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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사 단전·단수 지시’ 이상민 “가슴 답답하고 황망”…최후진술서도 ‘발뺌’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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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사 단전·단수 지시’ 이상민 “가슴 답답하고 황망”…최후진술서도 ‘발뺌’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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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비상계엄 관련 언론사 단전·단수를 지시한 혐의로 구속기소 된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이 지난해 10월1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첫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2025.10.17. 사진공동취재단 한겨레 김태형

12·3 비상계엄 관련 언론사 단전·단수를 지시한 혐의로 구속기소 된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이 지난해 10월1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첫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2025.10.17. 사진공동취재단 한겨레 김태형


12·3 비상계엄 당일 언론사 단전·단수를 지시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의 1심 선고가 오는 2월12일 이뤄진다. 이 전 장관은 최후진술에서 “가슴이 답답하고 황망하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1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32부(재판장 류경진) 심리로 열린 이 전 장관의 내란 중요임무종사 혐의 사건 결심공판에서 내란 특별검사팀의 이윤제 특검보는 “내란 범죄에서 피고인(이상민)의 역할에 비춰 중형에 처해야 마땅하다. 피고인은 경찰과 소방을 지휘·감독해 국민의 신체와 생명, 안전을 책임지는 행정안전부 장관임에도 친위 쿠데타에 가담했다”며 이 전 장관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이 전 장관은 최후진술을 통해 12·3 비상계엄을 사전에 인지하지도 못했고 실행 과정에 관여한 바도 없다며 재차 혐의를 부인했다. 이 전 장관은 “윤석열 정부의 행정안전부 장관으로서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해서 국민 여러분과 행정안전부 공직자분들께 송구한 마음”이라며 “모두의 일상이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려고 제 나름 혼신의 힘을 다했으나 능력이 부족해 국민 여러분을 좀 더 편하게 모시지 못한 거 같다”고 말문을 열었다.



판사 출신인 이 전 장관은 “지금으로부터 35년 전 이 건물(서울중앙지법)에서 법관으로 첫발을 내디뎠다. 평생 법관으로 공직할 것을 다짐했고 핸드폰을 처음 개통하면서도 전화번호 뒷자리를 2842로 했다. 저뿐만 아니라 처와 딸, 아들 역시 흔쾌히 핸드폰 번호를 동일하게 2842로 했고 지금까지도 가족 모두 이 번호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사회생활 첫발을 법원의 일원으로 내디디고 젊은 날 법관으로 공직했기에 당시 마음가짐과 자세는 제 평생에 걸쳐 이어져 왔다. 첫 다짐과 다르게 대법원 근무 마지막으로 법원을 떠났지만 친정인 법원에 누를 끼치면 안 되고 법관으로 자긍심이 있어서 변호사나 행안부 장관으로서 업무 수행하는 동안 매사에 공사를 분명히 하고 다른 사람이 의구심을 가질 행동을 하지 않도록 매 순간 조심하고 노력하며 살아왔다”고 말했다.



이 전 장관은 윤 전 대통령과 같은 충암고 출신으로 윤 정부 시절 정치권과 언론에서 비판을 받은 것과 관련해 “행안부 장관으로 업무를 수행하는 2년7개월동안 윤 전 대통령과 개인적으로 선후배 사이라는 이유로 세간의 따가운 눈초리를 받은 것에 대해 스스로에 대한 긴장을 늦추지 않으려고 했다”고 밝혔다.



이 전 장관은 “내란 중요임무종사는 법정형이 사형, 무기로 옛날엔 삼족, 구족을 멸했다는 중죄다. 2024년 12월3일 갑자기 대통령실에 호출된 어느 국무위원도 당시 상황이 추후 내란죄에 가담했다는 의혹을 받으리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거다. 저 또한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어 “비상계엄 선포 전후해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이후 언론을 통해 접할 때까지는 전혀 알지 못했다. 계엄이 선포될 거란 전후 사정을 모르던 제가 사전 모의나 공모한 적도 없이 불과 몇 분 만에, 그것도 즉석에서 즉흥적으로 어떻게 내란에 가담하고 중요임무를 맡았다는 건지, 그 이유로 법정에 선 상황이 믿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전 장관은 “평생을 공직자와 법조인 길을 걸어 살아오면서 정치에 참여하거나 관심 가져 본 일조차 없어, 내가 도대체 무슨 이유로 무엇을 얻겠다고 내란에 가담했다는 건지 알 수 없어 가슴이 답답하고 황망하다”며 “다른 국무위원이 그랬듯이 비상계엄이란 생경하고 믿어지지 않는 얘기를 듣고 놀랍고 혼란스런 상황에서 나 또한 만류했을 뿐 비상계엄 선포 후 일련의 조치는 아무런 생각도 할 시간도 여유도 없었다”고 말했다.



이 전 장관은 “재판을 마치며 긴 시간 수사·공판에 애쓴 특검보와 파견검사, 수사관들 수고가 많았다는 말 하고 싶다. 그리고 헌신적으로 변론해온 변호인들에게 기쁜 감사 인사를 표한다. 변호인 한 분 한 분 각별한 인연을 맺는 분으로, 함께 사시 준비한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친구에서…”라며 잠시 말을 멈추고 울먹였다. 이어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자상하게 오랜 인내심으로 이 재판을 원만히 이끌어온 재판부에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경의와 감사 인사를 드린다”고 최후진술을 마쳤다.




이나영 기자 ny379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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