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경 여성금융인네트워크 회장 인터뷰
김상경 여성금융인네크워크 회장 |
“금융권에서 여성 임원이 적은 이유는 개인 역량의 문제가 아닌 여성이 임원이 될 수 없게 만드는 구조 때문입니다”
김상경 사단법인 여성금융인네트워크 회장은 14일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와의 인터뷰에서 “금융권 유리천장은 개인의 노력으로 깨트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제도로 해체해야 할 구조적 장벽”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20년 넘게 유리천장에 금을 내왔으나 변화가 없었다면, 이제는 금이 아니라 제도로 승부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여성금융인네트워크가 지난해 5월 금융권 중간관리자 이상을 대상으로 ‘왜 아직도 여성 임원이 소수인지’를 묻는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가장 큰 장벽으로 성역할 고정관념, 성차별적 조직문화, 업무 고착화 등이 꼽혔다. 리더스인덱스 조사에서도 금융권 여성 임원은 남성 대비 경영기획 및 총괄, 영업∙마케팅, 재무 분야 등에서 현저히 낮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 회장은 이같은 통계를 언급하며 “여성은 금융권에 진입한 이후 90% 이상이 리테일 부문 한 분야에 고착되는 반면, 남성은 다양한 핵심 부서를 거치며 임원으로 성장하는 구조에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여성 임원이 적은 이유는 여성 인재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구조적으로 임원이 될 수 없는 경로에 놓여 있기 때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로 금융권의 출발선에서는 여성의 비율이 결코 적지 않다. 오히려 은행권의 경우, 여성 직원 비율은 평균 55.3%에 달한다. 하지만 대리∙과장∙차장∙부장을 거쳐 임원 단계로 갈수록 여성 비중은 계속 떨어진다.
이는 단순한 숫자의 문제가 아니다. 경력 경로 어딘가에서 계속 인재가 새고 있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여성 리더로 성장할 수 있는 인력들이 중간 단계에서 반복적으로 이탈하면서 파이프라인에 누수가 생기고 있는 것이다.
김 회장은 “그럼에도 경영층에서는 늘 ‘여성 임원으로 승진시킬 자원이 없다’고 말한다”며 “정말 자원이 없는 것인지, 아니면 자원이 남아 있을 수 없는 구조인 것인지를 되묻고 싶다”고 했다. 이어 “금융권에는 유능한 여성 인재가 많이 있음에도 여성 임원은 여전히 희귀한 존재로 남아 있다. 20년 넘게 ‘여성 임원 30%’를 외쳐왔지만 변화는 너무 더뎠다”며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여성 유리천장에는 다양한 원인이 있다. 출산과 육아를 여성에게 주로 전가해온 사회 구조, 일·가정 양립의 어려움, 육아휴직 이후 경력 공백에 대한 낮은 관용 등도 배경으로 꼽힌다.
여기에 여성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는 역량 평가와 승진 기회 부족, 다양성에 대한 고위 경영진의 인식 부족 등이 여성 인재의 이탈을 더욱 가속화한다는 지적도 많다. 이러한 조건에서 개인의 노력만으로 유리천장을 깨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결국 개인 의지가 아닌 제도의 문제로 사안을 접근해야 한다는 주장이 강한 설득력을 갖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여성금융인네트워크는 지난해 10월 여성금융인 국제 행사에서 ‘한국형 여성 금융인 헌장’을 선언한 바 있다.
김 회장은 “이 헌장은 선언으로 끝나는 문서가 아니라 실행과 측정, 공개를 전제로 한 구조적 장치”라며 “성평등가족부가 컨트롤타워가 되고, 각 금융사 최고경영자(CEO)가 직접 서약서에 서명한다”고 소개했다.
각 금융사는 연례 평가와 개선 보고서를 발간하며 헌장 이행 여부를 ESG 공시 항목과 연계하는 게 여성금융인네트워크의 목표다.
김 회장은 “가장 중요한 건 CEO의 직접적인 참여와 책임 선언”이라고 밝혔다. 한국형 여성금융인 헌장은 법이 아닌 정부와 금융당국과 각 금융기관이 함께 만드는 자율적 서약 모델인 까닭이다. 김 회장은 “올해는 헌장을 실제 금융권에서 작동시키기 위한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마련하고, 현장에서 하나씩 실천해 나갈 계획”이라고 힘줘 말했다.
노성우 기자 sungcow@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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