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검색
한겨레 언론사 이미지

로맨스 스캠 범죄 처벌 35%, 피해자이자 가해자였다

한겨레
원문보기

로맨스 스캠 범죄 처벌 35%, 피해자이자 가해자였다

속보
이 대통령 "한일회담서 '한중일 공통점' 찾아 협력 필요성 강조"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한겨레 뉴스레터 H:730 구독하기. 검색창에 ‘한겨레 h730’을 쳐보세요.)



2024년부터 지난해 9월까지 로맨스 스캠 범죄로 처벌받은 109명 중 38명(약 35%)은 ‘피해자성 가해자’로 분석됐다. 스캠 범죄의 피해자인 상태에서 가해자의 요청에 응하기 위해 범행에 가담한 이들이 가해자가 되는 구조가 확인된 것이다.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이 발표한 ‘판결문으로 본 로맨스 스캠 범죄 스크립트 분석과 정책적 함의’ 논문을 11일 보면, 로맨스 스캠 범죄 피고인 중 54.1%(59명)는 불법성을 인식한 상태에서 범행에 가담했다. 반면 범죄 조직의 사기성 구인 문구에 속아 취업이나 아르바이트인 줄 알고 갔다가 강압에 의해 범행에 가담한 경우도 18.3%(20명)를 차지했다. 이어 자신에게 로맨스 스캠 범죄를 저지른 범죄 조직원의 요청으로 범행에 가담하거나(10.1%·11명) 피해금을 회수하기 위해 가담한(6.4%·7명) 경우도 있었다. 논문은 이들을 ‘피해자성 가해자’로 분류했다. 이 논문은 2024년 1월부터 지난해 9월까지 선고된 형사사건 판결문 96건을 분석했는데 피고인은 109명이었다. 이들 중 약 83%가 내국인이었고, 과거 벌금형 이상의 형사처벌을 받은 적이 없는 경우도 48%였다.



범죄 시나리오도 확인됐다. 피고인들은 주로 정세가 불안한 중동·아프리카 지역에 파병된 군인(38%)이나 의사(26%)를 사칭해 자유로운 이동이나 금전 거래가 어렵다며 피해자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특히 60%가 미국 국적을 사칭했는데, 어린 시절 미국으로 입양된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배경을 꾸며내 동정심을 자극하고 유대감을 형성하는 전략을 썼다. 돈을 갈취한 형태는 수당이나 포상금 등을 해외에서 국내로 보내는 데 드는 배송비·통관비를 대신 납부해달라는 경우가 40%, 수익을 얻을 수 있다며 투자금을 받은 경우가 14%였다.



로맨스 스캠 범행 기간은 1~2개월 이내(67%)로 짧았지만, 피해 금액은 적지 않았다. 1억원 이상의 피해가 발생한 경우가 40%를 넘었고, 1천만원 이상~5천만원 미만인 경우도 36%에 이르렀다. 피해자가 3회 이상 돈을 송금한 경우가 전체의 64%에 이르렀다.



논문은 범죄 과정을 구조화하기도 했다. 범죄 조직은 기존 인적 관계를 활용하거나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허위 구인 광고를 올려 조직원을 모집하고, 수사기관의 추적이 어려운 캄보디아·라오스·베트남 등에 근거지를 만들었다. 피고인들은 여권을 빼앗기거나 폐회로텔레비전(CCTV)으로 감시를 당하고, 실적이 부진하면 야근을 강제당하는 등 강압적인 환경에서 범행에 가담했다. 로맨스 스캠 범죄 피해자들은 주로 소셜미디어나 오픈채팅방에서 접촉한 불특정 다수였지만, 범행 전 확보한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자산 상태가 높은 것으로 파악되는 이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한 경우도 있었다. 로맨스 스캠 피해금이 대포통장 계좌로 입금되면, 조직은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을 구입해 전자지갑으로 송금하는 방식으로 자금을 세탁했다.



논문은 ‘피해·가해 중첩 현상’이 확인되기에, 체포된 조직원이 실질적으로는 범죄의 피해자로 판단될 경우 조직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짚었다. 논문은 “‘피해자형 가해자’에 대해서는 단순 가담자와 차별화된 법적 해석이 필요할 수 있고, 수사 단계에서 심리 상담이나 교육이 병행되는 것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해 피해 신고가 된 계좌의 지급정지가 신속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주문도 나왔다. 현행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 방지 및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에서는 계좌 지급정지 대상에서 로맨스 스캠 등 ‘용역의 제공을 가장한 행위’를 포함하고 있지 않다. 논문은 “수사 단계에서 로맨스 스캠으로 규정지을 수 있는 구체적 조건을 마련하고, 이런 조건을 충족한다면 계좌 지급정지가 신속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짚었다.



고나린 기자 me@hani.co.kr



[한겨레 후원하기] 시민과 함께 민주주의를

겨울밤 밝히는 민주주의 불빛 ▶스토리 보기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