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문성 교수의 블록체인 Pick]
[오문성 한양여대 세무회계학과 교수] 우리는 흔히 딜레마(dilemma)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딜레마란 두 가지 선택지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하더라도 다른 하나를 포기해야 하며, 그 선택 자체가 불가피한 손실이나 부담을 동반하는 상황을 의미한다. 문제는 이러한 곤경이 선택지가 둘일 때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선택지가 셋으로 늘어나는 순간, 우리는 딜레마가 아니라 트릴레마(trilemma)라는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블록체인을 설명할 때 자주 언급되는 개념 중 하나가 바로 ‘블록체인 트릴레마(Blockchain Trilemma)’다. 트릴레마라는 표현이 의미하듯, 이는 탈중앙성(Decentralization), 보안성(Security), 확장성(Scalability)이라는 세 가지 목표를 모두 중시할 경우, 그 우선순위에 따라 필연적인 상충관계(trade-off)가 발생하는 구조적 특성을 말한다. 이는 단순히 기술이 미비해서 생긴 문제가 아니라, 어떤 가치를 우선할 것인가에 대한 선택에서 비롯되는 문제이다.
탈중앙성은 통제권이 특정 주체에 집중되지 않고 다수에게 분산된 상태를 뜻하며, 이는 블록체인의 가장 핵심적인 철학이다. 은행처럼 중앙 관리자가 존재하는 시스템에서는 문제가 발생했을 때 단일 기관의 판단으로 규칙이 변경되거나 거래가 중단될 수 있다.
블록체인을 설명할 때 자주 언급되는 개념 중 하나가 바로 ‘블록체인 트릴레마(Blockchain Trilemma)’다. 트릴레마라는 표현이 의미하듯, 이는 탈중앙성(Decentralization), 보안성(Security), 확장성(Scalability)이라는 세 가지 목표를 모두 중시할 경우, 그 우선순위에 따라 필연적인 상충관계(trade-off)가 발생하는 구조적 특성을 말한다. 이는 단순히 기술이 미비해서 생긴 문제가 아니라, 어떤 가치를 우선할 것인가에 대한 선택에서 비롯되는 문제이다.
(사진=챗GPT) |
탈중앙성은 통제권이 특정 주체에 집중되지 않고 다수에게 분산된 상태를 뜻하며, 이는 블록체인의 가장 핵심적인 철학이다. 은행처럼 중앙 관리자가 존재하는 시스템에서는 문제가 발생했을 때 단일 기관의 판단으로 규칙이 변경되거나 거래가 중단될 수 있다.
반면 탈중앙적인 블록체인에서는 수많은 참여자가 동시에 장부를 공유하고 검증하기 때문에 특정 개인이나 기관이 시스템 전체를 좌우하기 어렵다. 이 구조에서 신뢰는 사람이나 기관에 맡겨지지 않고, 공개된 규칙과 다수의 검증을 통해 자동으로 형성된다. 블록체인이 ‘신뢰 없는 신뢰(trustless trust)’, 즉 누군가를 믿지 않아도 결과는 믿을 수밖에 없게 만드는 구조로 불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보안성은 기록된 거래나 데이터를 임의로 변경할 수 없도록 보호하는 기술적·구조적 속성을 말한다. 블록체인은 모든 참여자가 정직할 것이라는 가정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 오히려 일부 참여자가 악의적으로 행동하더라도, 충분히 분산된 합의 구조와 다수의 정직한 참여자에 기반해 시스템 전체의 안정성이 유지되도록 설계돼 있다.
확장성은 이용자가 늘어나더라도 시스템이 정체 없이 작동하는 능력으로, 얼마나 많은 거래를 얼마나 빠르고 안정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가의 문제다. 쉽게 말해 확장성은 속도와 처리 능력의 문제이며, 결제나 송금 등 실사용 영역에서 블록체인이 활용되기 위해 반드시 확보돼야 할 요소이기도 하다.
문제는 이 세 가지 가치가 실제 설계 과정에서 긴밀하게 충돌한다는 점이다. 흔히 탈중앙성이 높아질수록 조작 가능성이 낮아져 보안성이 강화된다고 설명되지만, 엄밀히 말하면 이는 분산된 구조를 유지한 채 보안을 확보하려다 보니 처리 속도, 즉 확장성이 희생되는 구조다.
보안을 높이기 위해 검증 절차를 강화하고 참여 주체를 늘리면 필연적으로 처리 시간과 비용은 증가한다. 이는 보안을 강화하는 대신 확장성을 희생하는 선택이다. 반대로 거래를 빠르게 처리하기 위해 검증 과정을 단순화하거나 참여자를 제한하면 시스템은 빨라질 수 있다. 그러나 그 결과 결정권은 소수에게 집중되고 탈중앙성은 약화된다. 이는 확장성을 높이는 대신 탈중앙성을 희생하는 구조다.
솔라나(SOL)는 이러한 트릴레마에서 확장성과 처리 효율에 강하게 방점을 찍은 사례로 평가된다. 솔라나는 블록체인 기술 위에 구축된 네트워크이지만, 탈중앙성의 극대화보다는 초고속 처리와 대규모 트래픽을 감당하는 설계를 택했다. 검증자가 되기 위해 높은 성능의 장비와 안정적인 네트워크가 필요해 개인 참여자의 진입 장벽이 높아졌고, 검증 구조도 상대적으로 집중됐다. 이런 이유로 솔라나는 ‘누구나 참여하는 블록체인’보다는 ‘준비된 참여자 중심의 블록체인’이라고 보아야 한다.
트릴레마에서 중요한 점은 트릴레마를 구성하는 세 요소가 결코 수평적인 관계에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보안성과 확장성이 ‘어떻게(How) 시스템을 최적화할 것인가’에 대한 기술적 방법론이라면, 탈중앙성은 ‘왜(Why) 이 시스템이 존재해야 하는가’에 대한 철학적 근거다.
전자는 기술 발전을 통해 지속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대상이지만, 후자는 어떤 상황에서도 지켜져야 할 본질에 가깝다. 탈중앙성은 단순한 트릴레마의 요소 중 하나가 아니라, 시스템의 성격을 규정하는 가장 기본적인 뿌리와 같다. 탈중앙성이 결여된 블록체인은 더이상 존재의 명분을 갖기 어렵다.
이 점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다. CBDC는 분산 원장 기술을 활용할 수 있지만 발행과 운영, 규칙 변경에 대한 최종 통제권은 중앙 주체에 남아 있는 허가형 구조다. 결국 이는 탈중앙화 블록체인이라기보다는 기술적 효율을 위해 블록체인의 외형을 차용한 분산 원장 기반의 중앙화 시스템에 가깝다.
확장성을 명분으로 탈중앙성을 희생하자는 주장은 얼핏 실용적인 타협안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구조는 위기 상황에서 치명적인 취약성을 드러낸다. 특정 주체의 판단만으로 네트워크가 중단되거나 이미 기록된 거래가 번복될 수 있다면, 그 시스템은 더이상 블록체인으로서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기 어렵다.
비트코인이 여전히 독보적인 신뢰를 받는 이유는 속도와 편의성이라는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탈중앙성과 보안성을 최우선 가치로 고수해 왔기 때문이다. 이렇게 축적된 신뢰는 단순한 처리 속도나 편의성의 개선으로 대체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물론 확장성을 포기하자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확장성은 탈중앙성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추구돼야 한다. 최근 등장한 레이어2나 모듈형 블록체인(분업형 구조)은 거래의 최종 결정과 자산의 소유권 같은 핵심 기능은 최대한 탈중앙적인 기본 네트워크에 맡긴다. 거래를 빠르게 처리하는 일은 별도의 상위 구조에서 담당하도록 나눈 방식이다. 이는 탈중앙성을 최상위 가치로 두고, 기술적인 문제는 그에 맞게 역할을 나눠 해결하자는 전략이다.
결국 블록체인 트릴레마 논의에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탈중앙성이 타협의 대상이 아니라, 블록체인이 존립하기 위한 절대적인 최소 조건이라는 점이다. 이 본질적인 조건이 굳건히 유지될 때에만 우리가 지향하는 모든 기술적 진보도 비로소 그 진정한 의미를 갖게 된다.
오문성 한양여대 세무회계학과 교수 △1960년 부산 출생 △서강대 경영학 학사 △서울대 대학원 경영학(회계학) 석사 △고려대 대학원 법학(조세법) 박사 및 경영학(회계학) 박사 △성균관대 국정전문대학원 행정학 박사과정 수료 △가톨릭대 상담심리대학원 심리학 석사 △서강대 정보통신대학원 블록체인전공 석사 △공인회계사세무사증권분석사 △한국조세정책학회 회장 △한국납세자연합회 명예회장 △조세심판원 비상임심판관 △기획재정부 세제발전심의위원 △해양수산과학기술진흥원 비상임이사 △한국자산관리공사 기업회생지원위원회 위원장 △전 국세청 국세정보공개심의위원회 위원장 △전 국세청 국세행정개혁위원회 본위원 △전 국세청 국세심사위원 △전 한국도로공사 비상임이사 △전 국회미래연구원 이사 △블록체인 유튜브 오문성의 Pick Show 운영 중. (사진=이영훈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