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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안성기, 영화계 일꾼 자처한 '국민배우'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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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안성기, 영화계 일꾼 자처한 '국민배우'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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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MBC 추모 특집 다큐멘터리 캡처

사진=MBC 추모 특집 다큐멘터리 캡처


[스포츠투데이 송오정 기자] 아역배우로 영화계에 발을 들인 배우 고(故) 안성기가 성인배우로 인정받은 여정과 '국민배우'라는 영향력을 영화를 위해 힘써 온 발자취가 대중에게 울림을 안기고 있다.

11일 고 안성기의 생애를 다룬 MBC '추모 특집 다큐멘터리-국민 배우 안성기'가 방송됐다. 배우 변요한이 내레이션을 맡았다.

고 안성기의 시간은 곧 한국영화사의 시간이었다. 1957년, 5살 꼬마였던 안성기는 아버지 손에 이끌려 김기영 감독의 '황혼열차'를 통해 영화계 데뷔했다. 당시만 해도 전문 악역배우가 없었던 시기였다. 김기영 감독의 주문대로 곧 잘 소화하는 안성기의 모습이 영화계에 입소문을 탔고 그렇게 배우의 길을 걷게 됐다. 한글도 떼지 못했지만 '천재 배우'라고 불리던 소년 안성기는 추후 해외 영화제에서 상을 받는 국내 최초의 배우가 됐다.

그러다 학업을 위해 연기를 중단하고 안성기는 청년이 됐다. 취업이 어려워지자 다시 충무로에 돌아왔다. 1980년 영화 '바람 불어 좋은 날'(감독 이장호)은 안성기에게 운명 같은 기회가 됐다. 덕배 역을 맡아 순박한 시골 청년을 연기한 안성기는 이 영화로 제19회 대종상 신인배우상을 거머쥐며 성인 연기자로 자리매김했다.

이장호 영화감독은 "원작이 '우리들의 넝쿨'이라는 최일남 선생의 중편 소설이다. 주인공이 사팔눈이다. 그 사시 청년을 일부러 신문에 공모를 해서 한 사람을 선택해 연기 연습을 시켰다. 연기가 도저히 안 되더라"고 회상했다.

이장호 감독에게 중요한 재기작이었다. "배창호 감독이 연기 연습 시키다가 도저히 안 되겠으니 큰일이라고, 안 된다더라. 그러면서 편집실에서 만났던 안성기라는 아역배우 출신이 어떻겠냐고 물어보더라. 가만히 보니까 굉장히 생각지도 못했던 발견을 한 것 같다"고 회상했다.


그렇게 안성기는 '바람 불어 좋은 날'을 통해 아역배우는 성인배우로 성공하기 어렵다는 충무로의 통설을 깨고 영화배우로 인정받았다.

당시 조감독이었던 배창호 감독은 "영화만 전문으로 하는 배우가 별로 없었다. TV를 겸한다든지, 뭐 연극을 겸한다든지. 그런데 안성기 시는 어릴 때부터 영화 전문 배우로 성장해왔다. 그 당시 조각 같은 미남 배우가 아닌, 어떠한 평범한 듯하면서도 서민적이고도 지성인의 모습을 풍길 수 있는 그런 아우라를 갖췄다"라고 말했다.

안성기의 도전은 한국영화의 새로운 기록으로 이어졌다. 영화 '실미도'는 우리 영화 최초로 천만 관객을 돌파한 작품이다. 안성기는 대한민국 3대 영화상으로 불리는 백상예술대상, 청룡영화상, 대종상 남우주연상을 모두 석권했다. 최다 수상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았다.


1987년 가을, MBC '인간시대'를 통해 안성기의 이야기가 전파를 타며 큰 화제가 됐다. 그에게 소중한 건 가족 그리고 영화였다. 연예인은 딴따라로 불리던 시절, 더 존중받는 직업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 더욱 까다롭게 작품을 골랐고 진한 배드신이 있는 영화는 찍지 않았다. 여러 광고모델 제의가 들어왔지만 고민 끝에 결정한 커피 광고 외에는 거의 출연하지 않았다. 해당 커피 브랜드와의 인연은 38년이나 이어졌다.

고인은 본인의 커리어만 아니라 무명 후배들과 영화에 헌신했다. 압구정의 한 영화관에는 안성기의 이름을 딴 관이 하나 있다. 독립영화인들에게 각별한 장소다. 이곳에서 정기적으로 행사를 열어 무명 배우와 후배들을 만났다.

스스로를 '영화계 일꾼'라 칭한 안성기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해마다 찾는가 하면, 부산국제영화제의 역대 최다 진행자이기도 했다. 상영관이 부족한 단편 영화를 위해 극장과 비행기 안에서 상영하는 아시아나 국제단편영화제 위원장도 지냈다. 저예산 영화에는 무보수로 출연해, 특히 신인감독의 작품에도 힘을 실어주곤 했다.


2022년, 영화 '한산' 촬영 당시 안성기는 혈액암으로 투병 중이었음에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한산'의 김한민 감독은 "전혀 내색을 하지 않으셨다"면서 "직업적인 자부심, 책임감 이런 것들이 누구보다 강하셨다"고 당시 현장에서 본 고인의 모습을 전했다.

고인은 마지막까지 촬영 현장을 지켰다. 영화 '탄생' 박흥식 감독은 "두 번째 문장이 막혀서 안 나오더라. '내가 몸이 안 좋다. 다음에 다시 하자'하셨다. 그런데 꼿꼿하게 자리에 앉아계시더라. 그날 눈물을 펑펑 쏟았다. 마지막 작품이 어떻게 보면 선생님 작품들 중 가장 작은 역이었다. 우리 후배들에게 보여 준 모습을 보면 가장 아름다운 연기를 하셨다고 생각한다"라고 했다.

[스포츠투데이 송오정 기자 ent@sto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