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귀식 선생님의 빈소.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제공 |
‘지금 아이들은 울고 있다./ 지금 아이들은 절망하고 있다./ 지금 아이들은 꿈을 잃어가고 있다./ 지금 아이들은 숨도 쉬지 못하고 있다.// 공부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공부, 공부로 날이 새고 해가 진다./ 낮도 없이, 밤도 없이/ 낮에는 학교로, 밤에는 학원으로/ 강제 학습 노동에 정신도 육체도 시들어 가고 있다./ 살아도 공부, 죽어도 공부. 그러면서 공부를 놓치고 있다.// 공부를 위해 청춘도 버리고, 목숨도 버리는 이 끝나지 않는 절망의 행렬’
김귀식 선생님이 2024년 9월3일에 쓴 시 ‘아이들의 공부할 자유를 위하여’의 일부이다. 세상에 대한 무한한 호기심으로 스스로 배우고 성장하고 기쁨을 누릴 권리를 거세당한 채 강요된 공부에 쫓기며 살아가야 하는 우리 아이들을 향한 절절한 안타까움이 담겼다. 그런 마음으로 91살까지 잘못된 교육을 바꾸자고 호소하고 실천한 교육자 김귀식 선생님이 지난달 31일 세상을 떠났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이른바 ‘불법 노조’였던 1997년에 최초의 현장 교사 위원장(제7대)으로 선출되어 합법화를 이끌어 낸 고인은 학교 교단에서는 물론 퇴임 후 돌아가실 때까지 한평생을 참된 교육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며 살다 가셨다. ‘인간에게 교육은 무엇이어야 하는지’, ‘사람이 사람답게 성장하게 하려면 어떤 교육이 필요한지’, ‘참다운 교육이 실현되게 하려면 교사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국어 교육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에 대해 실천적이고 구체적인 궁리를 하면서 몸소 행동으로 옮겼다.
1999년 8월에 서울 중화고에서 퇴임한 선생님은 2002년 서울시교육위원 선거에서 당선되어 필자와 함께 2006년까지 교육위원회 의정활동을 했다. 40대 초반이었던 필자는 70살을 내다보는 선생님을 모시면서 ‘깨감자두’ 교육 철학과 ‘화쟁(和爭) 정신’ 등 많은 지혜를 배웠다. 특히, 국어교사로서의 실천 경험은 깊은 감동과 공감으로 다가왔다. 전교조 합법화를 이끈 ‘투쟁 지도자’이기에 앞서 ‘진정한 교사’ 김귀식을 발견할 수 있어서다.
16년이 지난 2022년 8월27일 어느 음식점에서 선생님을 특별히 만났다. 교사로서 살아낸 자랑스럽고 가슴 뿌듯한 경험담을 자세히 듣기 위해서였다. 막걸리잔을 기울이며 4시간 가까이 들었던 선생님의 열정적인 교육 이야기를 필자는 ‘깨감자두’ 교육이라고 정리해 보았다. ‘스스로 깨닫게 하는 교육’, ‘감동이 함께하는 교육’, ‘자아 발견을 돕는 교육’, ‘두레(협동) 정신을 배우게 하는 교육’이 선생님의 평생 화두였고, 직접 실천하면서 더 많은 학교는 물론 사회교육, 평생교육에서까지 실현되기를 갈망해 오셨다는 것이다.
고 김귀식 선생님의 추모식. 강성란 교육희망 기자 제공 |
1946년 해방된 나라의 초등 5학년이던 시절, 동네 친구들 몇명이 함께 자발적으로 공부하는 모임을 만들어 공부할 질문을 만들고 스스로 탐구했던 이야기(훗날 ‘동촌 학당’이라 이름 붙임), 학생들 앞에서 자신이 만든 ‘교사 10계명’ 실천을 약속하고 그것을 지키지 않으면 항의해도 좋다고 했던 이야기, 틀에 박힌 국어 공책 대신에 학생마다 좋아하는 문구로 이름 붙인 ‘자유 노트’를 만들게 하고 질문을 만들고 탐구하거나 자기 생각을 쓰게 했던 이야기, 상계고에서 보충수업을 거부하는 대신 학생들 스스로 시국 관련 토론을 하며 시대 정신을 배우는 ‘벼리반’을 운영했던 이야기, 1990년대 초 천주교정의구현 전국사제단과 함께 명동성당에서 ‘빛두레 학교’를 열고 교장을 맡으면서 김대중, 김근태, 문익환, 리영희 선생 등의 명사 초청 강연회를 열었던 이야기, 수백쪽 설명이 아닌 한줄로 표현하는 과정에서 철학이 담긴다며 매일 한줄씩 속담이나 격언처럼 그 날의 화두를 쓰자는 ‘한줄 쓰기 운동’ 이야기…, 선생님의 이야기에 담긴 경험과 철학은 빛바랜 과거의 교육론이 아니라 모든 학교와 사람들이 함께 하는 곳곳에서 바로 지금 실현해야 할 이 시대의 교육론이었다.
김귀식 선생님은, 교사는 진실을 가르치는 자유인이며, 교실은 역사의 법정이자 미래의 실험실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런 점에서, 역사적 진실과 시대 정신을 깨닫게 하는 ‘의식화 교육’은 교사가 해야 할 당연한 책무이며, 낡은 과거의 잣대로 미래를 향한 교육을 통제하려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교육의 본질은 학생들의 머리에 지식을 집어넣는 것이 아니라 ‘질문하는 법을 배우게 하는 것’이라며 잘 묻는 아이가 잘 아는 아이라는 믿음으로 좋은 질문을 하게 하자고 했다. 그러기 위해서, 교사는 지식을 주입하는 사람(instructor)이 아니라 학생들이 질문하고 토론하고 협력하며 스스로 문제를 풀도록 촉진하는 역할(facilitator)을 해야 한다고 했다.
선생님은 과도한 선행학습으로 어린 묘목을 뽑아 올리는 ‘속성 교육’을 버리고 스스로 깨달으면서 자기의 속도로 자연스럽게 성장하게 하는 ‘숙성 교육’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생들을 점수로 표현하고 줄 세우는 일은 결코 하지 말아야 한다며, 자기의 생각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정답을 고르는 공부를 강요하는 대입 수능 시험을 폐지하는 것이 소원이라고 했다.
선생님이 대한민국 교육에 던진 화두와 교육론이 민들레 홀씨로 널리 퍼지고, 뜨거운 불꽃으로 타오르기를 기원해 본다.
안승문/교육대개혁국민운동본부 정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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