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몽유도원' 제작발표회 [사진=연합뉴스] |
한쪽에서는 오래된 노래가 다시 불리고, 다른 한쪽에서는 전통의 소리가 새로운 무대를 향해 움직인다. 방탄소년단의 ‘달려라 방탄’이 글로벌 차트 상위권에 재등장한 날, 국악을 전면에 내세운 창작 뮤지컬 ‘몽유도원’은 해외 시장을 향한 첫발을 내디뎠다. 장르는 다르지만, 이 두 장면은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한국 콘텐츠가 세계와 만나는 방식이 분명히 달라지고 있다는 신호다.
‘달려라 방탄’은 신곡이 아니다. 이미 여러 차례 소비됐고, 발매 시점의 화제성도 지났다. 그럼에도 이 곡이 다시 선택받았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K-팝이 더 이상 ‘신곡 경쟁’만으로 움직이지 않는 단계에 들어섰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노래는 발매와 동시에 소진되는 상품이 아니라, 팬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가 다시 불리고, 다시 공유되며, 다른 맥락에서 재소비된다. 한 번의 히트보다 여러 번의 선택이 성패를 가르는 구조로 시장이 이동하고 있다.
이 현상은 해외 콘텐츠 시장에서도 이미 확인된 흐름이다. 스웨덴 그룹 아바의 음악이 수십 년 뒤 뮤지컬과 영화로 재탄생하며 세대를 건너 소비된 사례가 대표적이다. 문화산업에서 자주 인용되는 말처럼 “히트는 우연일 수 있지만, 반복 소비는 설계의 결과”다. BTS의 재등장은 K-팝이 이제 ‘순간의 유행’을 넘어 ‘되돌아오는 콘텐츠’의 영역으로 진입했음을 보여준다.
같은 시기 주목받은 창작 뮤지컬 ‘몽유도원’은 전혀 다른 출발선에 서 있다. 국악을 전면에 내세운 공연은 여전히 국내에서도 쉽지 않은 선택이다. 이 작품이 주목받는 이유는 전통을 설명하려 들지 않는다는 데 있다. 국악의 형식이나 역사에 대한 해설 대신, 서사와 감정의 흐름 속에 소리를 배치했다. 관객은 이해하려 애쓰기보다 이야기를 따라가며 자연스럽게 전통의 소리에 닿는다. 전통을 과거의 유물로 보존하는 대신, 현재의 무대 언어로 다시 쓰는 방식이다.
이 접근은 해외 공연 시장에서도 통하는 전략이다. 일본의 노(能)나 중국의 경극이 현대적 연출과 결합해 세계 무대에 오르는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전통은 보호의 대상에 머물 때보다 움직일 때 오래 살아남는다. ‘몽유도원’의 시도는 전통을 지키는 선택이라기보다, 전통을 작동하게 만드는 선택에 가깝다.
이 두 사례는 겉으로 보면 전혀 다른 성공처럼 보인다. 그러나 질문은 하나로 수렴한다. 무엇이 다시 불릴 수 있는가, 무엇이 다른 무대로 옮겨가도 작동하는가. 과거 K-콘텐츠의 성과는 얼마나 빠르게 확산됐는지로 평가됐다. 이제 기준은 달라졌다. 화제가 지난 뒤에도 남는지, 시간이 흘러도 다시 찾게 되는지가 핵심 지표가 됐다. 세계 시장은 점점 더 빠른 유행보다 오래 작동하는 콘텐츠에 반응하고 있다.
이 변화는 문화산업의 수출 방식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신작 위주의 단발 수출, 장르별로 분절된 소비 구조는 한계에 다다랐다. 이제는 하나의 콘텐츠가 음악에서 공연으로, 공연에서 영상과 플랫폼으로 옮겨가도 작동할 수 있는지를 처음부터 설계해야 한다. 한 번 팔고 끝나는 콘텐츠가 아니라, 다시 선택받는 구조를 갖춘 콘텐츠가 경쟁력을 갖는다.
BTS의 노래가 다시 불리고, 국악의 소리가 새로운 무대로 향하는 장면은 우연이 아니다. 한국 문화산업이 ‘새로운 것’보다 ‘다시 찾게 되는 것’의 가치를 학습하고 있다는 징후다. 더 많은 히트를 쌓는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이제 관건은 하나의 콘텐츠를 얼마나 오래 작동하게 만들 수 있느냐다. K-콘텐츠의 변화는 이미 그 지점에서 시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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