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1월14일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박종철 열사/사진=(사)박종철기념사업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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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1월14일, 남영동 대공분실 509호에서 벌어진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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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중후반 들어 전두환 정권 탄압과 그에 맞서는 저항은 점점 더 격해졌다. 경찰은 '민주화추진위원회사건'으로 수배를 내린 박종운 서울대 학생을 찾기 위해 후배인 박종철 열사를 1987년 1월14일 불법 체포했다.
박 열사를 데리고 간 곳은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 509호 조사실이었다. 경찰 대공수사관들은 박종운 소재를 추궁하며 폭행, 전기 고문, 물고문 등을 가했다. 극한 고문 도중 박 열사는 결국 의식을 잃고 체포 당일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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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열사를 데리고 간 곳은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 509호 조사실이었다. 경찰 대공수사관들은 박종운 소재를 추궁하며 폭행, 전기 고문, 물고문 등을 가했다. 극한 고문 도중 박 열사는 결국 의식을 잃고 체포 당일 사망했다.
지난해 6월10일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이 민주화운동기념관으로 개관했다. 박종철 열사의 사망진단서 등이 전시된 모습. /사진=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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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을 '탁' 치니까 '억' 하고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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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고문 사실을 은폐하려 시신을 화장하려 했지만 검찰이 거부했다. 무언가를 감추려는 듯한 행동을 수상히 여겨 시신 부검이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결국 사인은 '고문에 의한 경부 압박 질식'으로 드러났다.
그 과정에서 1월15일 신문에 '경찰에서 조사받던 대학생 쇼크사'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리면서 파문이 커졌다. 경찰은 사인을 쇼크사라고 보고했지만 검찰은 가혹행위로 숨졌을 가능성을 살펴보고 있다는 것이 기사 내용이었다.
다급해진 경찰은 신문 기사가 실린 당일 기자회견을 열어 사망 사실을 인정했다. 하지만 고문이 있었다는 사실을 숨기려 했다. 당시 경찰은 "냉수를 몇 컵 마신 후 심문을 시작했는데 박종철군 친구 소재를 묻던 중 갑자기 '억' 소리를 지르면서 쓰러져 중앙대 부속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12시쯤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공식 발표에 앞서 기자들이 사실 확인차 몰려들자 치안본부장은 "책상을 '탁' 치니까 '억' 하고 죽었다"는 말도 안 되는 해명을 내놨다. 이 발언은 박 열사 고문치사 사건과 6월 항쟁을 상징하는 말이 됐다.
영화 '1987' 포스터/사진=CJ엔터테인먼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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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헌 철폐, 독재 타도' 민주 항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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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검의 증언, 언론 보도 등으로 의혹이 끊이지 않자 경찰은 사건 발생 5일이 지나 물고문 사실을 시인했다. 이어 고문을 한 경찰관들이 구속됐다.
정권은 내무부장관, 치안본부장 해임으로 사태를 수습하려 했지만 1987년 5월18일 광주 민주화 운동 7주기 추모 미사에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경찰의 사건 축소 의혹을 구체적으로 폭로하면서 정권 규탄 시위가 대대적으로 벌어졌다.
특히 그해 6월 부산에서 '6·10 박종철군 고문 살인 은폐 규탄 및 호헌 철폐 국민 대회'가 열렸고 이는 6월 민주 항쟁으로 이어졌다. 6월10일부터 전국적으로 대통령 직선제 개헌 등 민주화를 요구하며 대규모 시민 항쟁이 벌어진 것이다. '호헌 철폐, 독재 타도'를 외치는 시위는 전국 곳곳에서 매일 100회 이상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됐다.
결국 전두환 정권은 6월29일 6·29민주화선언을 통해 대통령 직선제 개헌 요구를 수용했고 노태우 당시 대통령 후보가 이를 발표했다. 이로써 신군부 군사독재를 청산하는 계기가 마련됐다. 민주화 운동의 값진 산물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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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철아, 잘 가그래이. 이 아부지는 아무 할 말이 없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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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6월10일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이 민주화운동기념관으로 개관했다. 박종철 열사가 고문을 받다 숨진 509호 조사실. /사진=뉴시스 |
박 열사를 기리는 행사는 매년 1월14일 진행된다. 올해도 박종철기념사업회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와 공동으로 옛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 박종철 열사 39주기 추모제'를 연다.
박 열사 아버지는 화장한 유해를 임진강에 뿌리면서 "종철아, 잘 가그래이. 이 아부지는 아무 할 말이 없대이"라고 말했는데 이 말은 박 열사를 추모하는 상징적인 구호가 됐다. 박 열사 고문치사 사건을 그린 영화 '1987'에도 대사로 나와 많은 이들을 눈물 흘리게 했다.
남영동 대공분실은 보존돼 민주화운동기념관으로 재탄생했다. 박 열사가 고문받다 사망한 509호실은 추모 공간으로 운영되고 있다.
양성희 기자 yang@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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