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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대통령 "김구선생 염원, 현실 돼 간다"…백범일지 읽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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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대통령 "김구선생 염원, 현실 돼 간다"…백범일지 읽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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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라디오(FM 94.5) [YTN ON-AI RADIO]
□ 방송일시 : 2026년 1월 9일 (금)
□ 진행 : AI챗봇 "에어"
□ 보조진행: 김우성 PD
□ 출연 : 역사학자 신주백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를 바랍니다.



◆ 김우성 : 네, 이 우렁차고 아주 강인한 목소리. 바로 김구 선생의 실제 육성이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7일, 3박 4일 방중 일정 마무리했는데. 마지막 행선지가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였습니다. 중국 상하이에 해당 구청장도 옆에 같이 동행했는데, 저도 그 장면 많이 봤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왜 갔냐고요? 우리 헌법 전문 혹시 읽어보셨나요? 헌법 여러 번 읽어봤는데 전문에 임시 정부를 우리 정부의 뿌리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법에 나와 있다라 얘기이기도 하죠. 임시정부 청사 건립 100주년, 김구 선생 탄생 150주년입니다. 아주 복잡한 근현대사의 이야기가 있기 때문에 자세하게 설명드릴 수는 없지만. 여러분의 마음에 쉽게 다가올 수 있도록 백범일지를 중심으로 역사의 창문을 열어보겠습니다. 여러 프로그램들에서 사랑받아 온 역사 스토리텔러입니다. 그리고 역사학자로서도 이 분야를 아주 열심히 연구하시는 분이죠. 신주백 박사님 스튜디오에 모셨습니다. 교수님 어서 오십시오.

◇ 신주백 : 예,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 김우성 : 김구 선생 탄생 150주년 이래서 봤더니 1876년에 나셨더라고요. 저보다 101살, 101년 전에 태어나셨던... 탄생이 그렇습니다. 김구 선생의 여러 역사적 경로는 복잡합니다. 당시 국제 정세, 국내 정세 제국주의를 상대로 2차 대전 이후에 여러 상황이 복잡했기 때문인데. 그 이야기를 다 풀 수는 없는데요. 국민들 머릿속에 딱 기억되는 건 <백범일지> 저희 여기서부터 출발해야 되거든요.


◇ 신주백 : 이야기를 여기서부터 출발하는 걸로.

◆ 김우성 : <백범일지>가 뭔가요?

◇ 신주백 : 한마디로 정리하면 '자서전'이죠.


◆ 김우성 : 본인이 쓰신 일기, 이야기인 거죠?

◇ 신주백 : 자서전인데, 책이 크게 보면 '상권', '하권'으로 구성되어 있고. '상권'은 1929년에 집필하셨고. 그때는 상해 임시 정부. 우리 대통령께서 가신 그 임시정부 청사에 근무하실 때 집필하셨고. 그다음에 이후에 임정이 충칭으로 이동하니까 1943년에 '하권'을 집필하셨죠. 그래서 이거를 하나로 합쳐서 둘째 아드님이신 '김신 선생'이 1947년에 <백범일지>라는 이름으로 출판을 한 거죠.

◆ 김우성 : 이 책이 어떤 걸 담고 있고, 어떤 내용이다라는. 외형적인 모습을 얘기를 했는데, <백범일지>를 알려면 당시 상황을 이해를 해야 됩니다. 쓰신 이유도 '유서처럼 썼다. 언제 내가 내 자식들 보고 주변 사람들한테 이 상황과 내 이야기를 전하겠느냐' 이런 의도로 썼다고 하는데 맞나요?

◇ 신주백 : 예. 그래서 큰아들이 김인이고 둘째가 김신인데. 김인, 김신에게 주는 편지라는 이름으로 시작을 해요. 그래서 처음 상권에 쓴 목적은 자식들에게 우리 집안의 가계도로부터 시작해서 나의 행적을 정리하는 내용을 전달한 거죠. 그분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1876년은 우리가 처음으로 개항한 해입니다. 그래서 그때부터의 한국 근대사를 조금만 이해하면, 김구 선생님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가. 절대 한국 근대사의 변두리에서 살아오시지 않았고. 항상 흐름에, 그 긴장의 흐름의 중심에 있었다고 보시면 됩니다.

◆ 김우성 : 맞습니다. 동학농민운동에도 장수로서 참여하셨고요. 그런 면에서 보면 관심 있으신 분들은 굉장히 정말 '민중적 정서, 백성의 편에 서는 힘이 강했구나'라고 보실 수도 있겠지만. 찬탁, 반탁의 소용돌이에서는 약간 연대도 논란이 많죠. 그런 것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복잡하지만 이런 얘기를 해 주셨고. 시작 부분부터 가겠습니다. 1876년 우리가 강제든, 자의든, 타의든 어쨌든 문을 열리게 되는 그 시점부터 탄생해서 살아온 중심부에 있었다고 했는데. 여러 이야기들이 많이 담겨 있습니다만, 역사적 배경들을 봐야 되는데. 상민 그러니까 양반. 그 당시는 조선시대 때니까요. 양민이 아닌 상민의 가족으로 될 수밖에 없었던 여러 얘기를 하면서 그때의 경험에 대한 여러 가지 얘기도 많이 담겨 있는 것 같아요?

◇ 신주백 : 김구 선생의 뇌리 속에는 그런 부분에서의 신분 상승의 욕구는 분명히 있었던 건 사실이고요. 그래서 17세 때 과거도 보셨고. 비록 떨어졌지만. 그 이후에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는 거죠. 다시 말하자면 제도권 진입을 위해서 온몸을 불사르는 삶에서 제도권이 아닌 영역에서의 새로운 흐름, 시대의 제도권과 다른 새로운 흐름 속에서의 몸부림치는 삶을 사는 거죠. 그중에 첫 번째 선택이 '동학'이었고 두 번째 선택이 '기독교'였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래서 기독교를 선택하시면서 김구 선생님이 동학교도였다가, 스님이 되셨다가, 기독교도가 되시는데. 기독교인으로 살면서 애국 계몽 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서셨고. 그런 와중에 신민회 사건으로 들어가시는 거죠.

◆ 김우성 : 독립운동이라는 것을 놓고 말할 때 백범일지에서, '이 부분이 독립운동의 신호탄 같은 이야기다'라고 소개해 주실 수 있는 부분이 있을까요?

◇ 신주백 : 항일과 독립은 성격이 다른데요. 1910년 이전에는 항일운동이 독립운동의 성격은 아니었어요. 우리가 일본의 식민지가 아니니까. 김구 선생의 삶은 동학교도로서의 '치하포'에서 일본인을 살해하는, 조선인을 멸시하고 무시하던 일본인을 살해하는 것으로부터 본인의 의식을 그대로 드러냈고요. 이후에 애국 계몽 운동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어서 '백성이 알아야, 깨달아야 나라의 미래가 있다'는 신념을 갖고 계몽 운동에 매우 적극적으로 뛰어드시는 거죠. 그래서 그런 측면에서 김구의 삶을 이해할 필요가 있겠다 싶습니다.

◆ 김우성 : 여기서 안중근 의사의 가족과의 인연도 만들어지는 측면이 있고요. 이렇게 17세의 과거 급제도 실패하셨고, 동학접주까지. 장수급이죠? 올라갔다가 여러 우여곡절 끝에 거의 사형 당할 뻔했는데, '왕비의 복수였다'라고 해서 특사로 사면이 되고. 탈옥도 하고, 승려로 지내고 여러 과정인데. 특이한 거는 동학이었다가, 기독교였다가, 스님이었다가 이런 얘기를 하시잖아요? 굉장히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유연한 분이셨나 이런 생각도 듭니다.

◇ 신주백 : 젊은 시절의 김구의 특징은 일단 '의협심'이라고 할 수 있죠. 불의를 참지 못하는 성격이 있고. 그거를 속으로 끙 하거나 눈을 한쪽으로 돌리거나, 포기하거나 이런 사람이 아니고. 행동을 해나가는 실천가형이었다는 측면이 하나가 있고요. 그 실천가형 속에서 혼자서 영웅 심리에 빠져가지고 일본말로 독고다이라고 할 수 있는 그런 스타일이 아니고, 계몽을 통해서 사람들과 같이 뭔가를 해보려고 했다는 그런 측면에서 젊은 시절의 김구의 특징을 우리가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김우성 : 예,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소설가 김별아 씨도 백범에 관련된 소설을 쓴 적이 있는데요. '가장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고 스스로 개척했던' 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더라고요? 여러분들도 지금까지의 우리가 <백범일지>의 여러 얘기들, 구체적인 내용들을 저희가 'AI 백범 김구 선생'을 저희가 재현했습니다. AI 방송이니까요. AI 시대에 다 가능하죠. 얘기를 만나볼 거고요. 그전의 맥락으로서는 이런 모습들을 보여드립니다. 모르시는 분들은 '뭐야 스님 됐다가, 기독교 갔다가' 이렇게 생각하실 텐데 끊임없이 본인의 숭고한 목적을 위해서는 다양한 개척과 방향과 확장을 해 나갔다. 그게 낫잖아요? 자기 거 고집하고 있는 것보다는.

◇ 신주백 : 요즘으로 이야기하면 '도전 정신'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니까 요즘 젊은 세대들에게는 낯선 단어인 진취적인 선택, 행동 이렇게라고도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 김우성 : 맞습니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펼쳤던 다양한 선택이었습니다. '백범'이라는 말은 많이들 교과서에서도 배웠을 겁니다. 백정부터 범부까지, 이렇게 알고는 계신데 실제 어떻게 지었는지 <백범일지>에 나옵니다. 저희가 'AI 김구 선생'의 목소리로 들려드리고요. 본격적으로 백범이라는 이름과, 백범일지에 대한 배경을 여쭤보도록 할게요.

★ AI 김구 : "나는 왜놈이 지어준 몽우리 돌대로 가리라 하고, 굳게 결심하고, 그 표로 내 이름 김구를 고쳐 김구라 하고. 당호 연하를 버리고 백범이라고 하여 옥중 동지들에게 알렸다. 이름 자를 고친 것은 왜놈의 국적에서 이탈하는 뜻이오. 백범이라 함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천하다는 백정과 무식한 범부까지 전부가 적어도 나만 한 애국심을 가진 사람이 되게 하자는 내 원을 표하는 것이니, 우리 동포의 애국심과 지식의 정도를 그만큼이라도 높이지 아니하고는 완전한 독립국을 이룰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나는 감옥에서 뜰을 쓸고, 유리창을 닦을 때마다 하나님께 빌었다. 우리나라가 독립하여 정부가 생기거든, 그 집에 뜰을 쓸고 유리창을 닦는 일을 하여 보고 죽게 하소서 하고."

◆ 김우성 : 우리나라 독립 정부가 생긴 거는 '그 집에 뜰을 쓸고, 유리창을 닦는 일을 하여 보고 죽게 하소서' 실제로 임정 가서도 '경비하겠다'라고 했는데. 경무국장을 맡게 되기도 하는데요. '온 국민의 애국심이 나만큼은 돼라'는 뜻으로 백범이라고 지었다고 해요. 이것도 특이합니다. 왜냐하면 요즘 아이돌들은 이해돼요. 예명들을 짓기도 하잖아요. 근데 이거는 무려 100년 전인데... 와 이것도 특이한데요?

◇ 신주백 : 그래서 김구의 스타일이 상당히 독단적인 성격이라 그럴까요? 개인적인 성향이 강한.

◆ 김우성 : 창의적이고 특별하시고.

◇ 신주백 : 특성이 매우 강한 성격의 소유자면 혼자서 행동을 막 하잖아요? 그런 성격이 아닌 측면이 존재하는 게 바로 이 호에서도 드러나는 거예요. 누군가하고 같이 하면서, 자신의 결단력을 드러내려고 하고, 추진력을 밀어붙이려고 하는 힘을 가지려고 하는 게. 그게 갖고 있는 김구 리더십의 굉장히 중요한 특징이라고 보실 수 있죠.

◆ 김우성 : 펄럭이는 깃발로 우뚝 서서 많은 사람들이 따라올 수 있게 하면서도, 옆에는 같이 설 수 있는 터를 만듭니다. 그게 기독교일 수도 있고요. 동학일 수도 있고. 이렇게 다양한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1920년 초에 말씀드린 것처럼 임시정부 경무국장이 되고, 경무국장이 되고 나서도 도산 안창호 선생님과 여러 얘기가 오고 가는데 이것도 기록돼 있어요. 이 얘기 어떤 이야기일지 저희가 듣고요. 이제는 선생님 얘기 길게 듣겠습니다.

★ AI 김구 : "임시정부 경무국장 안창호 동지가 미주로부터 와서 내무총장으로 국무총리를 대리하게 되고, 나는 안 내무총장에게 임시 정부 문 파수를 보게 하여 달라고 청원하였다. 도산은 처음에는 내 뜻을 의아하게 여기는 모양이었으나, 내가 이 청원을 한 동기를 말하자 쾌락하였다. 나는 시력이 없는 허명을 탐하기를 두려워할뿐더러, 감옥에서 소재를 할 때에 내가 하느님께 원하기를. 생전에 한 번 우리 정부의 정청의 뜰을 쓸고 유리창을 갖게 하여 주소서 하는 말을 도산 동지에게 한 것이었다."

◆ 김우성 : 공개된 육성을 바탕으로 저희가 AI한테 학습시켜서 비슷하게 흉내 내다보니까 어색하실 수도 있는데, 어쨌든 전달됐을 겁니다. 백범이라는 이름처럼 끊임없이 자꾸 낮은 곳. 아주 가장 허름해 보이는 일도 하겠다 이런 취지의 말들이 여러 번 등장하는데요. 이 시기가 임시 정부가 어려움을 많이 겪었어요. 내부에서도 첩자를 색출하고 그런 일들이 있었잖아요? 이때의 이야기도 백범일지에 기록이 되어 있는데, 어떤 방식으로 위기를 타개해 나갔는지 역사학자로서 얘기해 주시죠.

◇ 신주백 : 경무국장이라는 직책은 요즘으로 이야기하면 경찰국장이거나, 경호처장. 두 가지 일을 다 하는 겁니다. 경호처장이라는 게 특별한 게 아니고 일본의 경찰이나 밀정들이 독립운동가들을 프랑스 조계 안에서 잡아가려고 할 때, 내지는 정보를 입수하려고 할 때 그거를 차단해 나가는 거였고요. 그러니까 경찰국장이자 경호처장이자 다른 하나가 뭐냐 하면 외교 교섭 국장의 기능을 갖고 있어요. 왜 그러냐면 프랑스 조계 쪽에서 조선인 문제라든지 이런 거에 관련되어서 일본과의 협상이나, 일본 측의 요구나 자신들의 관리 구역 내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김구 선생한테 자문을 구하기도 했습니다. '이 문제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 그만큼 외교적으로도 프랑스 조계 당국하고 그 관계를 원만하게 하려고 하는 측면도 있었다라는. 그래서 경무국장을 김구 선생님이 2년 이상을 하지 않아요. 기간으로 봐서는 짧은데. 그 과정에서 백범일지에서 가장 크게 이야기하는 것은 프랑스 조계 당국과의 외교 관계 문제. 밀정의 진입 내지는 침투를 차단하는 문제 도저히 안 되겠다 싶은, 밀정들은 차단하는 문제 이런 역할을 하는데 본인은 그러다 보니 남에게 노출이 안 되는 게 기본이어야 되잖아요? 그래서 저기 안에서도 본인은 숨어서 지내는 그런 생활을 하고 계시죠? 그런 생활을 할 정도로 본인의 신변에 대한 부분이 전체 경무국장으로서의 역할에 매우 중요하다고 하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만큼 공적인 일에 자신의 개인의 사적인 영역을 희생했다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 김우성 : 그렇게 여러 가지 희생을 하다 보니까 최근에야 그 며느리죠? 큰아들 김인의 부인 안미생 선생의 소재가 파악이 됐습니다. 돌아가셔서 뉴욕에 이미 80세로 묻히셨는데. '왜 떠났냐. 왜 연락을 두절했냐' 놓고도 말이 많더라고요.

◇ 신주백 : 안정근과의 관계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 부분은 1937년에 일본이 상해하고 만주국을 세운 이후에 중국 본토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다가, 37년에 우리가 아는 중일 전쟁을 일으켜서 상해하고 중경 북경 지역을 일으켜서 상해 지역을 공격했을 때. 그때 마침 안 이사님의 부인께서 상해에 사셔서 '가족을 거둬라' 라고 안정근에게 요구를 했고. 그랬을 때 안정근이 가서

◆ 김우성 : 형수는 못 데려오고요?

◇ 신주백 : 형수는 못 데려오고. 김구 선생의 부인을 먼저 이렇게 데리고 오는 일이 벌어지니까 '아 그러면 안 된다.' 안정근의 가족을 먼저 챙겼어야 된다. 그래서 너 다시 갔다 와 이러거든요.

◆ 김우성 : 다시 가서는 또 본인의 가족?

◇ 신주백 : 본인의 가족을 데려오죠. 일설에는 그게 크게 갈라서는 계기가 아니었겠냐라고 하는데. 그 부분이 아니다라고 하는 이야기를 할 만한 근거는 없는데, 동시에 그것만이 전부다라고 말할 만한 또한 근거도 약하다. 그래서 조금 신중합니다.

◆ 김우성 : 예. 해방 전후에 대한민국을 연구하시는 전문가이시기도 하지만요. 굉장히 복잡합니다. 여러분 여기서 저희가 세세하게 다 풀어드릴 수 없고, 풀어드린다 하더라도 판단은 달라지기 때문에 저희가 여기서 이렇게 짧게 다루는 점 이해해 주시고요. <백범일지> 얘기를 하면서 상황을 얘기하는데, 임시 정부를 이끌고 가는 리더십. 경무국장 경험의 리더십일까요? 왜냐하면 여러 사람들이 떠나고 갈등하고 월세도 못 내는 상황에서도 끝까지 백범 선생은 '아니야 이 임정을 지켜야 돼' 이런 입장이신 것 같아요.

◇ 신주백 : 백범이 1876년생이시잖아요. 우리 사회의 연공서열 관념에서 보면, 백범이 인정이 생긴 지 8년 만에 처음으로 백범이 국무령에 취임을 하시는데. 그때 당시에 백범의 나이가 노장층에 속하는 나이가 아니에요. 리더십으로 따지면 이동영 선생님도 있고, 그다음에 이시영 선생도 있고. 다 7살 위였거든요? 나이로 따지면 도산 안창호 선생도 2살뿐이 안 어리고. 그러니까 국제 경험이나 이런 걸 따져보면, 학식으로 따져보면 조수황 선생도 있어요. 그 당시에 일본에서 대학을 졸업할 학력이면 대단한 거잖아요? 왜 김구가 그런 역할을 했냐라는 거죠. 며느님이 어느 날 시아버지인 이시영 선생한테 '아버님 연세도 더 있으시고. 경륜도 더 있으신 분들도 많은데 왜 김구 선생님이 그렇게 지도자로 뽑히셨습니까?'라고 했을 때 이시영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있어요. '독립운동은 지식만 갖고는 안 된다. 독립운동가들 중에도 성질이 다양할 수 있다.' 쉽게 말하면 성질이 착한 사람도 있지만 악한 사람도 있는데, 이런 사람들을 다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 김우성 : 통솔 리더십.

◇ 신주백 : 관리의 부분을 이야기하는 거잖아요. 지식은 어떻게 보면 가치의 영역이고, 독립운동론의 이야기인 거고. 그리고 조직 속에서 그걸 어떻게 소화해 나가고 움직여 나갈 것인가에 대한 관리의 영역의 부분에서는 김구가 그 위의 연장자들보다 훨씬 나았다. 그러다 보니까 우리 원로 독립운동가들이 이건 학계에서도 잘 주목하지 않는 거예요.

◆ 김우성 : 근데 정말 특별한 얘기입니다.

◇ 신주백 : 독립운동가들이 그래서 우리가 합의를 한 거다. 독립운동은 이론보다 실천이 중요한데, 이런 다양한 사람들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 우리 비슷한 연배에서는 김구만한 사람이 없다. 그래서 김구 선생이 리더가 된 거다.

◆ 김우성 : 백범일지를 오늘 자녀와 함께 읽으실 분들은 읽으시면서 '이게 무슨 일이야? 이상하네' 그러지 마시고요. 신주백 교수님 말씀하신 내용을 토대로 보시면 아실 겁니다. 이렇게 추진력 있게, 통솔력 있게, 실천적으로 뭔가 결과를 만들어내는 그게 필요한 시대였잖아요? 그 시대가 그런 상황인데. 해방 직후. 그 전후, 그 이후에 한국 전쟁이 벌어지는 상황까지를 보면 조금은 이승만 초대 대통령 쪽과 손을 잡고, 북한의 공산주의 세력과 적대를 하면서 행동을 취했던 적도 있었지만. 결국 김규식 선생이나 이런 분들과 함께 통일 정부, '무조건 힘을 합쳐야 돼. 한 덩어리여야 돼' 이걸 강조하잖아요?

◇ 신주백 : 예. <백범일지>에 나오지 않는 부분이죠. 왜 그러냐 하면 <백범일지>는 19041년, 42년경 정도까지만 나오고. 43년에 집필하셨으니까. 그 이후에 백범의 생각을 알 수 있는 내용은 백범일지에는 없지만, 이후에 선택 지점에서 백범 선생이 반탁 진영에서 반공의 세력들을 결집을 해서 뭔가를 시도하려고 하는 과정에 정치적으로 이승만한테 진 거죠. 요즘의 정치적 셈법으로 보면 진 거죠. 정치적으로 졌지만. 이후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래 독립운동의 이상이었던 하나의 민족의 하나의 국가라고 하는 독립운동 정신을 구현하는 과정에서 이 상태로 흘러가서는 안 된다라고 생각해서, 1948년에 남북 연속회의에 참여하시는 거고. 그런 참여하는 과정에서 하나의 민족 하나의 독립 국가를 꿈꿨던 것이죠.

◆ 김우성 : 그게 결국은 제 해석이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역사학자가 앞에 계시는데. 어떤 정치 세력이나 특정 리더십의 이익이 아니라 전체 백성을 가장 고려한 태도였나라고 해석할 수 있나요?

◇ 신주백 : 본인의 정치적 입지를 물론 생각했을 수도 있겠지만, 다른 한 각도에서는 민족을 앞세우지 않으면 그 문제는 풀 수 없습니다. 남북의 문제는 이데올로기 영역의 문제이지만 남북의 문제를 이데올로기 영역에서 벗어나는 것은 민족의 논리를 가지고 설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것은 현재까지도 마찬가지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 김우성 : 예. 공산주의냐 자본주의냐 이전에 민족의 문제는 굉장히 어렵고, 양세봉 장군 같은 분 남북 동시에 독립운동가로 칭송하거든요? 그 배경을 이해해야 된다. 안중근 의사도 마찬가지고요. 청취자님이요. '초등학교 공부방 선생인데 잘 듣고 있습니다. 백범 김구 선생님 잘 새겨듣도록 하겠습니다.' 예, 아주 귀한 시간이고요. 신주백 교수님 저희가 모시기 어려운 데 모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백범일지>의 내용과 이거를 저희가 여기서 줄줄 소개해 드릴 수는 없고, 오늘 대략적인 포인트를 짚었고. 끝으로 <백범일지>의 문화를 강조하는 말을 되새겨요. '백범 김구 선생님의 꿈대로 됐다' 이러고 제가 칭송하잖아요. 이 부분은 어떻게 설명해 주시겠어요?

◇ 신주백 : '시대가 일지를 소환했다'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 김우성 : 시대가 일지를 소환했다?

◇ 신주백 : K-컬처 내지는 여러 가지 K가 붙여지는 여러 가지가 한국이 세계와 관계 속에서 새로운 아젠다 내지는 새로운 비전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다 보니. 김구 선생님의 문화 강조 내용이, 문화에 관한 언급 내용이 주목을 받는 게 아닌가. 다만 김구는 문화 강국을 말한 게 아니에요. '문화의 힘'을 말한 겁니다. 문화 강국 논리로 가게 되면 부국강병 논리로 가게 돼요. 김구의 '문화의 힘'은 교류. '사람과 사람이 어려울 때 힘들 때 접촉해서 교류의 힘이 무어다? 그건 문화다.' 그 문화가 어디로 가야 되느냐? 인류로 가야 된다라는 거를 말한 것이지, 그걸 가지고 문화강국론으로 해석하면 너무 적게 해석하는 거다.

◆ 김우성 : '우리 말 다 써', '우리 노래만 들어' 이거 아니잖아요?

◇ 신주백 : 독립운동가들이 내세우는 중요한 정신 중의 하나가 독립 플러스 세계 평화, 인류평등이었어요. 안중근도 그랬고요. 임시정부 헌장에도 그게 나오고요. 건국강령에도 나오거든요. 그 연장선상에서 이러한 발언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 김우성 : 예 지금의 K-POP도요. 10대의 정서와 마음을 가장 잘 대변하고 있는 거지 한국을 너무 사랑한다. 이거 약간 뉘앙스가 다르거든요. 물론 그렇게 해석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백범의 문화가 드높은 나라, 인권. 그런 우리나라가 제일 세 이거 아니라는 거. 다시 한 번 얘기 드리고요. 끝으로 박사님 저희가 백범을 우리의 근현대사의 노력을 어떻게 기억해야 될지 정리 말씀 부탁드립니다.

◇ 신주백 : 굉장히 당위적인 이야기일 수도 들릴 수도 있는데, 시대의 과제가 무엇이었고. 그 속에서 나는 어떤 식의 선택을 하고, 삶을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선택의 부분에서 백범은 무엇을 선택했는가를 보는 게. 그리고 어떤 삶을 살아왔는가를 보는 방식이 하나가 아닐까. 역사적 인물에 관한 부분은 다 그렇지만 보통 사람들도 자기가 처한 환경 속에서 어떤 선택을 하잖아요? 그리고 그런 연장선상에서 동일한 사고 방식과, 동일한 선택 방식으로 백범을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 나의 평범한, 나와 역사의 위인인 김구의 낙찰을 너무 크게 고민할 필요는 없다.

◆ 김우성 : 지금 시대에 여러분들 <백범일지>를 다시 꺼내 보십시오. 동학에서, 스님에서, 기독교에서, 우에서, 좌우 합작에서 이렇게 계속 오는 과정에 힘이 뭔지를 한번 보라. 이 얘기신 것 같습니다. 시간이 짧아서요. 여러분 지금도 많은 분들이 '민주주의를 배우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문자를 보내주고 계신데, 저희가 신주백 교수님 어렵게 모셨는데요. 한 번 더 도전해 보겠습니다. 오늘 귀한 말씀 감사드립니다.

◇ 신주백 : 네, 감사합니다.

◆ 김우성 : 네 지금까지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신주백 박사님이셨습니다.

YTN 김세령 (newsfm0945@ytnradi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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