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이란 테헤란에 있는 카리자크 감식 센터 바깥에서 시위 사망자들의 주검을 담은 가방이 여럿 놓여 있는 장면을 촬영한 영상. 로이터 연합뉴스 |
이란 시위 희생자가 540명 이상으로 추정돼 2022년 히잡 반대 시위 때 사망자 규모를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1979년 이란 이슬람혁명 이후 이란 체제 최대 위기라는 말이 나온다. 다만 국내외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아직 이슬람공화국 체제 붕괴까지 점치기는 이르다는 전망이 많다.
미국 기반 이란 매체 인권활동가통신(HRANA)이 11일(현지시각) 이란 시위 사망자 수가 최소 544명이라고 집계했다. 이란 정부 정보 통제로 정확한 사망자 숫자를 확인할 수는 없지만, 이 수치대로면 지난 2022년 히잡 반대 시위 이후 발생한 희생자 수에 육박한다. 같은 매체는 히잡 반대 시위 당시 3개월 동안 최소 552명이 사망했다고 추정했는데, 지난달 28일 시작한 시위가 15일 만에 비슷한 수의 희생자를 낸 것으로 집계된 것은 그만큼 이번 시위가 격렬함을 방증한다.
1979년 팔레비 왕조를 몰아내고 이슬람 종교 지도자가 최고 지도자를 겸하는 이슬람 공화국 체제가 들어선 뒤 이란에서는 몇차례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다. 1999년 7월에는 개혁파 신문 폐간에 항의하는 테헤란대 학생들에 대한 폭력적 탄압에 분노한 시민들이 시위를 벌였다. 2009년에는 강경 보수파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이 재선되자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는 테헤란 시민들을 중심으로 시위가 일어났다. 당시 개혁파 대통령 후보인 미르호세인 무사비의 상징색이 녹색이라 ‘녹색 운동’으로 불렸다. 가장 최근에는 2022년 9월14일 22살 여성 마흐사 아미니가 테헤란에서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도덕경찰에 붙잡힌 지 사흘째인 같은 해 9월16일 의문사한 사건을 계기로 이란 전역으로 번졌던 히잡 반대 시위가 있었다.
모두 정치적인 이유가 컸던 시위들인데, 이번 시위는 오랜 서방의 경제 제재 영향 등으로 누적된 경제난이 주요한 계기였다는 점이 다르다. 이번 반정부 시위는 지난해 12월 테헤란의 시장인 그랜드바자르의 상인들이 물가 상승 등 경제난에 대한 항의로 상점 문을 닫은 것을 시작으로 전국으로 번졌다. 이란 물가상승률은 공식 통계 기준으로 해도 지난해 10월 기준 48.6%에 달했다. 이란 정부는 시위를 진정시키기 위해 8천만 주민들에게 매달 100만이란토만(약 7달러, 1토만은 10리알)을 지급하는 계획을 발표했으나 시위를 가라앉히기는 역부족이었다. 이에 이란 정부는 강경 진압을 강화하고 있다. 시위 진압 도중 숨진 치안 인력을 기리며 사흘간 국가 애도 기간을 선포하고, 대항 시위를 조직하는 등 여론전에도 나섰다.
국내외 전문가들은 유력한 대안 세력이 마땅히 없는 상황에서 이슬람 공화국 체제가 붕괴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긴 어렵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미국 외교관 출신인 앨런 에어 이란 전문가는 로이터 통신에 “이번 시위가 정권을 전복할 가능성은 낮다. 이란 엘리트층은 여전히 결속력을 유지하고 있고, 조직화된 야권도 보이지 않는다”며 “결국 정권이 시위를 진압하겠지만, 그 과정에서 약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시위가 확산되자 1979년 팔레비 왕조가 이슬람 혁명으로 축출된 뒤 미국 망명 중인 옛 팔레비 왕조의 왕세자인 레자 팔레비가 1일 미국 폭스뉴스에 출연해 “가능한 한 빨리 이란으로 돌아갈 준비가 돼 있다”며 이슬람공화국 이후를 염두에 둔 듯한 발언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는 “레자 팔레비가 주목받는 것도 이란 내외에 대안 세력이 없어서지, 역량이나 자질상 이란의 정권을 잡는다는 것은 아직 현실적이지 않다”고 했다. 인 교수는 “(이번 시위가) 임계점을 넘어갈 것인지는 판단이 어렵지만, 이슬람공화국이 1979년 혁명 이후 가장 큰 위기를 맞은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중도 개혁 성향인 마수드 페제슈키안 대통령의 역할을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인 교수는 “페제슈키안은 선출된 대통령으로 (선출되지 않은 최고 지도자) 하메네이와 혁명수비대, 레자 팔레비에겐 없는 정통성이 있다”며 “이란 내 개혁파 진영의 선출직 각료들이 최고지도자와 대중 사이에서 명확한 대안을 만들어간다면 이란 체제가 안전하게 연착륙할 좋을 방법이긴 하지만, 실행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고 했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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