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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칼럼] 숨이 바꾸는 감정, 감정이 바꾸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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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칼럼] 숨이 바꾸는 감정, 감정이 바꾸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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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의 심리학자 피에르 필리포 박사는 한 가지 흥미로운 질문에서 연구를 시작했다.

감정이 호흡에 영향을 줄까? 그는 피실험자들에게 슬픔, 두려움, 분노, 행복 등 다양한 감정을 유도한 뒤 호흡 패턴을 관찰했다.

결과는 명확했다.

슬플 때는 호흡이 불규칙해지고 얕아졌으며 행복할 때는 자연스럽게 깊고 안정된 호흡이 나타났다.

두려움을 느낄 때는 호흡이 빨라지며 가슴 위쪽으로만 숨을 쉬었고, 분노할 때는 거칠고 짧은 호흡 패턴을 보였다.

각각의 감정은 저마다 고유한 호흡의 서명을 갖고 있었다.


여기서 연구팀은 더 대담한 질문을 던졌다.

감정이 호흡을 만든다면, 반대로 호흡이 감정을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그들은 정리된 호흡 패턴을 피실험자들에게 의도적으로 따라 하도록 요청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천천히 깊게 호흡한 사람은 평온함을 느꼈고, 빠르고 얕게 호흡한 사람은 불안과 분노를 경험했다.

단지 호흡 방식만 바꿨을 뿐인데, 실제 감정 상태가 변화한 것이다.

이 발견이 시사하는 바는 명확하다.


우리는 감정에 휘둘리는 수동적 존재가 아니다.

호흡이라는 도구를 통해 감정을 다스릴 수 있는 주체적 존재다.

우리 안에는 이미 강력한 자기 조절 시스템이 내장되어 있었던 것이다.

호흡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단 한 순간도 멈추지 않는 생명 활동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호흡을 의식하지 않은 채 살아간다.

마치 귀한 보물을 품고 있으면서도 그 존재를 모르는 것처럼 말이다.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호흡은 삶의 질을 크게 향상시킬 수 있는 가장 가까운 도구인 것이다.

불교를 비롯한 거의 모든 명상 전통에서 호흡은 핵심적인 수행 도구다.

불교 경전에는 호흡을 알아차리고 관찰하는 것이 깨달음에 이르는 중요한 길로 기록되어 있다.

물론 경전의 가르침대로 호흡하는 것이 처음부터 쉽지는 않다.

그럴 때 나는 붓다의 호흡을 상상해본다.

서두르지 않고, 억지로 조절하려 하지 않으며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호흡.

단지 상상이고 흉내일 뿐인데, 이 방법은 의외로 효과가 있다.

상상의 대상은 부처님일 수도, 평온해 보이는 누군가일 수도, 존경하는 어떤 분일 수도 있다.

현대 생리학 연구는 호흡의 힘을 더욱 구체적으로 입증한다.

날숨을 길게 내쉬면 심박수가 낮아지고 부교감신경계가 활성화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부교감신경계는 우리 몸의 '휴식과 회복' 시스템을 담당한다.

이 시스템이 활성화되면 스트레스 호르몬이 감소하고, 소화 기능이 향상되며 면역력도 강화된다.

현대인들은 대부분 '투쟁 또는 도피' 반응을 담당하는 교감신경계가 과도하게 활성화되어 있다.

따라서 의식적으로 날숨을 길게 내쉬는 호흡을 통해 균형을 되찾는 것이 필요하다.

호흡할 때의 자세도 중요하다.

등을 곧게 펴고 앉으면 호흡이 더 깊어지고, 정신도 더 맑아진다.

구부정한 자세는 가슴을 압박해 호흡을 얕게 만들고, 그러면 마음도 답답해지고 우울해지기 쉽다.

자세와 호흡과 마음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여기에 행복하고 평온한 마음을 의식적으로 더하면 금상첨화다.

호흡을 하면서 '나는 지금 평온하다', '나는 지금 행복하다'라는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다.

호흡과 마음이 하나가 될 때, 변화는 더욱 강력해진다.

하루에 단 몇 분이라도 자신의 호흡에 온전히 주의를 기울여보자.

그 순간만큼은 다른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오직 호흡에만 집중하는 것이다.

들숨과 날숨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고, 공기가 코를 통과하는 느낌, 가슴과 배가 움직이는 느낌을 섬세하게 느껴보자.

단지 호흡을 알아차렸을 뿐인데, 신기하게도 마음도 몸도 삶도 여유로워진다.

호흡을 바꾸면 마음이 바뀌고, 마음이 바뀌면 삶이 바뀐다.

이것은 거창한 이론이 아니라 실제로 경험할 수 있는 구체적인 변화다.

우리를 더 풍요롭고 평화롭게 만들어주는 것은 멀리 있지 않다.

언제나 우리와 함께 숨 쉬고 있다.

지장스님 청주 용화사 연수원장 종교,호흡,불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