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V 신규 감염자 추이/그래픽=이지혜 |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에 감염된 내국인 수가 20년만에 처음으로 600명대로 떨어졌다.
12일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31일 기준 내국인 HIV 신규 감염자는 총 657명으로 2022년(824명) 이후 3년 연속 감소했다. 내국인 신규 감염자가 600명대를 기록한 것은 2005년(680명) 이후 무려 20년 만이다.
질병청의 HIV 신규 감염자 통계는 HIV 감염자와 에이즈(AIDS, 후천성면역결핍증) 환자를 모두 포함한다. HIV 감염자와 에이즈 환자가 동의어는 아니다. 에이즈 환자는 HIV 감염자 중 면역력이 일정수치 이하로 떨어졌거나, 적정 면역수치를 가지고 있어도 기회감염이 나타난 경우 진단한다. HIV감염자가 치료를 늦게 시작하거나 제대로 받지 못하면 HIV로 인해 에이즈 상태에 이를 수 있다.
임승관 질병관리청 청장이 지난해 12월 1일 '세계 에이즈의 날'을 맞아 서울 용산구 나인트리 로카우스 호텔에서 열린 '2025년 세계 에이즈의 날 기념식'에 참석해 기념사를 하고 있다./사진=질병관리청,서울=뉴스1 |
의료계 등에서는 HIV에 대한 인식 개선과 더불어 비감염자를 대상으로 한 '예방약'(길리어드사이언스 트루바다) 지원 확대가 신규 감염자 감소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한다.
지난해 질병청은 노출 전 예방요법, 이른바 '프렙(PrEP)' 지원 시범사업을 전국 17개 시·도로 확대했다. HIV 감염인의 파트너를 비롯해 남성과 성접촉하는 남성(MSM), 트렌스젠더 여성, 유흥업소 종사자 등 고위험 직업군을 대상으로 △HIV 검사 △프렙 처방 전 검사 △약값 일부를 횟수 제한 없이 지원한다. 처방을 원하는 누구든지 혜택을 받을 수 있다.
HIV 예방약은 환자가 아닌 건강한 사람이 복용 대상이다. HIV가 체내에 침입하더라도 증식하지 못하고 사멸하도록 만드는 효과가 있다. 임상시험에서 하루 한 알 예방약을 복용하면 HIV 감염 위험이 90% 이상 감소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질병청의 시범사업을 활용하면 월 40만원대의 약값이 6만원대로 줄어든다. 약에 대한 접근성이 확대돼 더 많은 감염 고위험군이 예방에 나서게 됐고 신규 환자 감소로 이어졌다는 평가다.
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 팬데믹 종식 이후 대면 접촉이 늘어난 상황에서도 HIV가 잘 관리되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라며 "아직 HIV가 '완치 없는 질환'이지만 지금처럼 체계적인 정부 지원과 관리가 강화된다면 신규 환자 0명의 사실상 세계 첫 '종식 국가'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질병관리청은 의료기관감염인상담사업을 통해 HIV 감염인의 치료 전후 상담과 복약 관리, 우울 및 불안 감소, 자살 예방과 같은 심리적 지지 등 통합서비스를 제공한다. 사진은 사업 참여 기관 목록./사진=질병관리청 |
질병청은 2024년 2차 에이즈 예방관리대책(2024~2028)에서 프렙 확대와 대국민 홍보 강화를 통해 2030년까지 신규 감염자를 2023년 대비 50% 줄이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지금 전국 에이즈예방센터와 에이즈상담센터를 중심으로 홍보와 예방 활동에 주력하는 한편 HIV 감염자의 요양·돌봄, 진료비 지원 등 체계적인 관리도 병행하고 있다.
민간에서도 지난해 의료진, 환자단체, 학계, 산업계가 공동으로 HIV에 대한 차별과 편견 종식을 목표로 한 '레드(RED) 마침표 협의체'를 출범하는 등 가세하고 있다.
유정희 질병청 에이즈관리과장은 "올해 프렙 지원사업의 목표 참여 인원은 1000명"이라며 "외국인 HIV 감염자의 관리 방안도 보강할 계획"이라며 "프렙 지원사업에서 복약 관리, 수요 평가 등을 모니터링해 장기적으로 HIV 감염 고위험군의 급여화도 검토할 예정"이라 말했다.
박정렬 기자 parkj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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