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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교육 후퇴시키는 ‘찐따 문화’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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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교육 후퇴시키는 ‘찐따 문화’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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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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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승연 | ‘아들이 사는 세계’ 작가



집 근처 고등학교의 방학식 날이었다. 길을 걷는데 맞은편에서 발달장애인으로 보이는 남학생이 손을 흔드는 상동행동(같은 동작을 지속적으로 반복하는 것)을 하며 마주 오고 있었다. 아들(자폐성 장애인)의 엄마로서 반가운 마음에 가까이 올 때까지 지켜봤는데 알고 보니 그 학생은 발달장애인이 아니었다.



“선생님, ○○이 오줌 마려워요. 화장실 갈래요. 히잉~” 한 남학생이 손을 흔들며 누군가의 흉내를 내고 있었고 옆에 있던 학생들은 친구 모습에 키득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고등학생씩이나 됐으면서….’ 속으로 혀를 차면서 옆을 스쳐 갔는데, 최근 요즘 시대 학창 문화 중 하나인 ‘찐따 문화’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하는 진정한 통합교육은 어쩌면 더 험난해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요즘 학교에는 ‘찐따’라고 불리는 학생들이 있다. ‘찐따란 무엇이다’라고 명확히 정의를 내릴 순 없지만 여러 경로를 통해 알아보니 요즘 학생들이 말하는 찐따는 사회성이 떨어지는 친구를 뜻했다.



사회성이 부족한 모든 개인이 찐따는 아니지만, 찐따로 낙인된 모든 개인은 사회성이 떨어진다고 했다. 친구들 사이에 적응을 못 하고(또래 간의 대화법을 모르고), 튀고 겉돌거나, 좋게 거절했는데도 눈치 없이 들이대는 게 ‘찐따’라는 설명이다.



찐따 낙인이 붙으면 고립된 학교생활을 해야 했다. 아마도 학폭 내용이 생활기록부에 기재되고 성인이 된 후 과거의 학폭 사실이 폭로되는 사회적 분위기와 맞물려서인 측면이 크겠지만, 어쨌든 찐따라고 명명된 학생은 과거의 왕따처럼 괴롭힘을 당하진 않고 대신 존재를 철저히 무시당했다. 찐따 낙인이 붙은 학생과는 아무도 말을 섞지 않았다.



찐따 문화는 관계에서의 수용성과 관련이 있었다. 요즘 아이들은 과거에 비해 ‘결이 맞는 무리’에 대한 공고함이 더 강해진 듯했고, 반대로 이 현상은 결이 다른 친구는 애초에 ‘다른 존재’라며 벽을 치는 데 한몫했다. 생각해보니 예전에 병원에서 딸이 같은 반 친구를 봤다고 했다. 왜 서로 인사를 안 했느냐고 묻자 “다른 무리야”라고 말했는데 그게 이런 뜻이었다.





이런 세태 속에서 친해지고자 하는 마음 하나만으로 다가오는 아이, 무리의 특성에 맞는 대화 주제에 끼지 못하면서 계속 무리에 있고자 하는 아이, 이런 아이들에게 서서히 찐따 낙인이 붙는 듯했다.



흔히 찐따를 어감만 듣고 ‘찌질함’과 ‘왕따’의 합성어처럼 알고 있는데 사실 찐따는 장애인 비하 발언에서 유래가 됐다. 단어의 유래 때문에 통합교육을 걱정하는 게 아니다. “눈치 챙겨서 낄 데 끼고 빠질 데 빠져!”가 당연해진 분위기가 통합교육의 걸림돌이 될 것으로 보여서다. 발달장애인에게 취약한 부분이 바로 그 눈치 챙기기, 사회적 맥락을 읽어내는 일이니까.



하지만 통합교육을 차치하고라도 찐따가 발생한 근본 원인, 나와 비슷한 사람끼리만 관계를 맺으며 살겠다는 인식과 태도, 그런 것들이 당연해진 세태가 나는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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