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법전의 차가운 글자보다 이웃의 젖은 눈망울을 닦아주는 이들이 있다. 화려한 조명 대신 변호사 한 명 없는 섬마을과 오지 등 ‘무변촌(無辯村)’을 직접 찾아가 무료 법률 상담을 이어가는 마을변호사들이다. 어느덧 13년, 1228명의 변호사가 전국 1414개 읍·면·동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다. 가장 낮은 곳을 향해 묵묵히 발걸음을 옮겨온 그들의 따뜻한 목소리를 담았다.
“보통 임대인이 강자, 임차인이 약자라고 하죠. 하지만 현장에서는 거꾸로 역차별을 받으며 속앓이하는 임대인도 적지 않습니다.”
지난달 29일 수원 광교 사무실에서 만난 한지연(37·변시 8회) 변호사는 6년째 경기 화성시 반월동 ‘마을변호사’로 활동하며 목격한 법과 현실의 괴리를 이렇게 설명했다. 반월동은 삼성전자 화성캠퍼스가 인접해 아파트와 공장이 밀집한 전형적인 도시 지역이다.
주민들의 상담 주제도 농촌의 토지 분쟁보다는 전세 사기, 임대차 분쟁, 채권·채무 등 도심형 갈등에 집중된다.
한지연 법률사무소 정도 변호사가 작년 12월 29일 경기 수원시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손덕호 기자 |
“보통 임대인이 강자, 임차인이 약자라고 하죠. 하지만 현장에서는 거꾸로 역차별을 받으며 속앓이하는 임대인도 적지 않습니다.”
지난달 29일 수원 광교 사무실에서 만난 한지연(37·변시 8회) 변호사는 6년째 경기 화성시 반월동 ‘마을변호사’로 활동하며 목격한 법과 현실의 괴리를 이렇게 설명했다. 반월동은 삼성전자 화성캠퍼스가 인접해 아파트와 공장이 밀집한 전형적인 도시 지역이다.
주민들의 상담 주제도 농촌의 토지 분쟁보다는 전세 사기, 임대차 분쟁, 채권·채무 등 도심형 갈등에 집중된다.
최근 한 변호사를 찾아온 한 상가 임대인은 망연자실한 상태였다. 월세 200만 원에 보증금 1000만 원을 받았는데, 임차인이 10개월간 월세를 내지 않고 잠적했기 때문이다. 보증금은 이미 바닥났고 1000만 원의 추가 손해가 발생했지만, 임대인은 내부 집기 하나 함부로 치울 수 없었다.
한 변호사는 “무단으로 짐을 빼면 오히려 형사 처벌 대상이 된다고 안내하니 임대인이 큰 충격을 받았다”며 “코로나 시기 도입된 임대료 연체 특례 등이 겹치며 법이 일방만 보호해 발생하는 사각지대를 체감했다”고 말했다.
권리 행사의 ‘골든타임’을 놓쳐 낭패를 본 안타까운 사례도 많다. 지인에게 빌려준 돈을 받지 못한 채 10년의 소멸시효를 넘긴 한 민원인은 뒤늦게 문자메시지를 수백 건 보냈다가 오히려 채무자로부터 스토킹법 위반으로 고소당해 기소되기도 했다. 한 변호사는 “분쟁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진 뒤에야 변호사를 찾으면 때가 이미 늦은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아래는 한 변호사와의 일문일답.
─반월동은 아파트와 주택, 공장이 밀집한 지역이다. 이곳 주민들은 마을변호사에게 주로 어떤 고민을 상담하나.
“전세 사기나 임대차 분쟁, 이웃 간 갈등, 채권·채무 문제, 상속이나 가족 간 재산 분쟁, 근로관계 갈등처럼 일상과 맞닿아 있는 사건이 대부분이다. ‘이웃이 차로 주차장 입구를 막아 차를 빼지 못한다’는 사소한 상담도 있다. ‘소송까지 가야 하나’, ‘어디까지가 내 권리인가’처럼 기준을 알고 싶어 하는 경우가 많다.”
─전세 사기 문제는 범정부적으로 대응하고 있는데, 요즘도 심각한가.
“전세 사기가 큰 사회적 이슈가 되다 보니 작은 분쟁도 모두 사기로 의심하는 분위기가 있다. 임차인이 만기 후 퇴거 의사를 밝혔는데 임대인이 ‘지금은 보증금을 돌려줄 여력이 없다. 다음 세입자가 구해지면 주겠다’고 말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곧바로 형사 고소를 해야 하느냐고 묻는 분이 많다.
하지만 사기죄가 성립하려면 임대인이 처음부터 전세금을 돌려줄 의사와 능력이 없었다는 점을 입증해야 하는데, 이는 쉽지 않다. 일반 아파트나 오피스텔의 경우에는 임대차 계약서와 등기부등본상 권리 관계, 전세보증금 반환보증 가입 여부부터 확인한 뒤 대응 방안을 논의하자고 안내한다. 소송에 앞서 전세 기간 종료 즉시 임차권 등기를 하는 것이 우선이다. 전세 사기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경기도 전세피해지원센터로 연계하고 있다.”
─기억에 남는 안타까운 사례가 있다면.
“지인에게 돈을 빌려줬다가 민사 채권 소멸시효 10년을 넘겨버린 사례가 있다. 중간에 내용증명이라도 보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다. 뒤늦게 채무자의 집 앞을 찾아가고 문자메시지를 수십 차례 보냈다가, 오히려 스토킹처벌법 위반으로 고소돼 기소까지 됐다. 분쟁이 커진 뒤에야 변호사를 찾는 경우가 많은데, 그때는 이미 손쓰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마을변호사 활동이 변호사 업무에 도움이 되나.
“기본적으로 한 시간 이상 상담하다 보니 의뢰인이 설명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끝까지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 ‘이렇게 자세히 설명해 준 변호사는 처음’이라는 말을 들은 적도 있다.”
─마을변호사 제도에서 개선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점은.
“수원시처럼 행정복지센터에서 상담 내용을 미리 정리해 주는 방식이 더 효율적이라고 본다. 또 국선변호인 제도가 경미한 사건까지 자동 배정되면서 한정된 자원이 낭비되는 측면도 있다. 진정으로 변호인의 조력이 필요한 사건에 집중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손덕호 기자(hueyduck@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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