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광원 여행작가]
(더쎈뉴스 / The CEN News 윤광원 여행작가) 신촌(新村)은 서울특별시 중서부에 자리한 대학가(연세대학교, 서강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홍익대학교) 중심의 부도심인 서대문구 신촌동, 창천동, 마포구 노고산동 일대를 일컫는다.
신촌이라는 이름은 '새터 말'에서 유래했는데, 조선 태조가 여기를 수도로 삼자는 신하들의 여론에 따라, 인근을 둘러봤다고 알려져 있다.
조선시대에는 한성부 북부(西部) 연희방(延禧坊)이었다.
연세대 본관인 언더우드 관(사적). /사진=윤광원 기자 |
(더쎈뉴스 / The CEN News 윤광원 여행작가) 신촌(新村)은 서울특별시 중서부에 자리한 대학가(연세대학교, 서강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홍익대학교) 중심의 부도심인 서대문구 신촌동, 창천동, 마포구 노고산동 일대를 일컫는다.
신촌이라는 이름은 '새터 말'에서 유래했는데, 조선 태조가 여기를 수도로 삼자는 신하들의 여론에 따라, 인근을 둘러봤다고 알려져 있다.
조선시대에는 한성부 북부(西部) 연희방(延禧坊)이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연희방 새터 말이 경기도 고양군 연희면에 편입되면서 신촌리가 됐다가, 1936년 1월 경성부의 지역 확장으로 경성부(京城府)의 일부로, 일본식 지명인 신촌정이 됐다.
1940년 7월 경성부 북부출장소 신촌정, 1943년 6월 경성부 서대문 구역소 신촌정, 1945년 10월 구제(區制) 시행으로 신설된 서대문구 신촌정으로 바뀌었다.
1946년 10월 일제 잔재 청산의 차원에서, 정(町)을 동(洞)으로 고칠 때 신촌동이 됐다.
이 일대에는 '대골', '홍부 뒷골' 등의 자연마을과 '버리고개', '알젓 고개' 등의 고개가 있었다. 버리고개는 수경원(綏慶園), 즉 장헌세자(사도세자)의 생모인 영빈이씨 무덤의 주룡(主龍)이므로, 이 고개를 넘어가는 사람은 불경죄로 벌을 받았다는 데서 명칭이 유래한다.
또 신촌 로터리 부근은 일제강점기까지 '잔돌 배기', 혹은 '주막거리'라고 부르기도 했다.
서소문 쪽에서 아현 고개를 넘어오면 자잘한 돌이 많이 있다고 해서 붙은 이름으로, 일제가 김포공항(金浦空港)까지 군용도로를 만들기 위해 겨우 지겟길 정도에 불과한 소로를 확장, 개통했다고 한다.
대학들이 모여있는 신촌을 대표하는 학교는 역시 연세대학교(延世大學校)다.
연세대학교는 1885년에 처음 설립된 개신교 계통의 사립 종합대학이다. 약칭으로 연대(延大)라고 불린다. 무려 140년 역사를 자랑하는, 대한민국 종합사립대 중 최고 명문으로 통한다.
오늘날의 대학명은 1957년 연희대학교와 세브란스 의과대학을 통합하면서, 공식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연희대는 1915년 미국 북장로교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 선교사(宣敎師)가 설립한 조선기독교 학교에서 출발한 연희전문학교(延禧專門學校)가 전신이고, 세브란스 의대는 1885년 북장로교 호러스 뉴턴 앨런 선교사가 고종의 지원을 받아 설립한, 최초의 근대식 병원인 광혜원(廣惠院)이 뿌리다.
두 대학의 통합으로 연희대의 '연'자와 세브란스 의대의 '세'자를 따서 연세대가 된 것.
연세대 설립자 언더우드(원두우) 동상. /사진=윤광원 기자 |
1955년 연희대와 세브란스 의대의 이사회는 재단법인(財團法人) 연세대학교를 설립하는 데 합의, 1956년에 법인이 신설됐다. 이어 1957년 1월 5일, 두 대학이 통합하면서 연세대로 교명을 변경했다. 초대 총장은 백낙준, 부총장은 최현배 선생이었다.
신촌캠퍼스는 서울 서대문구 연세로(延世路) 50(연희동)에 있는 연세대의 제1 캠퍼스다.
언더우드의 큰형인 존 토마스 언더우드는 대학 설립용 자금으로 10만 달러를, 로스앤젤레스의 찰스 스팀슨은 2만5천 달러를 연희전문학교에 기부했다. 언더우드의 후임 교장인 에비슨이 기부금으로 교사(校舍)를 건립했다.
당시 연희전문은 경기도 고양군 연희면 신촌리의 숲이 울창한 토지 19만320평을 매입했다.
이곳은 조선 정종 때 세워진 연희궁터와 영조(英祖)의 후궁인 영빈 이씨(映嬪李氏)의 수경원이 자리 잡고 있었고, 학교명 '연희'는 연희궁에서 연유했다.
오늘은 신촌 일대와 연세대 캠퍼스를 찾았다.
서울 지하철 2호선과 경의·중앙선 및 공항철도가 연결되는 홍대입구역(弘大入口驛)에서 내려 6번 출구로 향한다.
'젊음과 레일의 콜라주'라는, 역 소개 안내판이 보인다.
개성과 젊음의 상징 홍대입구역은 신개념 민자역사(民資驛舍)다. 공덕역 등 경의·중앙선 일부 역사와 함께 수익형 민자사업으로 지어졌다. 2만844㎡의 넓은 부지에 300실 규모의 호텔과 쇼핑몰, 기업 사옥들이 지하 역사와 어우러진, 새로운 형태의 현대식 복합민자역사다.
6번 출구로 나가면, 바로 '경의선 숲길'과 만난다.
경의선(京義線) 숲길은 경의·중앙선과 공항철도가 지하에 건설되면서, 그 상부에 조성된 도심 공원이다. 특히 마포구 연남동 구간은 정감 있는 건물과 카페들이 어우러진 분위기가 미국 뉴욕의 '센트럴파크'를 닮았다고 해서, '연트럴파크'라고 불리기도 한다.
숲길의 홍대입구역에서 서강대역 방향은 한때 국내에서 가장 많은 출판사가 모여 있던 책(冊)들의 고향으로, '경의선 책거리'라는 신개념 문화공간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홍대 앞 '레드 로드'의 일부로 바뀌었다.
'윈터 페스타 엄빠랑 아이스링크'도 레드 로드답게 빨갛고, '레드 로드 발전소' 외벽은 주황색(朱黃色) 옷을 입었다. 길 양쪽 특이한 건물들도 주황과 검정, 흰색으로 칠했다.
[윤광원 여행작가는] 한양대학교에서 사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 30년가량 경제기자로 일해 왔다. 특히 금융과 정부정책 관련 기사를 많이 썼다. 그러면서도 많은 책을 읽으며 인문학적 소양을 길렀고 걷기와 등산을 열심히 했다. 특히 8년 넘게 트래킹모임 '길사랑'을 이끌면서 사람들과 산과 들을 무수히 걸었다. 매주 어딘가를 갔고 토요일과 일요일 이틀 연속으로 나간 적도 많다. 짬이 나면 주중에도 다니곤 한다. 이 글은 그 결과물이다.
저서로는 경제논술 전문서인 《깐깐 경제 맛깔 논술》과 해방 이후 우리나라 금융 산업의 역사를 야사를 중심으로 정리한 《대한민국 머니 임팩트》가 있다. 또 도보여행 작가로 쓴 《배싸메무초 걷기 100선》과 《산 따라 강 따라 역사 따라 걷는 수도권 도보여행 50선》 등 도 있다.
(더쎈뉴스 / The CEN News) 윤광원 여행작가 gwyoun171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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