “이제는 기업이 전기가 많은 곳으로 가야 한다”며 사실상 지역 이전을 암시했다.
국회입법조사처도 보고서를 통해 “용인 단지는 서울의 32배에 달하는 전력 밀도를 요구한다”며 “대규모 변전소와 송배전망 지중화·이중화가 기술적으로 가능한지, 주민 수용성을 확보할 수 있는지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신규 송전선과 변전소 건설이 예정된 안성·하남 등 인근 지역에서는 송전선·변전소 건설 계획이 알려지자 “왜 우리 지역이 수도권 반도체 전기를 대신 감당해야 하느냐”며 반발이 확산하고 있다.
문화재 시굴 조사 착수… 삼성 착공 일정에 ‘빨간불’
전력과 별개로 인허가·절차 리스크도 커지고 있다. 삼성은 용인 첨단시스템반도체 국가산업단지 부지에서 올해 하반기 첫 삽을 뜨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최근 매장문화재 조사가 새 변수로 떠올랐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1월 초 삼성 국가산단 부지에서 매장 유산 시굴(표본) 조사에 착수했다. 조사 대상은 용인시 처인구 남사읍·이동읍 일원 119만4000㎡(약 36만평)이며, LH는 “문화재 발굴 가능성이 확인돼 정밀·시굴·표본조사를 추가하게 됐다”며 조사 기간을 약 12개월로 예상했다.
문제는 이 절차가 끝나기 전까지는 해당 구역에서 본격적인 공사에 들어가기 어렵다는 점이다. LH는 “시굴 조사 일정을 사업계획에 이미 반영해 전체 착공 일정에는 차질이 없을 것”이라고 설명하지만, 토지 보상·설계·착공 일정이 맞물린 상황에서 1년짜리 조사 절차가 실제 일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미지수다.
LNG 환경 소송, 15일 1심 선고…"전력 설계부터 흔들릴 수도"
산단 내에 들어설 LNG 발전소를 둘러싼 환경 소송도 사업의 또 다른 뇌관이다. 환경단체와 시민단체는 “용인 국가산단 승인 과정에서 기후변화영향평가와 환경영향평가가 부실했다”며 국토교통부의 산업단지계획 승인 자체를 취소해달라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쟁점은 온실가스 배출량 산정 방식이다. 원고 측은 “사업계획서가 10GW 전력 사용에 따른 온실가스 배출량을 평가해야 함에도, 산단 내 3GW 규모 LNG 발전소의 직접배출량(연 977만t)만 반영했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삼성전자가 RE100(재생에너지 100%)을 선언한 상황에서 LNG 혼합 연소 발전을 전제로 한 전력 공급 설계는 기업 전략과도 배치된다”고 비판한다.
서울행정법원은 1심 선고를 1월15일로 잡았다. 만약 법원이 환경단체 손을 들어준다면, LNG 발전소 인허가뿐 아니라 용인 클러스터 전체 전력 공급 계획의 재설계가 불가피해질 수 있다.
“방향은 맞다, 속도가 문제”…실행력 시험대 오른 용인
정부와 용인시는 “방향은 이미 정해졌고, 이제는 실행 단계”라는 입장을 거듭 강조한다. 이상일 용인특례시장은 1월9일 “정부가 이미 세운 전력·용수 공급 계획은 반드시 실행돼야 하며, 이는 전적으로 정부의 책임”이라고 못박았다.
한 업계 관계자는 “큰 방향에는 이견이 없지만, 지금 같은 속도와 실행력으로는 글로벌 반도체 클러스터 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렵다”며 “지금이야말로 냉정한 점검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