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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조 베팅' 글로벌 명품 브랜드…K뷰티 공습에 무너졌다

아시아경제 박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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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조 베팅' 글로벌 명품 브랜드…K뷰티 공습에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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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티로더, '1조 몸값' 닥터자르트 등 매각 추진
K뷰티 브랜드 약진으로 성장세 주춤
글로벌 명품 화장품 기업 에스티로더가 10년전 1조원대에 인수한 한국 뷰티 브랜드 '닥터자르트(Dr.Jart+)'를 비롯해 실적이 부진한 3개 브랜드에 대한 매각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전 세계적으로 확산된 'K-뷰티 트렌드'가 전통 명품 브랜드들의 위기로 번지는 모양새다.

14일 영국 패션전문지 BOF에 따르면 최근 에스티로더는 닥터자르트와 '투페이스드(Too Faced)', '스매쉬박스(Smashbox)'를 묶어 패키지딜에 나섰다. 매각 주관사는 투자은행인 에버코어(Evercore)와 J.P. 모건으로, 잠재적 매수자인 대형 사모펀트와 접촉한 것으로 전해진다. 매각가는 수억달러대로 추산됐다. 2016년 에스티로더 품에 안긴 투페이스드 단일 브랜드 인수가격이 14억5000만달러 수준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대폭 할인된 가격이다.
에스티로더가 기존 브랜드들의 점유율 하락이 지속되면서 핵심 브랜드를 중심으로 '선택과 집중' 전략으로 전환했다는 분석이다. 이는 한국의 인디 화장품 브랜드들가 글로벌 시장에서 급부상하면서 화제성 면에서 뒤처진 결과로 해석된다.

2004년 출범한 한국 브랜드인 닥터자르트는 2019년 한국 브랜드 중 최초로 에스티로더에 인수되며 화제를 모았다. 'K뷰티 성공 신화'로 불렸던 당시 기업가치는 약 11억달러(당시 약 1조3000억원)로 평가받았다. 스티로더는 아시아 시장 공략을 위해 젊은 소비자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브랜드들을 대상으로 적극적인 인수합병(M&A)에 나선 바 있다.

하지만 K뷰티 인디 브랜드들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에스티로더로 넘어간 닥터자르트는 경쟁력을 잃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닥터자르트 운영사 해브앤비의 매출액은 2019년 6346억원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한 뒤, 계속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2025 회계연도(2024년 7월~2025년 6월) 기준 매출은 1788억원으로 전년 대비 23%가량 감소했고, 231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해 2년 연속 수익성이 뒷걸음쳤다.

에스티로더는 면세점 가격을 인하해 수요 회복에 나섰다. 올해 1월 1일부터 에스티로더, 라메르, 맥(MAC), 조말론런던 일부 제품의 면세가를 5% 내외로 인하했고, 갈색병(-5.2%), 크렘 드 라메르(-5.4%) 등을 중심으로 가격을 조정했다. 연초마다 명품 브랜드들이 환율 상승을 이유로 'N차 인상' 행렬을 이어가는 것과 대비되는 움직임이다.

에스티로더의 한국 시장 실적도 최근 들어 주춤하는 모습이다. 에스티로더의 한국 법인 이엘씨에이의 2024 회계연도(2023년 7월~2024년 6월) 매출은 5031억원에서 지난해 4631억원으로 전년 대비 약 8% 줄었는데,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745억원에서 359억원으로 52% 급감했다. 임대료, 인건비 등 고정비는 그대로이지만 매출이 꺾이면서 수익성에 타격을 받은 것으로 풀이된다. 글로벌 에스티로더는 지난해 9월 마감된 분기 매출이 3% 증가하며 4분기만에 반등했지만, 13% 늘어난 향수 매출이 성장을 견인했다. 메이크업 부문은 2% 감소했다.

반면 K뷰티 브랜드는 무서운 속도로 약진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화장품 수출액은 114억달러로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특히 세계 최대 화장품 소비국인 미국 시장에서 한국 화장품의 대미 수출은 프랑스를 제치고 1위에 올라섰다.

국내 K뷰티 대표 기업인 아모레퍼시픽과 에이피알의 해외 수출 비중은 꾸준히 확대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의 해외 매출 비중은 2021년 34.1%였지만 지난해 3분기 43.4%로 확대됐다. 아모레는 향후 해외 매출 비중을 70%까지 늘리겠다는 계획이다. 에이피알의 해외 매출 비중 또한 2021년 40.7%에서 지난해 3분기 76.9%로 급증했다. 특히 지난해 3분기까지 미국 매출은 7537억원으로 2024년 전체 미국 매출(3998억원)을 훌쩍 뛰어넘었다.


업계 관계자는 "닥터자르트가 에스티로더에 인수되던 시기만 해도 백화점 입점이 성공의 기준이었다"며 "지금은 한국 인디 브랜드들이 틱톡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팬덤을 형성하고 성분과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를 따지는 실용주의적 소비 패턴이 등장하면서 기존 공식이 더이상 적용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재현 기자 now@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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