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로스 알카라스(왼쪽)와 얀니크 신네르가 10일 인천 인스파이어 아레나에서 열린 현대카드슈퍼매치를 마친 뒤 환하게 웃고 있다. 세마스포츠마케팅 제공 |
평소 투어 무대에서 ‘정석’에 가까운 무결점 경기로 ‘AI’ 같다는 놀림을 받기도 하는 얀니크 신네르는 10일 인천 인스파이어 아레나에서 열린 현대카드 슈퍼매치에서만큼은 누구보다 ‘인간미’ 있게 팬들의 응원 한 마디 한 마디에 적극적으로 애정을 표현했다. 세마스포츠마케팅 제공 |
포인트를 낸 뒤 관중들의 환호를 유도하고 있는 카를로스 알카라스. 세마스포츠마케팅 제공 |
“알카라스, 아 유 싱글?(Are you single?)”
10일 인천 인스파이어 아레나에서 열린 카를로스 알카라스(23·스페인)와 얀니크 신네르(25·이탈리아)의 현대카드 슈퍼매치. 알카라스가 서브를 준비하는 동안 관중석에서 한 팬이 이렇게 외쳤다. 그러자 알카라스는 옅은 미소와 함께 손가락으로 자신과 신네르를 번갈아 가르켰다.
아마도 어느 대회에서도 다시 보기 힘든 장면일 것이다. 지난 시즌 남자프로테니스(ATP)투어 세계랭킹 1, 2위이자 최근 두 시즌 메이저대회 남자 단식 우승 트로피를 양분한 ‘신카라스’(신네르+알카라스)가 한국에서 열린 현대카드 슈퍼매치로 2026시즌을 시작했다. 둘은 “새해에도 이제껏 함께 써왔던 새 역사를 이어가겠다”고 다짐했다.
서브를 준비하던 도중 관중석에서 “신네르, 아이 러브 유(I love you)”라는 외침이 들리자 팬을 향해 웃으며 ‘손하트’를 날린 신네르. 세마스포츠마케팅 제공 |
“사랑해”라는 관중의 외침에 관중들 모두 웃음이 터졌고 손하트로 화답한 알카라스에 관중들이 환호하고 있. 세마스포츠마케팅 제공 |
18일 시작되는 시즌 첫 메이저대회 호주오픈 개막을 약 일주일 앞두고 남자 테니스를 양분하고 있는 두 선수가 한국에서 대결한다는 사실은 전 세계 테니스 팬들의 관심을 모았다. 특히 ATP 대회가 열리지 않는 한국 테니스 팬들에게는 이 둘을 한국에서 만난다는 건 ‘다신 오지 않을 수도 있는 기회’였다. 한국 테니스 팬들은 이날 1만2000석 코트를 가득 메웠다.
티켓 최고가는 350만 원이었다. 일반석 중 가장 싼 좌석이 27만5000원, 시야제한석도 16만5000원일 정도로 고가였으나 한 장도 남김없이 모두 팔렸다.
소문난 테니스광인 최태원 SK 회장도 이날 관중석 맨 앞줄에서 경기를 지켜봤다. 세마스포츠마케팅 제고 |
한국 팬들은 경기에 방해되지 않는 타이밍에 센스있는 응원전을 펼치며 두 선수를 모두 웃게 했다. 경기 중 관중석의 꼬마 팬에게 테니스 공을 던져준 알카라스는 “하트도 해줘”라는 관중의 한국말을 알아듣고는 돌아서 손으로 하트를 만들었다. 알카라스, 신네르 두 선수는 모두 “사랑해” “잘생겼다” 등 한국말 응원이 나올 때마다 이를 알아듣고 관중석을 향해 손하트를 하는 등 적극적인 팬서비스로 쉼 없이 관중들의 환호를 이끌어냈다.
특히 신네르는 2세트 2-2 상황에서 맞은 알카라스의 서브 게임 도중 어린이 팬에게 즉석에서 자신의 라켓을 쥐여주며 코트로 내보내고 자신은 관중석에 앉았다. 서브게임 중이었던 알카라스도 흔쾌히 어린이에게 서브를 넣었다.
관중석에 앉아있던 어린이 팬에게 자신의 라켓을 건네고 하이파이브를 한 얀니크 신네르. 얀니크 신네르 인스타그램 |
꼬마 팬이 알카라스를 상대로 득점에 성공하자 두 주먹을 높이 들고 환호하는 신네르. 얀니크 신네르 인스타그램 |
긴장한 듯 첫 리턴에는 실패한 어린이는 이어진 알카라스의 두 번째 서브는 능숙하게 받아내 알카라스와 랠리를 이어갔다. 이어 강한 포핸드를 라인에 걸쳐 떨어뜨리며 알카라스를 꼼짝 못 하게 했고 신네르는 두 주먹을 들어 올리며 환호했다.
이어 신네르가 코트에 다시 나서자 주심은 “듀스(40-40)”를 선언해 관중석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신네르가 어린이에게 라켓을 넘겨주기 전 30-40으로 알카라스에게 끌려가고 있었는데 어린이의 첫 실점은 점수에 반영하지 않았던 주심이 어린이의 득점은 신네르의 득점으로 인정하는 ‘센스’를 발휘했기 때문이다.
신네르가 즉석에서 코트로 초대한 꼬마팬이 알카라스를 상대로 득점에 성공한 뒤 네트에서 알카라스와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 인천=뉴스1 |
워낙 자연스럽게 진행됐기에 모두가 사전에 짜인 각본대로 진행된 줄 알았다. 하지만 경기 후 신네르는 “오전에 사인회 때 만났던 아이다. 테니스 가방에 장비를 다 챙겨왔더라. 나랑 알카라스 모두에게 사인을 받았던 친구였는데 경기하다 보니 맨 앞줄에 앉아있더라. 장비도 다 있었고 당연히 테니스를 칠 줄 알 것 같아서 코트에 서 볼 기회를 주고 싶었다. 나보다 더 잘 치더라”며 웃었다.
관중들의 탄성을 자아낸 알카라스의 강서브. 세마스포츠마케팅 제공 |
이날 경기가 ‘웃음’으로만 채워진 건 아니었다. 이벤트 경기임에도 알카라스는 시속 200km가 넘는 강서브를 앞세워 신네르에게 단 한 차례도 서브 게임을 내주지 않았다. 화려하고 동적인 플레이가 매력인 알카라스는 이날도 초반부터 적극적으로 묘기에 가까운 점프 스매시, 다리 사이로 공을 받아 치는 트위너 등 다양한 플레이로 팬들의 환호를 끌어냈다.
두 선수는 또 이벤트 대회답게 다른 공식 경기에서는 보기 어려운 색다른 재미를 선사했다. 이날 두 선수는 백핸드 슬라이스로만 랠리를 이어가거나 포핸드 슬라이스로만 랠리를 이어가기도 하며 중간중간 볼거리들을 만들었다.
신네르의 정교한 백핸드 슬라이스. 세마스포츠마케팅 제공 |
알카라스의 백핸드 슬라이스. 세마스포츠마케팅 제공 |
2세트에서 두 선수가 서로의 서브 게임을 모두 지키며 타이브레이커로 이어졌다. 이벤트 경기인 만큼 팬들은 두 선수의 플레이를 조금이라도 더 보기 위해 “3세트”를 외쳤지만 알카라스는 경기를 2-0(7-5, 7-6)으로 끝냈다.
알카라스와 신네르는 경기 후 나전공예로 만든 라켓과 공을 기념 부상으로 받았다. 세마스포츠마케팅 제공 |
경기 후 먼저 마이크를 잡은 신네르는 “원래는 (준우승 인터뷰 때 승리한) 알카라스 얘기부터 하는데 오늘은 팬분들 얘기부터 하겠다. 공항에 도착했을 때부터 너무 많은 사랑을 보내주셔서 감사하다”며 “한국은 이번이 처음인데 마지막이 아니길 바란다. 환대해 주셔서 정말 감사하다”고 했다.
이어 “알카라스와 새해부터 코트에서 함께할 수 있어 좋았다. 남을 올 시즌에도 행운이 함께하길 바란다”며 새 시즌에 다시 메이저 우승컵을 두고 경쟁할 알카라스에도 덕담을 전했다.
9일 저녁 세계적인 DJ 페기 구와 함께 삼겹살을 즐긴 알카라스. 페기 구 인스타그램 캡처 |
알카라스도 “이번에는 짧게 와서 아쉽지만 정말 너무 재밌었다. 이곳에서 받은 에너지, 응원이 정말 대단했다. 다음에도 경기가 됐든 휴가로 오든 꼭 다시 오고 싶다”며 한국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알카라스는 경기 전날 예(칸 예)가 방한 당시 방문해 화제가 됐던 삼겹살집을 세계적 DJ 페기 구와 함께 찾기도 했다. 페기 구는 2026년 호주오픈에서 공연자로 나설 예정이다.
현대카드 슈퍼매치를 마친 뒤 나란히 기자회견에 나선 신네르(왼쪽)와 알카라스. 두 선수는 이날 경기를 마친 뒤 주최 측에서 마련해준 전세기로 함께 호주로 이동했다. 세마스포츠마케팅 제공 |
4대 메이저대회 중 호주오픈에서만 우승이 없어 ‘커리어 그랜드슬램’ 달성이 지연되고 있는 알카라스는 “지난해 시즌 마무리도 (신네르와) 함께 했고 이번 시즌 시작도 함께했으니 작년처럼 둘 다 좋은 시즌을 보냈으면 한다”며 새해에도 신네르와 ‘진검승부’를 예고했다.
임보미 기자 b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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