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검색
세계일보 언론사 이미지

‘만다라’, ‘고래사냥’부터 ‘태백산맥’ ‘축제’까지… ‘한국 영화의 페르소나’ 고(故) 안성기 배우 대표작 온라인 추모전

세계일보
원문보기

‘만다라’, ‘고래사냥’부터 ‘태백산맥’ ‘축제’까지… ‘한국 영화의 페르소나’ 고(故) 안성기 배우 대표작 온라인 추모전

속보
리플 2% 하락, 2.04달러까지 추락
‘만다라’(1981)부터 ‘축제’(1996)까지 모두의 추모 속에 영면한 고(故) 안성기 배우 대표작 10편을 온라인에서 감상할 수 있는 추모전이 열린다.

한국영상자료원은 지난 5일 별세한 고인 출연작을 무료 상영하는 온라인 추모전을 9일 시작했다. 유튜브 채널 '한국고전영화'를 통해 영화 '만다라'(1981)와 '꼬방동네 사람들'(1982), '고래사냥'(1984), '기쁜 우리 젊은 날'(1987), '축제'(1996) 등 안성기의 1980~90년대 대표작 10편을 무료로 공개한 것. 그간 한국영상자료원이 보관해 온 HD 해상도 혹은 4K 화질의 복원본들이다. 안성기의 출연작 가운데서도 캐릭터 특성이 잘 드러나는 장면들을 모아 갈무리한 비디오 에세이 '기쁜 우리 젊은 날 그리고 안성기'도 함께 선보였다. 9분 분량의 이 영상에는 '바람불어 좋은 날'(1980)부터 '칠수와 만수'(1988)까지 1980년대 출연작 가운데 10편 속 고인의 모습이 담겼다.

한국영상자료원의  고(故) 안성기 배우 온라인추모전.          유튜브 채널 '한국고전영화' 화면

한국영상자료원의 고(故) 안성기 배우 온라인추모전. 유튜브 채널 '한국고전영화' 화면


다섯 살에 아역 배우로 데뷔한 뒤 평생을 스크린과 함께하며 출연한 안성기는 170여편의 작품에서 소매치기 소년, 비리 경찰, 빈민촌의 서민, 조직폭력배 보스, 북파공작원 교관, 한물간 가수의 매니저 등 폭넓은 인물을 연기했다. 작품을 위해서라면 주연과 조연을 가리지 않았고, 특정 이미지에 머무르기보다 시대와 함께 변주되는 인물을 통해 한국 영화의 다양한 얼굴을 스크린에 남겼다. 그의 이름 앞에 자연스럽게 ‘국민배우’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었던 이유기도 하다.

1952년 대구에서 태어난 그는 1957년 김기영 감독의 영화 ‘황혼열차’로 데뷔했다. 충무로의 영화 기획자였던 부친 안화영씨가 친구였던 김 감독이 급히 아역배우를 찾자 막내아들을 데려간 것이 계기였다. ‘연기 천재’라는 평가 속에 아역 시절에만 70여편의 영화에 출연했으며, 김 감독의 ‘10대의 반항’(1959)으로 샌프란시스코 국제영화제 특별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고교 진학 후 학업과 군 복무(ROTC)로 약 10년간 스크린을 떠났다. 대학에서 베트남어를 전공한 그는 전공을 살려 현지 취업을 준비했으나 베트남 패망으로 계획이 무산됐다. 대학 졸업 후 막막한 취업준비생 시기를 보내던 그는 1977년 김기 감독의 영화 ‘병사와 아가씨들’을 통해 성인 배우로 스크린에 복귀했다. 아역 시절의 명성은 잊힌 채 사실상 신인 배우로 다시 출발했다.

전환점은 이장호 감독의 ‘바람 불어 좋은 날’(1980)이었다. 자본주의의 모순과 급속한 도시화의 문제가 표면화된 1980년대 초, 강남 개발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에서 고인은 어리숙한 중국집 배달부 ‘덕배’를 연기해 대종상 신인상을 받았다. 이후 1980∼90년대 한국영화는 안성기를 빼고 논할 수가 없을 정도다. 당시 젊은 감독들에게 그는 절대적인 존재였다. 배창호 감독과는 ‘꼬방동네 사람들’(1982), ‘고래사냥’(1984), ‘기쁜 우리 젊은 날’(1987) 등 여러 성공작을 함께 만들었다. 임권택 감독의 ‘만다라’(1981), ‘태백산맥’(1994), ‘축제’(1996) 등에서도 강렬한 연기를 선보였다. 이명세 감독의 데뷔작 ‘개그맨’(1988)을 비롯해 ‘나의 사랑, 나의 신부’(1990), ‘인정사정 볼 것 없다’(1999)에서도 독보적인 존재감을 남겼다. 정지영 감독과는 ‘남부군’(1990), ‘하얀 전쟁’(1992) 등 사회적 문제의식을 담은 작품들을 함께했다.


배우 박중훈과는 박광수 감독의 ‘칠수와 만수’(1988)를 시작으로 ‘투캅스’(1993),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라디오 스타’(2006)까지 한국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콤비로 사랑받았다. 한국영화 역대 첫 천만 영화인 ‘실미도’(2003)를 비롯해 ‘아라한 장풍대작전’(2004), ‘형사 Duelist’(2005), ‘화려한 휴가’(2007), ‘부러진 화살’(2012), ‘화장’(2015) 등에서 다채로운 얼굴을 보여줬다.

박성준·이규희 기자

ⓒ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