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영화 제작자 가와이 가와이가 지난 9일 서울 종로구 에무시네마에 걸려 있는 <하나 그리고 둘> 포스터 옆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에무필름즈 제공 |
“<하나 그리고 둘>(2000)은 영화의 교과서 같은 작품입니다.”
일본의 영화 제작자 가와이 신야(河井真也·68)가 지난 9일 서울 종로구 에무시네마에서 말했다. <하나 그리고 둘>은 대만의 거장 에드워드 양 감독이 2007년 작고하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작품이다. 가와이는 ‘영화인들의 영화’이자 2000년대의 고전이 되어버린 이 영화의 기획부터 함께한 제작자다.
<하나 그리고 둘>의 한국 재개봉을 맞아 내한한 가와이를 만났다. 2018년 한 차례 재개봉하기도 했던 영화가 올해는 4K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돌아왔다. 지난해 제78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고전 영화를 소개하는 부문인 ‘칸 클래식’에 초청되며 4K 복원작업이 추진됐던 바다. 세상을 떠난 양 감독 대신 가와이가 명암 조정 등 상당 부분을 대신 맡아 진행했다. 한국에서는 지난해 12월31일 재개봉 후 5일 만에 누적 관객 수 1만명을 넘어섰다.
<하나 그리고 둘>의 양양(조나단 창)이 삼촌 아디(진희성)의 결혼식장에 서서 정면을 보고 있다. 에무필름즈 제공 |
가와이는 “한국에서 다시 상영하게 되어서 기쁘다. 양 감독께서도 살아 계셨다면 기뻐하셨을 것”이라고 했다. 한국 관객이 특별한 건, <하나 그리고 둘>의 시작에 부산국제영화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가와이는 야심만만한 제작자였다. 1981년 후지TV에 입사해 TV 드라마 제작 분야에서 활동을 시작한 그는 1987년 영화 프로듀서로 데뷔했다. 이후 일본 공포 영화 <링>(1998), 이와이 슌지 감독의 <러브레터>(1995)와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1996) 등 일본 영화사를 대표하는 화제작 제작에 참여했다.
제작자로서 인정받은 1990년대 후반, 그의 관심은 “아시아 최고의 감독들을 모아 세계 시장에서 통하는 작품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세기말이었기에 미래에 대한 관심이 많았어요. 21세기가 되어도 변하지 않는 아시아의 가치관에 관한 이야기를 테마로 장편을 만들어보자고 생각했죠.”
일본 제작자 가와이 가와이가 1999년 부산국제영화제 PPP(부산프로모션플랜)에 참석했을 때의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직접 사진첩을 들고 와 당시를 설명했다. 전지현 기자 |
마침 부산국제영화제(부국제)에서 1998년 국내·아시아 영화 제작 활성화를 위해 제작자와 투자자를 연결해주는 프리마켓인 PPP(부산프로모션플랜·현 아시아프로젝트마켓)를 발족했던바. 부국제와 ‘아시아 영화의 부흥’이라는 가치가 통했던 가와이는 1999년 PPP에 참석해 영화제 관계자들과 “프로젝트 영화를 완성하면, 꼭 부국제에서 발표하겠다”고 약속했다. <하나 그리고 둘>이 2000년 칸 국제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뒤 같은해 부국제에서도 한국 관객을 만났으니 약속을 지킨 셈이다.
가와이는 양 감독을 “아이디어가 많던 창작자”로 기억했다. 사실 최초 양 감독이 들고 온 기획안은 지금의 <하나 그리고 둘>과 전혀 다른 것이었다. <가위>(
<하나 그리고 둘>에서 팅팅(켈리 리)이 할머니의 무릎을 베고 앉아있다. 에무필름즈 제공 |
<하나 그리고 둘>은 ‘사건’과는 거리가 먼 대만 타이베이의 평범한 가족 얘기다. 조용히 관찰하기를 좋아하는 8살 양양(조나단 창)의 가족들은 크고 작은 자신의 문제를 안고 살아간다. 아빠 NJ(오념진)은 30년 전 첫사랑을 만나 싱숭생숭하고, 누나 팅팅(켈리 리)은 친구의 남자친구를 좋아하게 된다. 삼촌 아디(진희성)의 결혼식 날 쓰러져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할머니의 고요한 곁에서야, 가족들은 복잡한 속내를 털어놓곤 한다.
가와이는 이전 기획보다 심심한 이야기에 “이 영화로 칸에 갈 수 있겠어요?” 제작자로서 물었던 적도 있다고 했다. 양 감독은 “갈 수 있다. 황금종려상도 받을 수 있다”고 자신했다고 한다. 가와이는 “칸은 새로운 형태의 영화를 추구한다고 생각했다. 3시간 가까이 되는 이 영화는 새롭기보다는 정도를 걷는 쪽이었기에 반신반의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배우 캐스팅부터도 집요하게 매달리는 양 감독을 믿기로 했다. 21세기의 고전이 된 영화는 그렇게 탄생했다.
가와이가 20여 년 전부터 일본을 넘어 아시아권 제작진 간의 합작을 꿈꿨던 이유가 있을까. 그는 여전히 “국경을 넘어 다른 나라와 자극을 주고받으며 작업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일본에서만 통하는 폐쇄적인 작품들이 있습니다. 재미는 있을 수 있지만, 1년이 지나면 그 영화를 기억하는 사람이 거의 없죠. 외국의 다른 영화 스태프들과 작업하다 보면 기술과 관점이 달라서, 일본에서만 작업하는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는 영화들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에드워드 양 감독의 <하나 그리고 둘>을 제작한 일본 제작자 가와이 가와이. 에무필름즈 제공 |
사실 에드워드 양과 작업하던 1990년대 후반, 한국의 김지운 감독과도 함께 작업하고 싶었었다고 가와이는 귀띔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일본 영화가 한국에 개봉하지 못하던 시대여서, 여러모로 접촉을 해봤지만 진행하진 못했었습니다.” 이후 그는 한국 제작사와 5:5 합작으로 <역도산>(2004)을 공동 제작했다. 그는 “한국 영화 현장은 감독의 머릿속의 장면을 구현하기 위해 온 스태프가 힘을 모으는 느낌이 인상적이었다”며 “좋고 나쁨을 떠나, 일본 감독보다 한국 감독이 장면에 대한 고집이 세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가와이는 <하나 그리고 둘>뿐 아니라 <러브레터> 등 자신이 제작한 작품이 꾸준히 한국에서 사랑받는 것에 놀라움을 전했다. 5년쯤 일본 무사시노 미술대학의 강단에 섰던 그는 “공부를 하러 오는 아시아의 영화 지망생들이 자주 ‘내가 추구하는 영화가 과거 일본 영화의 모습과 닮아있다’고 말하곤 했다”고 했다. 그는 “한국에서 왜 20여 년 전 일본 영화가 사랑받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면서도 “100년이 지나도 클래식으로 인정받는 소설이 있듯, 영화에도 고전이 있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하나 그리고 둘>은 “영화의 매력이 무엇입니까,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봐야 할 작품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상영 중. 173분. 12세 이상 관람가
전지현 기자 jhyun@kyunghyang.com
▶ 매일 라이브 경향티비, 재밌고 효과빠른 시사 소화제!
▶ 더보기|이 뉴스,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 점선면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