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만에 열린 지메르만 내한 리사이틀…공연 당일 선곡한 작품들 선보여
쇼팽과 바흐의 완벽한 해석…드뷔시의 독특함과 라흐마니노프의 장엄함도
쇼팽과 바흐의 완벽한 해석…드뷔시의 독특함과 라흐마니노프의 장엄함도
연주 중인 크리스티안 지메르만 |
(서울=연합뉴스) 임순현 기자 = 지난 13일 서울에서 2년 만에 열린 폴란드 피아니스트 크리스티안 지메르만의 리사이틀은 다양한 조성의 프렐류드(전주곡)를 한자리에서 듣는 그야말로 종합선물 세트 같은 공연이었다.
사전에 연주 목록을 알리지 않겠다는 지메르만의 공언대로 공연 프로그램북에는 연주자에 대한 소개만 짤막하게 담겨있을 뿐 작품에 대한 설명은 전혀 없었다. 대신 공연 주최 측은 현장에서 급하게 A4 용지에 빼곡하게 기재한 연주목록을 관객에게 배포했다.
짧게는 40초에서 길게는 10분에 이르는 24개 전주곡 목록의 가장 앞줄에 선 작품은 많은 사람이 예상했던 쇼팽이나 바흐의 곡이 아니었다. 바로 로만 스타트코프스키라는 한국 관객에게는 낯선 폴란드 작곡가의 '전주곡 1번'이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활동했던 스타트코프스키는 주로 오페라와 실내악 작품을 쓴 작곡가다. 총 6개 전주곡도 남겼는데, 지메르만은 조국의 선배 음악가인 그의 첫 번째 전주곡을 공연의 시작을 알리는 효시로 삼았다.
약간의 불협화음이 섞인 스타트코프스키의 전주곡으로 몸을 푼 지메르만은 이후 쇼팽과 바흐, 슈만, 라흐마니노프, 거슈윈, 드뷔시 등 다양한 작곡가들의 전주곡을 선보였다.
크리스티안 지메르만 |
쇼팽 콩쿠르의 전설적인 우승자답게 쇼팽 전주곡은 6곡이나 연주했다. 17번을 시작으로 15번, 16번, 7번, 4번, 11번이 선택됐다. 특히 '빗방울'이란 부제로 유명한 15번에 16번을 곧바로 붙여서 연주한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잔잔하고 서정적인 15번 뒤에 16번의 속사 연주가 이어지면서 소박하게 내리던 빗줄기가 서서히 거세지고 결국 굵은 소나기가 시원하게 퍼붓는 장면을 연상케 했다.
바흐의 대표적인 전주곡인 '전주곡 1번'과 '파르티타 1번'을 각각 1부와 2부 초반에 배치한 점도 흥미로웠다. 이는 전형적인 전주곡 형식의 '전주곡 1번'과 독특한 형식의 전주곡인 '파르티타 1번'을 의도적으로 대치되게 선곡한 것으로 해석된다. 다양한 형식과 연주기법의 전주곡을 남긴 바흐의 예술 세계를 고스란히 느껴보라는 지메르만의 숨은 배려로도 풀이된다.
독특한 화성과 리듬, 색채를 띤 드뷔시의 전주곡 3편도 공연을 알차게 했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한여름 밤의 꿈'을 소재로 작곡한 '요정의 춤'(1권 11번)은 마치 희곡 속 요정 '퍽'이 공연장 허공을 날아다니는 듯한 느낌을 줬다. 춤곡의 리듬을 살린 '괴짜장군'(2권 6번)과 '민스트렐'(1권 12번)은 몸을 들썩이게 할 정도로 강렬한 연주였다.
관객에게 인사하는 크리스티안 지메르만 |
공연의 대미를 장식한 라흐마니노프의 '전주곡 2번'은 두고두고 회자할 무대였다. '종소리' 또는 '모스크바의 종'이라는 부제로 불리는 이 작품은 피아노 독주곡임에도 마치 오케스트라 선율이 들리는 것처럼 착각될 정도로 웅장하고 장대한 작품이다.
지메르만은 종소리를 연상시키는 강한 화음으로 곡의 긴장감을 쌓아 올린 뒤 서서히 음들을 풀어헤치듯 연주를 마쳤다. 연주가 끝나고도 지메르만이 10여초 동안 동작을 멈춘 채 가만히 앉아 있자, 공연장은 깊은 바닷속처럼 고요해졌다. 아무런 소음도 들리지 않는 그 순간마저도 연주의 일부처럼 느껴지는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5분간 이어진 관객의 기립박수에 지메르만은 드뷔시의 '아라베스크'를 앙코르곡으로 선보이며 공연을 마무리했다.
지메르만의 내한 리사이틀은 이후에도 네 차례 더 열릴 예정이다. 15일과 18일은 서울 롯데콘서트홀, 20일은 부산콘서트홀, 22일은 대구콘서트하우스에서 열린다. 마찬가지로 연주 목록은 공연 당일 현장에서 공개된다.
hy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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