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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산지소’ 실현하려면…“지자체가 전력 생산·소비·거래할 수 있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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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산지소’ 실현하려면…“지자체가 전력 생산·소비·거래할 수 있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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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와 전력 수요 기업의 장기 전력 구매계약을 맺는 전력구매계약(PPA)이 늘어나고 있다. 사진은 태양광과 풍력 발전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와 전력 수요 기업의 장기 전력 구매계약을 맺는 전력구매계약(PPA)이 늘어나고 있다. 사진은 태양광과 풍력 발전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최근 ‘용인 반도체 산업단지’의 입지 논란으로 에너지 ‘지산지소’(지역에서 생산한 것을 그 지역에서 소비)의 필요성이 더 부각되고 있다. 이 지산지소를 실현하기 위해선 지방자치단체가 전력 보급을 주도할 수 있게 제도를 개편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현재 전력 생산·공급은 한국전력(한전)의 독점 아래 대규모 송전망을 통해 주로 이뤄지는데, 여기서 벗어나 지역이 직접 전력을 생산·소비·거래하는 ‘판을 깔아줘야’ 한다는 것이다.



경기 파주시는 지난해 전국 최초로 ‘지역 전력구매계약’(PPA) 모델을 도입해 주목받았다. 파주시와 파주도시관광공사가 최대 1.2메가와트(㎿) 규모 태양광 발전소에서 전기를 생산한 뒤 관내에 재생에너지가 필요한 중소기업 9곳에 장기적으로 전력을 공급하기로 한 것이다. 본격적인 전력 생산은 최근에야 시작돼, 30년간 킬로와트시(㎾h)당 160원 고정가격으로 전기를 공급한다. 현재 산업용 전기요금인 약 180원 수준보다 저렴하다. 전력 소비자가 한전을 거치지 않고 발전사업자로부터 직접 전력을 구매하는 제도(전력구매계약)가 있긴 하지만 아직 보편화돼 있진 않다. 그런데 지자체가 나서 이 제도를 활용해 ‘공공주도 알이(RE)100(재생에너지 100% 사용)’ 모델을 제시한 것이다.



비영리 기후·에너지 연구단체 기후솔루션은 12일 ‘지역 주도형 재생에너지 보급을 위한 전력시장 개선 방안’ 보고서를 내고, ‘2030년 재생에너지 100GW’ 목표를 달성하려면 현재 중앙집중적으로 설계된 전력시장 구조에서 벗어나 지역이 직접 전기 생산·소비·거래에 참여하는 ‘지역 유연성 전력시장’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역 유연성 전력시장이란, 전력산업을 독점하고 있는 한전은 대규모 발전 시설과 송배전망 등을 주로 관리하고, 지자체는 태양광 시설 등을 운영하면서 지역 공장에 필요한 전기를 배분하고 판매하는 등 전력시장의 일부 구실을 나눠 맡는 것을 가리킨다. 이 시스템에서 지방정부는 재생에너지 발전 시설과 에너지저장장치(ESS), 수요반응(DR) 등 분산형 전원을 묶어 운영하는 가상발전소(VPP) 사업자 역할을 맡기도 한다.



지역 유연성 전력시장 도입이 중요한 대표적인 이유로, ‘전력망(계통) 포화’ 문제를 꼽을 수 있다. 전라도 지역에서 재생에너지 설비가 많이 늘었으나 송전선로·변압기 용량 등 전력망의 문제로 2031년까지 신규 발전 설비의 계통 접속이 제한되는 등 이를 써먹지 못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보고서는 지금 같은 계통 포화가 계속되면 2030년 재생에너지 100GW 목표 달성이 불가능하다고 내다봤다. 현재 국내 재생에너지 설비량은 30GW가량이라 앞으로 해마다 15GW씩 신규 설비를 늘려야 목표 달성이 가능하다. 그런데 재생에너지 잠재량이 가장 높은 전라도 지역에서 2031년까지 전력 판매가 안 될 경우엔 이를 바라기 어렵다.



이에 대해 정부와 전력 당국은 ‘에너지 고속도로’ 건설을 해법으로 제시한다. 대규모 송전망을 건설하는 등 계통 자체를 늘려, 전력이 주요 수요처인 수도권으로 원활히 옮겨올 수 있도록 하겠다는 방향이다. 그러나 345킬로볼트(㎸) 송전선로 하나를 건설하는 데 평균 9년이 걸리는 데다, 송전선로가 지나는 지역의 동의를 받기 어려워 곳곳에서 갈등이 벌어지는 등 ‘현실성 없는 대책’이란 지적이 나온다. 보고서는 “(송전선로를 더 깔기 쉽게 보장하는) ‘전력망 확충 특별법’이 적용되더라도 송전망 확충까지는 9~13년이 소요될 것”이라 내다봤다.



지역 유연성 시장 도입을 위한 지역 전력구매계약(PPA) 도식도. 지역 전력구매계약에선 지방정부가 재생에너지 공급사업자 역할을 맡아 발전사업자와 전기사용자를 중재한다. 한국에너지공단 제공

지역 유연성 시장 도입을 위한 지역 전력구매계약(PPA) 도식도. 지역 전력구매계약에선 지방정부가 재생에너지 공급사업자 역할을 맡아 발전사업자와 전기사용자를 중재한다. 한국에너지공단 제공


반면 지역 유연성 전력시장은, 송전망을 통해 전기를 수도권으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배전망을 통해 전기를 생산한 지역에서 소비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데 초점을 맞추는 전략이다. ‘중앙집중적’인 기존 전력시장 구조를 ‘지역주도형’ 전력시장으로 전환할 수 있는 제도를 도입해, 전력 수요와 공급이 지역 단위로 맞아떨어지도록 한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지역에서 생산한 전기를 다시 수도권으로 보내는 방식에만 의존할 경우, 계통 문제 해결에 장시간이 소요될 뿐 아니라 사회적 갈등과 비용 부담도 커질 수밖에 없다”고 짚었다.



이를 위해 보고서는 한전의 전력 중개·판매 독점에 예외를 두는 제도인 전력구매계약을 지자체가 주도적으로 활용하는 ‘지역 전력구매계약’과 ‘지역 유연성 시장’이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지자체가 전력구매계약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으려면, 제도적 문제들을 해결해야 한다. 현재 전력구매계약은 1㎿ 이상급 발전소 기준(태양광 약 4천평)으로 주로 성사돼, 소규모 태양광 시설이나 적은 양의 전기를 쓰는 중소기업 등이 활용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선 여러 발전사업자와 수요자가 함께 참여하는 ‘집합형’ 전력구매계약 구조를 허용하고, 가까운 곳에서 생산·소비되는 전력에 대해 요금을 깎아주는 등의 제도 개편이 필요하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또 공정하고 투명한 지역 유연성 시장을 구축하기 위해 시장의 운영자이자 참여자이기도 한 한전의 이해상충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도 짚었다.



김건영 기후솔루션 변호사는 “지역을 계통 포화 상태로 묶어두고 송전망만 늘리는 방식으로는 재생에너지 목표 달성도, 지역 균형발전도 어렵다”며 “지자체가 직접 전력을 생산하고 소비하며 거래할 수 있도록 전력시장 구조를 전환해야 재생에너지 확대와 전력망 부담 완화, 지역경제 활성화를 동시에 이룰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옥기원 기자 o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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