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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 '댄싱 퀸'의 위력[임진모의 樂카페]

이데일리 김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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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 '댄싱 퀸'의 위력[임진모의 樂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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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곡에 빼어난 가창력, 디스코 접목해 미국까지 지배
50년 지나도 변함없는 인기
예술성만이 생명력 부여…K팝도 예술에 대한 탐닉 필요
[임진모 대중음악평론가] 빌보드는 올해 50주년을 기념해야 할 1976년의 위대한 음악 궤적 20가지 중 하나로 스웨덴 그룹 아바의 ‘댄싱 퀸’을 뽑았다. 아바 이력에서 최고의 글로벌 히트작이다. 당시 그들은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 대상에 빛나는 ‘워털루’와 영국 시장을 장악한 ‘맘마미아’ 등 풍성한 히트곡으로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그들의 가공할 급등을 두고 서구 언론은 영국의 침공에 빗대 ‘스칸디나비아의 침공’이라고 상찬했다. 하지만 멤버인 두 부부는 성에 차지 않았다.

최대 시장인 미국에서의 성적이 빈곤해서였다. 애초 결성 때부터 아바는 영국의 비틀스처럼 고국 스웨덴을 음악 국가로 재생시키겠다는 목표로 달려왔다. 북미 시장을 정복해야 지구촌 최강으로 군림할 터였다. 남들이 아는 우리, 진정한 우리를 위해 먼저 ‘현실의 우리’를 바꿔야 했다. 그때까지 아바는 다소간 유럽 이미지에 갇혀 있었다. 미국에 던지는 추파의 기술이 필요했다.

1970년대 중반부터 전 세계는 디스코 춤 열풍으로 들끓었다. 아바 음악을 만드는 두 남자 베니 앤더슨과 비욘 울바에우스는 이 디스코 트렌드를 따르기로 했다. ‘한국의 침공’ 방탄소년단(BTS)의 2020년 첫 빌보드 1위 ‘다이너마이트’도 아바 방식대로 디스코 리듬을 차용했다. ‘댄싱 퀸’은 그렇게 미국 디스코의 유로팝 버전으로 불리며 월드 와이드 상품으로 탄생했고 기대대로 후련히 미국 시장을 지배했다. 이듬해 1977년 아바는 세계적인 인기에서 ‘호텔 캘리포니아’의 이글스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여기서 중요한 지점은 세계로 시선을 향했음에도 불구하고 자국 내 위상에 조금도 소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스웨덴에서 먼저 통해야 했다. 때마침 1976년 6월 스웨덴은 칼 16세 구스타프 국왕의 성대한 결혼식을 앞두고 있었다. 유서 깊은 스톡홀름 성당에서 그는 브라질계 독일 출신으로 통역을 하던 실비아 좀멀라트를 새 왕비로 맞았다. 결혼식 전날 밤의 갈라 쇼를 위해 아바는 신부를 겨냥한 ‘댄싱 퀸’을 준비했다.

아바는 현장에서 노래를 불렀고 댄스를 자극하는 이 곡에 맞춰 새 왕비는 춤을 췄다. 곡 그대로 춤추는 여왕이 된 것이다. 축제의 열기가 전국을 덮었다. 아바로선 이것이 ‘댄싱 퀸’의 첫 라이브였다. 스웨덴이 알고 세계가 기억하는 곡이 될 수밖에 없었다. 곡조도 수준 높았지만 안니프리드 륑스타와 아그네사 팰츠콕 두 여성의 가창력과 하모니는 가히 전설적이다. 돌이켜 보면 남편들은 곡 만들고 부인들은 그걸 기막히게 소화하는 이 아름다운 부창부수는 음악 역사상 다른 사례를 찾기 어렵다.

확실히 ‘댄싱 퀸’은 예술의 유발 인자와 기본 소재는 어디까지나 현실이라는 점을 인식하면서 거둔 글로벌 성과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미국을 관통하기 위해 조지 맥레의 ‘록 유어 베이비’ 등 미국 음악의 현실인 디스코를 부지런히 배웠다. 따지고 보면 싸이 ‘강남스타일’, BTS ‘다이너마이트’의 공전의 히트 역시 이런 노선을 따른 전리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두말할 필요 없이 음악 예술성에의 천착이다. ‘댄싱 퀸’이 잠깐 대중에게 알려졌다가 얼마 후 사라지는 그렇고 그런 대중가요였다면 역사는 가치를 외면했을 것이다. 2012년 여수 국제박람회에서 스웨덴관을 들어섰을 때 가장 크게 내걸린 사진이 바로 아바 포스터였다는 게 잊을 수 없다. 아바의 성공 사례를 따라 스웨덴은 이후 1980년대 중후반의 록시트, 1990년대 초반의 에이스 오브 베이스 등 세계적인 인기 그룹을 잇달아 배출했다. 서른 살을 못 채우고 요절했지만 일렉트로닉 댄스 음악의 레전드로 평가받는 아비치도 빼놓을 수 없다. 예술성의 승리가 낳은 큰 이름들이다.

K팝에 이런저런 말들이 많지만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 덕에 기세를 재정비하게 된 것은 다행이다. 예술성만이 오랜 생명력을 부여한다. K팝도 스웨덴 아바의 ‘댄싱 퀸’처럼 50년의 기념비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산업적 성공도 중요하지만 먼저 좋은 곡을 만드는 자세, 그 기본적 예술에의 탐닉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