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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진흥’ 미망에 빠진 역주행 법안들 [왜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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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진흥’ 미망에 빠진 역주행 법안들 [왜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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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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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호 | 한양대 로스쿨 교수



최근 저작권법과 관련 없는 개별 법안들에 저작권 제한 규정을 두며, 인공지능(AI)의 데이터 학습을 허용하기 위해 ‘텍스트·데이터마이닝’(TDM·티디엠) 규정을 신설하려는 기이한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시도들은 ‘저작권’이 세계인권선언과 유엔 사회권규약에서 보호하는 ‘인권’이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과거 우리나라 권위주의 정권들은 “경제 발전” 운운하며 인권을 보호하자는 주장을 탄압해왔다. 현재 “인공지능 진흥” 운운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인권으로서의 저작권 보호” 주장을 타도의 대상쯤으로 여긴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런 법안들을 발의했을 리 없다.



이들 법안은 세계 주요 국가 흐름과도 역행한다. 2022년 11월 생성형 인공지능 챗지피티(GPT) 상용화 이후 세상은 크게 변했다. 그 이전까지 티디엠에 우호적이던 세계 각국 분위기는 거의 모두 냉담한 쪽으로 급변했다.



2018년 저작권법을 개정하여 제30조의4를 도입한 일본은 세계에서 인공지능 개발에 가장 유리한 티디엠 규정을 마련했다며 일본을 “인공지능 천국”이라고 홍보했다. 하지만 챗지피티 상용화 이후 권리자 단체들의 반발에 부딪혔다. 재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거세졌다. 현재 일본 정부는 “저작권자의 이익을 부당하게 침해하는 경우, 새 규정은 적용되지 않는다”며 권리자들의 반발을 달래고 있다.



2019년 유럽연합(EU)의 ‘디지털 단일시장 저작권 지침’ 제4조는 상업 목적의 티디엠을 원칙적으로 허용하면서 권리자가 ‘옵트아웃’(저작권자의 인공지능 학습 거부 의사 표명)할 수 있도록 했다. 자유롭게 인공지능의 데이터 학습을 허용하되 권리자가 반대하면 금지하게 한 것이다. 그러나 챗지피티 상용화 이후 유럽연합의 상황도 급변했다. 지난해 7월 유럽연합 의회의 연구보고서는 ‘옵트인’(저작권자 동의 없는 데이터 수집 금지)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주목할 것은 그 배경이다. 인공지능 발전을 위해서는 티디엠이 아니라 인공지능 학습 데이터의 저작권 라이선스 시장의 성장이 더 중요하다고 본 것이다.



현재 인공지능 기업을 상대로 권리자들이 제기한 ‘인공지능 저작권 소송’ 현황을 지도에 표시해주는 누리집에 따르면 지난해 10월17일 기준으로 세계 저작권 소송 건수는 79건이다. 그중 3분의 2가 미국 사건이다. 주목할 것은 소송 중 인공지능 기업이 학습 데이터의 저작권 라이선스를 체결하는 건수도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은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별도의 티디엠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미국은 저작권법 제107조의 ‘공정 이용’ 조항으로 티디엠 사안을 해결한다. 우리 저작권법 제35조의5는 미국 제107조를 본뜬 것이다. ‘공정 이용’ 조항은 폭넓게 적용되는 유연한 규정이라는 장점이 있는 반면, 법원의 판단에 맡겨야 하는 영역이 많아 ‘공정 이용’ 여부를 미리 가늠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그러나 사건이 쌓이면 단점은 장점으로 변한다. 사안별로 유형화한 가이드라인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여러 특별위원회에서는 미국의 인공지능 저작권 재판 사례를 모두 분석하여 ‘공정 이용’ 여부를 미리 가늠할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우리의 장점이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우리 국회는 이러한 가이드라인을 제쳐놓고 챗지피티 상용화 이전의 낡은 외국 입법례를 모방하는 ‘역주행’을 벌이고 있다. ‘저작권’으로 융성한 케이(K)-콘텐츠 강국의 이미지를 이런 엉터리 입법으로 한순간에 망가뜨릴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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