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2024년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2천500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으로 한국 문화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매주 게재하며 K컬처팀 영문 한류 뉴스 사이트 K바이브에서도 영문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손자병법의 병세(兵勢)에서 방어와 공격의 지혜를 팥 요리에 비유해본다.
겨울로 들어서는 길목에서 바람은 점점 매서워지고 세상은 고요 속에서 느리게 움직인다. 이때 떠오르는 작은 붉은 곡물이 팥이다. 붉은색은 심장을 돕고 속을 맑게 하며 나쁜 기운을 밀어내는 강한 생명력을 상징한다. 그러나 팥의 힘은 붉은색에만 있지 않다. 팥은 병세가 말하는 방어와 공격의 지혜를 가장 완벽하게 구현한 곡물이다.
동지팥죽 |
손자병법의 병세(兵勢)에서 방어와 공격의 지혜를 팥 요리에 비유해본다.
겨울로 들어서는 길목에서 바람은 점점 매서워지고 세상은 고요 속에서 느리게 움직인다. 이때 떠오르는 작은 붉은 곡물이 팥이다. 붉은색은 심장을 돕고 속을 맑게 하며 나쁜 기운을 밀어내는 강한 생명력을 상징한다. 그러나 팥의 힘은 붉은색에만 있지 않다. 팥은 병세가 말하는 방어와 공격의 지혜를 가장 완벽하게 구현한 곡물이다.
손자는 잘 방어하는 자는 땅속 깊이 숨어 있는 듯하고, 잘 공격하는 자는 하늘 높이 솟구치는 것과 같다고 했다. 방어는 깊고 고요하며, 공격은 가볍고 날래야 한다. 무리하지 않고 흐름을 읽어 상황에 따라 기운을 바꾸는 것이 병세의 핵심이다. 팥은 이 원리를 그대로 품고 있다.
그중 팥죽은 방어의 극치다. 팥죽은 겨울의 대명사이자 동지를 지키는 의례 음식이다. 팥죽의 첫 번째 힘은 방어다. 팥은 나쁜 기운과 한습(寒濕)을 물리치는 성질이 강해 예로부터 집안에 귀신과 액운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는 방어의 곡물이었다.
양생학에서는 팥죽을 비위(脾胃)의 한기(寒氣)를 몰아내고 막힌 순환을 풀어주는 약선 음식으로 본다. 팥죽의 따뜻함은 수비(守備)의 불씨처럼 조용하지만 꾸준히 안에서 기운을 데운다. 이는 손자병법의 "방어는 깊고 드러나지 않으며, 기운은 아래에서 모인다"는 원리와 같다. 한 그릇 팥죽은 외부의 한기와 내부의 허열을 차단하며, 마치 적이 침입할 틈을 주지 않는 단단한 성벽처럼 신장·비위·심혈을 지켜준다.
동지팥죽 |
팥밥은 안정 속 공격이다. 팥밥은 겉보기엔 순한 백미에 가려 위력이 보이지 않지만 속에서는 몸의 변화가 일어난다. 백미는 보(補)의 힘을, 팥은 통(通)의 힘을 갖는다. 보하는 쌀과 통하게 하는 팥이 만나면 내부에서는 부드러운 공격이 펼쳐진다. 팥밥의 공격은 거세고 빠른 것이 아니다. 병세에서 말하는 "공격하되 흔적이 없고, 움직이되 드러나지 않는 공격", 즉 은공(隱攻)의 원리다. 팥밥은 비위의 부담을 줄이고 혈액을 맑게 하며 습담을 걷어내 몸이 스스로 기운을 되찾도록 돕는다. 노자는 공을 세워도 드러내지 않는다고 했다. 팥밥은 이러한 '겸허한 공격의 미덕'을 보여준다.
팥칼국수는 기운을 여는 정면 공격이다. 뜨거운 국물에 팥의 순환력, 밀가루의 안정성이 더해진 음식이다. 여기서는 방어보다 공격의 힘이 더 강하다. 속이 냉한 사람에게 팥칼국수를 먹이면 몸이 빠르게 따뜻해지고 혈이 뭉친 곳이 부드럽게 풀리며 차가운 기운이 몸 밖으로 밀려난다. 이것이 바로 병세에서 말하는 승세(乘勢)다. 이미 생긴 흐름을 타 공격의 힘을 키우는 전략이다. 팥칼국수의 뜨거운 상승 기운은 기병이 높은 지형에서 내려오듯 가볍고 빠르게 생명력을 되살린다. 필요한 순간 정확히 밀어주되 지나치지 않는 공격이다.
팥빙수는 열을 식히는 역공(逆攻)이다. 팥빙수는 여름이라는 강한 적을 상대하는 독특한 방어의 방식이다. 여름의 열기는 실공(實攻)으로 강하고 거침없다. 이에 대한 팥빙수의 전략은 반세(反勢), 즉 흐름을 거꾸로 바꾸는 방어다. 차가운 얼음과 팥의 안정된 약성은 상승한 열기를 아래로 가라앉힌다. 팥빙수의 핵심은 단순한 냉방이 아니다. 팥은 심장 열을 식히고 혈의 순환을 매끄럽게 하며, 얼음은 팥의 작용을 집중시켜 상승한 불기운을 부드럽게 진정시킨다. 이는 손자병법의 "적이 강할 때는 흐름을 꺾어야 한다"는 원리다. 공격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가장 깊은 방어다.
황남빵은 형세의 절대강자다. 올해 APEC에서 시진핑 주석이 감탄했다는 황남빵. 이 작은 빵 안에는 손자병법의 형세(形勢)와 공수일체(攻守一體)가 완벽히 들어 있다. 황남빵은 겉이 얇고 속이 가득하다. 겉은 얇아 기세는 가볍고, 속은 꽉 차 안정이 깊다. 이는 공격과 방어가 동시에 서 있는 형세의 전형(典型)이다.
붕어빵·호두과자·국화빵·꿀빵·단팥빵·모나카는 일상의 작은 공격이자 작은 방어다. 모두 팥을 중심에 두고 있지만, 각 음식은 서로 다른 형세를 지니며 저마다의 병세 전략을 펼친다. 붕어빵은 뜨거운 기운으로 겨울의 한기를 정면에서 공격한다. 호두과자는 호두의 따뜻한 기름이 건조한 기운을 부드럽게 막아주는 방어의 음식이다. 국화빵은 꽃 모양의 온화함이 심리를 안정시키는 마음의 방어선이다. 꿀빵은 단맛으로 기운을 보충해 흐트러진 생기를 되살리는 보공(補攻)이며, 모나카는 바삭함과 부드러움의 대비로 음양의 균형을 이루는 섬세한 조화의 음식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일상에서 우리를 피로로부터 보호하고, 지친 하루의 기운을 가볍게 깨워 다음 발걸음을 내딛게 만드는 작은 '병세의 기술'이라는 점이다.
시루떡·찹쌀떡·찹쌀도넛은 공수 겸비한 떡의 형세를 보여준다. 한국의 떡 문화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기운을 다스리는 동양철학의 정수가 담긴 지혜의 음식이다. 시루떡은 묵직한 무게와 단단한 결로 허기를 방어하고 마음을 안정시킨다. 찹쌀떡은 끈기 있는 점성이 흩어진 기운을 다시 모아 내부에서 힘을 끌어올린다. 찹쌀도넛은 기름의 따뜻한 온기를 통해 겨울의 찬 기운을 공격하며, 겉은 바삭하지만 속에는 팥의 촉촉함이 있어 공수의 균형을 완성한다. 떡 속의 팥고물은 불순한 기운을 밖으로 막아내고(防), 내부의 순환을 열어 새로운 생명을 받아들이는(攻) 전형적인 공수 겸비의 음식이다.
이처럼 팥 음식은 방어와 공격이 완성된 병세의 음식이다. 손자병법 병세의 장이 강조하는 것은 억지로 힘을 쓰지 않고, 흐름을 따라 형세를 만들어 상황에 맞게 방어와 공격을 교차시키는 지혜다. 팥 음식은 이 원리를 음식의 형식으로 가장 명확하게 드러낸다. 팥죽은 깊고 무거운 방어, 팥밥은 드러나지 않는 은밀한 공격, 팥칼국수는 상승하는 기운의 공격, 팥빙수는 한여름 역세(逆勢)의 방어, 황남빵은 공수일체의 형세, 떡류는 공방의 조화, 여러 팥빵은 일상의 작은 병세의 기예다. 붉은 팥의 본성은 한기와 습담을 막아내는 방어를 이루고(防), 혈과 기의 흐름을 열어 몸을 다시 살아 움직이게 하는 공격을 완성한다(攻).
이것이 바로 양생학이 말하는 "기운을 보전하며 기운을 흐르게 하는 법"이며, 약선학이 말하는 "음식으로 병을 다스리는 기술"이다. 또한 노자가 말한 "무위(無爲)의 자연스러운 힘"이자, 동양철학이 추구한 조화의 도(道)다.
국산 팥 |
한 그릇의 팥죽, 한 입의 황남빵, 한 조각의 팥떡 속에서 우리는 오늘도 방어와 공격, 음과 양, 고요함과 움직임이 서로를 완성하는 더 큰 생명의 흐름을 맛보고 있는 것이다.
최만순 음식 칼럼니스트
▲ 한국약선요리 창시자. ▲ 한국전통약선연구소장. ▲ 중국약선요리 창시자 팽명천 교수 사사 후 한중일 약선협회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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