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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이 지워진들 [크리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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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이 지워진들 [크리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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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림희영, 새는 없다, 2025

우주+림희영, 새는 없다, 2025




강혜승 | 미술사학자·상명대 초빙교수



어제와 크게 다를 것 없는 오늘이지만 해가 바뀌니 새것을 찾게 된다. 달력도 수첩도 바꿔가며 마음을 다잡는 새해 1월. 미술도 새것을 말해야 할 듯해 뉴미디어아트를 꺼내 본다. 실토부터 하면, 새로울 건 없다.



1960년대 미디어아트에서 출발했다. 전기로 작동하는 티브이(TV)가 매체로 등장한 미술을 시작으로 미디어아트라 불렀다. 30년쯤 지나 아날로그가 디지털로 전환되자 미디어아트 앞에 새롭다는 수식을 붙여 뉴미디어아트라 불렀다. 매체는 티브이에서 컴퓨터로 이동했다. 디지털아트라고도 한다. 그로부터 또 30년쯤 지났다. 인공지능(AI) 기반 미술이 쏟아진다. 더는 새롭지 않으니 이제는 뉴미디어아트 그 이후를 말한다.



새해에 어울릴 만한 신작으로 ‘새는 없다’라는 작품을 소개할까 한다. 고운 모래사장 위에 새 한마리가 걷고 있다. 알루미늄과 스테인리스 몸체다. 나름 깃털도 달렸지만, 날지는 못한다. 한걸음씩 걸으며 발자국을 남긴다. 미세하게 흔들리는 발걸음이 위태롭다. 눈앞 플라스틱 꽃 한송이가 함께 흔들린다. 발자국을 꾹꾹 남기는 새 뒤로 제설차를 닮은 기계가 일정 거리로 따라붙는다. 칫솔 달린 기계는 새가 남긴 발자국을 꼼꼼하게도 닦아낸다. 그렇게 남기려는 자와 지우려는 자가 원을 그리며 빙빙 돈다.














지난 연말 전시 ‘언폴드 엑스’(Unfold X)에서 만난 우주+림희영 팀 작품이다. 기술 기반 삶을 예술로 탐구하겠다는 취지로 매년 열리는 아트앤테크 대표 전시이니 최신 경향이라 해도 좋겠다. 말하는 에이아이 로봇만으론 큰 감흥 없다 느낄 만큼 스펙타클한 쇼에서 어쩌면 가장 로우테크한 동력 장치로 움직이는 설치 앞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머물렀다. 대롱거리던 장미 한송이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스 신화 속 시시포스(시지프)를 떠올렸다. 영리한 왕 시시포스는 신들을 골탕 먹인 죄로 높은 바위산 정상까지 거대한 바위를 굴려 올리는 형벌을 받는다. 애써 올려놓으면 제 무게로 다시 산 밑으로 떨어지는 바위를 끝도 없이 올려야 했던 시시포스는 사실 신화 속에만 살지 않는다. 알베르 카뮈는 1942년 글 ‘시지프 신화’에서 “오늘날 노동자들도 그 삶의 매일매일을 같은 일에 종사한다”고 썼다.



무익하고 희망 없는 일보다 더 무서운 형벌은 없다고 신들은 생각했겠으나, 카뮈는 되레 행복한 시시포스를 상상했다. 혹여 신들이 용서해 줄까 희망을 품게 되면 좌절하는 매일이 괴롭겠지만, 헛된 희망을 버리면 하산길이 오늘은 괴로워도 내일은 즐거울 수도 있다는 얘기다. 산들바람 불어 땀을 식혀주는 날도 있을 테고, 고개 내민 꽃 한송이에 미소 짓는 순간도 오지 않을까. 시시포스가 행복을 느낀다면 신의 형벌은 벌이 아니게 된다.



다시 작품으로 시선을 옮긴다. 꽃을 좇는 새의 모습이 영락없는 우리다. 눈앞의 꽃을 딸 욕심으로 좇는 걸음은 헛되겠지만 예쁜 꽃을 바라보는 행복으로 걷는다면 발자국이 지워진들 무슨 상관일까. 다져진 모래에 새로 찍는 발자국이 더 재밌다 느낄 터다. 그러고 보니 새를 닮은 기계 앞에서 삶의 의미를 찾고 있다. 연말 어느 시상식에서 보듯 플라스틱 꽃다발로 축하를 전하는 요즘이다. 카뮈도 말했지만 삶은 부조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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