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설화 큐레이터]
"이 그림은 무슨 뜻일까." "내가 뭔가를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전시장에서 우리는 자주 불안감과 당혹감을 느낍니다. 그림을 이해할 수 없어서 그렇습니다. 나름 내 방식으로 이해했지만 그게 맞는지 몰라서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건 꽤 이상한 일입니다. 작품을 감상하러 가서, 왜 우리는 문제를 풀고 있을까요?
김설화 큐레이터는 감각을 지식보다, 질문을 정답보다 더 중요하게 여긴다. ER 이코노믹리뷰 연재 칼럼 ‘미술관 가는 길을 찾다’는 그가 현장에서 매일 마주하는 경험을 바탕으로, 관람객이 미술관을 더 쉽게 찾는 길을 안내하는 실용 가이드다. 미술 작품 앞에서 멈춰 선 순간부터 시작되는 감상법을 제시한다. |
"이 그림은 무슨 뜻일까." "내가 뭔가를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전시장에서 우리는 자주 불안감과 당혹감을 느낍니다. 그림을 이해할 수 없어서 그렇습니다. 나름 내 방식으로 이해했지만 그게 맞는지 몰라서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건 꽤 이상한 일입니다. 작품을 감상하러 가서, 왜 우리는 문제를 풀고 있을까요?
본 연재의 첫 편에서 '정답 없는 그림 앞에서'라는 이야기를 나눈 바 있습니다. 미술 감상에는 하나의 정답이 없으며, 모른다고 해서 틀린 것도 아니라는 이야기였습니다.
여러 편의 글을 거치며 우리는 작품을 바라보는 다양한 태도와 감상의 방식들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다시 처음의 자리로 돌아가고자 합니다. 그림을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다는 말을, 조금 다른 무게로 전하고 싶어서입니다.
우리는 감상을 '이해 → 해석 → 판단'의 단계로 생각하곤 합니다. 작가가 무엇을 그렸는지 파악하고, 의미를 해석한 뒤, 좋다거나 어렵다는 판단에 이르러야 비로소 감상이 끝난 것처럼 느낍니다.
이 방식에 익숙해질수록 '내가 이해하지 못하면', 실패한 감상처럼 여겨집니다. 유명한 명화 앞에서도 전율을 느끼기도 전에 캡션으로 눈을 돌립니다. 오디오 가이드의 해설을 듣느라 정작 내 눈앞의 붓터치는 놓치고 맙니다.
마치 정답지가 옆에 있는데 혼자 문제를 푸는 것이 불안한 학생처럼, 우리는 누군가가 정해준 의미를 확인받고 나서야 안도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얻은 '지식'이 과연 진정한 감상일까요?
미술관을 나서며 마음에 오래 남는 작품들을 떠올려 보면, 그것들은 대개 명확히 이해된 그림이 아니었습니다. 작품 설명은 기억나지 않지만 이상하게도 잊히지 않는 색감, 이유는 모르겠으나 마음 어딘가에 계속 남아 있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건 이해보다 감각과 감정이 먼저 반응했기 때문입니다. 마치 낯선 여행지에서 만난 풍경처럼 말입니다. 그곳의 역사나 지명을 정확히 알지 못해도, 석양이 물든 골목길이나 이름 모를 꽃향기가 주는 감동에 젖어 들 수 있는 것처럼, 그림 또한 지식 없이도 충분히 우리를 움직입니다.
때로는 한 구석의 붓터치나 예상치 못한 색의 조합이 설명할 수 없는 전율을 주기도 합니다. 왜 그런지 알 수 없지만 가슴 한편이 먹먹해지거나, 이유 모를 위안을 받는 순간들. 이런 감정은 작품 해설이나 미술사적 맥락과는 무관하게, 오롯이 눈과 마음만으로 마주했을 때 더 선명하게 다가오곤 합니다.
그렇게 시작은 언제나 똑같습니다. 눈이 머무르고, 몸이 반응하며, 감정이 움직입니다. 이해는 그 뒤에 따라올 수도 있고, 끝내 찾아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도 괜찮습니다. 예술은 반드시 해석되어야만 의미를 갖는 언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해하려는 태도가 지나칠수록 우리는 그림 앞에서 너무 빨리 떠나버립니다. "아, 이런 말이구나"라고 정리하는 순간, 작품은 하나의 결론으로 닫힙니다. 그런데 오히려 이해하지 못한 그림이 우리 안에서 계속 살아 움직입니다. 살아가다 어떤 풍경과 겹치기도 하고, 예고 없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그렇게 매번 새로운 의미가 됩니다.
조금 내려놓아도 괜찮겠습니다. 이해해야 한다는 부담, 해석하지 않으면 감상이 아니라는 생각, 판단까지 도달해야 마음이 놓이는 태도에서 잠시 벗어나도 좋습니다. 그림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충실한 감상은, 끝까지 이해하는 일이 아니라 오래 머무는 시간 그 자체일지 모릅니다.
긴 이야기 끝에, 다시 한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림을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이해하지 못했지만 오래 남은 그림이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그 잔상이 남아 있는 한, 감상은 이미 우리 안에서 계속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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