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지난 5일(현지시간) ‘CES 2026’이 열리는 미국 라스베이거스 퐁텐블로 호텔에서 자율주행 플랫폼 ‘알파마요’를 공개하며 향후 사업 계획을 설명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
지난 9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막을 내린 세계 최대 가전·정보기술(IT) 전시회 ‘CES 2026’을 관통하는 열쇳말을 꼽으라면 단연 인공지능(AI), 그중에서도 ‘피지컬 AI의 고도화’다. 생성형 AI를 넘어 AI 기술이 전자제품·자동차·로봇·헬스케어·물류장비·스마트팩토리 등에 적용돼 현실 공간에서 물리적 행동으로 구현되는 단계가 바로 피지컬 AI다.
자동차 산업으로 범위를 좁혀 보면 전통 제조 영역인 하드웨어와 첨단 소프트웨어가 결합하면서 자율주행 차량이 탄생한다. 일부는 무인 로보택시로, 일부는 운전석이 아예 없는 승용차 형태로 발전하고 있다. 구글 웨이모와 테슬라, 아마존 죽스가 전자라면, 이번 CES 2026의 화제 장면 중 하나였던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의 자율주행 플랫폼 ‘알파마요’ 공개는 후자에 해당한다.
엔비디아는 이미 메르세데스-벤츠와 손잡고 ‘자율주행 두뇌’ 격인 알파마요를 탑재한 양산 차량을 올해 1분기 중에 미국에 출시하겠다고 예고한 상태다. 2분기에 유럽, 3~4분기에 아시아로 판매 지역을 넓혀간다는 목표다. 자율주행 선도 업체인 웨이모와 죽스, 테슬라가 유료 서비스를 개시했거나 임박한 차량이 모두 로보택시라는 점을 고려할 때 엔비디아는 후발주자로서 이들과 동일 선상에서 경쟁하기보다 아예 다른 트랙에서 달리는 방식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이를 통해 기술 격차를 이른 시일 내에 극복하겠다는 구상이다.
미국 스타트업 텐서오토가 CES 2026에서 공개한 운전대 없는 완전자율주행차 ‘텐서 로보카’ 내부. 로이터연합뉴스 |
올해 CES 화두 ‘몸을 얻은 AI’
차량도 인공지능이 제어 ‘임박’
구글 웨이모·테슬라 시장 주도
엔비디아 ‘개방형 플랫폼’ 채택
완성차 업체 손잡고 역전 전략
정밀 지도 기반 vs 카메라 인식
‘자율주행 표준’ 경쟁도 관심사
엔비디아는 ‘개방형 플랫폼’을 채택했다. 두뇌는 빌려줄 테니, 튼튼한 몸만 갖고 오라는 메시지를 글로벌 완성차 업계에 던진 셈이다. 달리 말하면, IQ 올리겠다고 진땀 빼지 말고, 그 시간에 차체 제어와 주행 안정성 같은 ‘기초 체력’을 단련하라는 주문이다. 그래야 ‘알파마요’라는 고성능 두뇌를 얹고도 안정적으로 자율주행에 나설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는 테슬라를 비롯한 기존의 선발주자들이 미래 모빌리티의 주도권을 선점하기 위해 데이터·알고리즘을 움켜쥐는 폐쇄형 전략으로 자율주행 시스템 개발에 열중하는 것과 뚜렷하게 대비된다.
차량을 만들지 않는 엔비디아로선 이게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기도 하다. 특정 업체와 제휴하는 방식으로는 이른바 ‘규모의 경제’가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최대한 여러 완성차 제조사들을 가두리 양식장 안으로 끌어들여야 이미 저만치 앞서 있는 선발주자들과 한판 대결을 펼칠 힘을 기를 수 있다는 얘기다. 이를 황 CEO는 테슬라의 수직적 생태계와 구별되는 수평적 생태계라고 표현했다.
벤츠라는 ‘대어’를 낚은 엔비디아는 판매량 기준 글로벌 3위를 달리는 현대차그룹과도 끈끈한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10월 ‘깐부 회동’에 이은 황 CEO와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간 CES 비공개 회동(지난 6일)은 이를 암시하는 상징적 장면이다. 구체적 성과로 이어진다면 엔비디아로선 또 하나의 월척을 품에 안게 된다.
아마존의 자율주행 로보택시 ‘죽스’가 CES 2026이 열리는 미국 라스베이거스 시내를 달리고 있다. 연합뉴스 |
현대차로서도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다. 자동차 산업의 변화가 숨 가쁘게 전개되는 상황에서 현대차그룹으로서도 엔비디아를 핵심 파트너로 삼는다면 업계 판도를 뒤흔들 ‘게임 체인저’로 주목받는 자율주행 사업의 리스크를 줄이고, 속도는 끌어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CES 2026에서도 드러났지만, 기술 굴기를 앞세운 중국의 발전 속도가 하루가 다르게 빨라지고 있다. 자율주행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미국 업체들 못지않게 바이두, 화웨이, 샤오펑, 지커, 위라이드 등 중국 업체들이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등에 업고 방대한 규모의 도로 실증 데이터를 구축 중이다.
빨래 개는 가정용 로봇부터 제조 공장의 일손을 대체하는 산업용 로봇을 거쳐 인간을 모방하는 것도 모자라 심지어 넘어서려고 하는 휴머노이드 로봇에 이르기까지 글로벌 업체들이 각축전을 벌인 이번 CES 2026에서 피지컬 AI로 무장한 미래 자동차 역시 인간 세상에 깊숙이 침투하는 로봇의 한 종류로 당당히 자리 잡았다. 자동차는 소프트웨어중심차량(SDV) 수준을 넘어 인간의 개입 없이도 굴러가는 ‘완전자율주행 로봇’으로 진화하겠다는 포부를 분명히 했다.
변수는 있다. 현대차그룹이 장기적으로는 AI 기술의 내재화를 분명한 목표로 설정하고 있어서다. 정 회장은 지난 5일 화상 신년회에서 “생태계 강화 차원에서 외부 업체와 협력을 강화하되, AI 원천기술은 우리가 반드시 내재화해야 한다”며 “그래야 외부 환경이나 경쟁 업체에 끌려다니지 않고, 미래 패러다임을 주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엔비디아의 ‘드라이브 AGX 토르’ 플랫폼을 기반으로 이미 자율주행 협력을 시작한 다른 완성차 업계도 한층 고도화된 알파마요로 협업 범위를 확대할지를 놓고 비슷한 고민에 들어간 모습이다. 독자 개발을 하자니 기술·시간 부담이 크고, 손을 잡자니 종속될까 봐 불안하다는 우려다.
결국, 상업 서비스 개시가 임박한 죽스의 로보택시와, 승인·규제 이슈로 출시가 지연되고 있는 테슬라의 로보택시(사이버캡)가 본격적으로 시장에 모습을 드러낼 때 어떤 반응을 끌어낼지가 관건이다. 여기에 중국 자율주행 진영의 약진이 얼마나 위협적으로 작용하느냐에 따라, 완성차와 플랫폼 업체 간 협업의 범위와 속도가 달라질 공산이 크다.
웨이모가 채택한 고정밀 지도 기반의 룰 베이스 방식과 테슬라가 밀고 있는 카메라 인식 기반의 엔드투엔드 방식 중에 누가 자율주행 표준의 최종 승자가 될지도 관심거리다. 전자는 AI가 사전에 학습한 길을 바탕으로 운행하므로 안전성이 강점이지만, 돌발 상황 대처가 약점이다. 반대로 후자는 도로 상황을 AI가 실시간으로 인지하며 달리다 보니 임기응변에 빠르지만 그만큼 변수가 많아 예측 가능성이 떨어진다. 둘 다 강점과 약점이 뚜렷한 방식이다 보니, 현대차그룹을 비롯한 다른 경쟁사들은 각자의 전략에 맞게 장점을 살리고, 단점은 보완하는 절충안을 모색 중이다.
알파마요도 기본적으로 엔드투엔드 학습을 지향하지만, 웨이모처럼 카메라·라이다·레이더를 총동원한 멀티센서가 도로 주변 환경을 인식하도록 해 ‘카메라 온리’(Only) 방식의 테슬라 자율주행 시스템보다 도로 정보의 정확성과 안전성을 강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알파마요를 탑재하고 1분기에 나올 벤츠 자율주행 차량(신형 CLA)의 기술 수준과 성능, 그리고 가격 경쟁력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권재현 선임기자 jaynew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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