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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국민 신뢰’ 외친 경찰이 보여준 권력 늑장 수사

조선비즈 권오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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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국민 신뢰’ 외친 경찰이 보여준 권력 늑장 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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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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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는 언제나 ‘타이밍’이 생명이다. 그러나 권력형 의혹 앞에서 경찰의 시계는 유독 느려진다. 강선우 의원과 김경 서울시의원의 ‘공천 뇌물 의혹’ 수사가 그랬다.

2022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당시 더불어민주당 서울시당 공천관리위원이던 강 의원 측에 1억원을 건넸다는 의혹을 받는 김 시의원이 12일 새벽 경찰 조사를 마치고 귀가했다. 의혹 관련 녹취가 공개된 지 거의 2주 만이다.

그사이 김 시의원은 미국을 다녀왔다. 경찰에 고발장이 접수된 직후 떠나 열흘 넘게 미국에 머물며 IT·가전 박람회 ‘CES 2026’을 둘러봤다. 텔레그램을 두 번 탈퇴했다가 재가입하기도 했다. 카카오톡도 탈퇴 후 다시 가입한 정황도 있다. 증거인멸 우려가 제기되지만, 경찰은 “출석 일정을 조율 중”이라는 말만 반복했다.

김 시의원이 귀국하고 나서야 수사에 속도가 붙었다. 경찰은 압수수색에 나섰고, 김 시의원을 귀국 당일 곧바로 불러 3시간 30분가량 조사했다. 하지만 경찰이 조금만 더 발 빠르게 움직였다면 없었을 장면들이다. 결과적으로 경찰은 출국을 막지 못했고, 귀국 이후에야 뒷수습에 나선 모양새가 됐다.

경찰의 늑장 수사는 권력 앞에서 반복되고 있다. 김병기 민주당 의원의 아내가 동작구의원 몫의 업무추진비를 부당하게 사용했다는 ‘법인카드 유용 의혹’ 사건도 서울 동작경찰서는 두 달 가까이 뭉갰다. 수사팀조차 배정하지 않다가 뒤늦게 서울경찰청으로 사건을 넘겼다. 김 의원 차남의 ‘대학 편입과 취업 청탁 의혹’ 수사에 집중하느라 그랬다는 설명이지만, 정작 그 차남은 논란이 불거진 뒤 3개월 넘도록 경찰 조사를 받지 않았다.

경찰 내부에서조차 자성의 목소리가 나왔다. 전국경찰직장협의회는 지난 9일 입장문을 내고 “정치권 인사 연루 수사 무마 의혹이 사실로 확인된다면 경찰 수사의 독립성이 구조적으로 훼손된 것”이라며 “경찰이 여전히 ‘살아 있는 권력’ 앞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오랜 우려를 다시 드러내고 있다”고 했다.


김경 서울시의원이 지난 11일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뉴스1

김경 서울시의원이 지난 11일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뉴스1



올해 10월 검찰청이 사라질 예정인 상황에서 경찰의 수사 책임은 어느 때보다 무겁다. 경찰도 이를 의식해 ‘국민의 신뢰를 받는 경찰 수사’를 올해 핵심 목표로 내세웠다. 그러나 권력 앞에서만 작아지는 모습이 반복된다면, 국민의 실망과 의심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김 시의원과 강 의원 모두 공천 헌금 1억원을 줬다가 돌려받은 사실은 인정했다. 다만 돈을 중개했다고 지목된 강 의원의 전직 사무국장은 모르는 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결국 진실 규명은 경찰 수사에 달려 있다.

법조계의 설명은 분명하다. 돈을 반환됐는지는 뇌물죄 성립 여부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는다. 관건은 직무관련성과 그 대가성이다. 경찰이 이를 입증하지 못한다면 ‘부실 수사’라는 꼬리표를 피하기 어렵다.


참고로 김 시의원은 지난해 말 서울시의회 운영위원회에 올라온 ‘청렴문화 조성 및 지원에 관한 조례 일부 개정안’에 찬성표를 던졌다. “서울시의회 공직자의 청렴 문화를 조성하고 부패 행위를 방지한다”라는 조례 개정안의 목적과 김 시의원이 지금까지 보여준 행보는 간극이 크다.

경찰이 외친 ‘국민 신뢰’는 공허한 구호에 그치지 않길 바랄 뿐이다.

권오은 기자(oheun@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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