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원서 일본 슈메이대학교 교수 |
일본에 와서 일본인 배우자와 결혼해 살아온 지도 어느덧 20년에 가깝다. 아이가 없던 시절, 처음에는 우리도 "부부라면 같이 가야 한다"는 관성에 따라 서로의 명절에 동행했다. 하지만 국제결혼의 명절은 '가족'보다 '문화'가 먼저 부딪히는 자리였다. 배우자가 한국에 왔을 때 말이 통하지 않으니 그는 마치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한쪽에 있곤 했다. 반가움이 클수록 더 잘해야 한다는 압박도 커졌다. 어디에 앉아야 하는지, 언제 웃어야 하는지, 어떤 농담에 맞장구를 쳐야 하는지조차 낯선 공간에서 "괜찮다"는 말도 쉽게 나오지 않는다. 몸이 좋지 않아도 쉬기 어렵고, 나는 통역과 분위기 조율을 동시에 떠안은 채 귀성 뒤에는 늘 녹초가 됐다. 모두가 모였는데도 누구도 회복하지 못하는 시간, 그게 명절이었다.
그래서 이때부터 각자의 고향으로 따로 가는 선택을 많이 해왔다. 나와 배우자는 각자 자신의 가족과 친지들을 만나며 시간을 보냈다. 신기하게도 그 편이 관계에 더 도움이 됐다. 각자가 충분히 쉬고 돌아오니 다시 만났을 때의 말투가 달라졌고, 상대 가족을 대하는 마음에도 여유가 생겼다. 온라인으로 얼굴을 비추거나 전화로 안부를 전하는 식으로 연결을 '끊지' 않는 장치만 갖추면, '불참'이 아니라 '분산'이 된다. '이번에는 따로, 다음에는 함께'라는 교대도 가능해진다.
이런 변화는 특히 일본의 여성과 20~30대 젊은 세대에서 두드러진다. 귀성은 더 이상 의무적 통과의례가 아니라 감정 노동이 수반되는 시간으로 인식되고 있다. 시댁에 가면 무엇을 어디까지 해야 하는지 경계가 흐릿하다. 돕는 것은 미덕이지만, 돕지 않으면 곧바로 눈치가 된다. 아이 양육 방식, 집안일 분담, 친척 관계에서의 암묵적 기대는 여전히 여성에게 더 크게 작용한다. 일본에서 "배우자의 부모는 타인"이라는 냉정한 표현이 공감을 얻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일본의 '귀성 블루', 한국의 '명절 증후군'은 결국 같은 피로를 다른 언어로 부르는 것일지 모른다. 코로나19는 시기를 다르게 하거나 온라인으로 인사하는 방식을 널리 퍼뜨리며, "꼭 그날, 꼭 한자리에"라는 규범을 느슨하게 만들었다.
흥미로운 점은 변화가 '가는 쪽'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맞이하는 쪽'에서도 관찰된다는 사실이다. 며느리가 오지 않는 귀성을 오히려 반기는 시부모의 목소리는, 전통적 가족 규범이 이미 내부에서 균열을 일으키고 있음을 보여준다. 정성스러운 상차림과 손님맞이는 사랑이지만 동시에 노동이다. 함께 모여야만 가족이라는 생각보다, 서로 부담을 줄이고 관계를 지속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맞벌이·육아로 지친 가정이라면 아이를 번갈아 데리고 귀성해 한쪽이 쉬는 리듬도 가능하다.
명절의 목적이 '한 번에 완벽하게 모이기'가 아니라 '관계를 오래 유지하기'라면, 방식은 하나일 필요가 없다. 함께 가든, 따로 가든, 번갈아 가든 중요한 것은 부부가 먼저 같은 편이 되어 서로를 지켜주는 일이다. 가운데에서 배우자가 완충 역할을 하지 못하면 부담은 약한 쪽으로 쏠린다. 그러니 원칙은 간단하다. 무리하지 않기, 미리 합의하기, 그리고 다음 만남의 에너지를 남기기. 함께는 의무가 아니라 선택이어야 한다. 서로가 편안할 때, 명절은 비로소 진짜 휴식이 된다.
송원서 (일본 슈메이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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