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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호 칼럼] ‘정치적 이성’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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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호 칼럼] ‘정치적 이성’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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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사전투표 첫날인 2022년 5월 27일 서울 중구 소공동 주민센터에 설치된 사전투표소에서 유권자들이 투표하기 위해 길게 줄을 서 있다. 성동훈 기자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사전투표 첫날인 2022년 5월 27일 서울 중구 소공동 주민센터에 설치된 사전투표소에서 유권자들이 투표하기 위해 길게 줄을 서 있다. 성동훈 기자



1년 전 새해는 새롭지 않았다. 비상계엄이 몰고 온 불안이 유령처럼 배회했고, 그만큼의 열정들이 행동으로 분출했다. 해가 바뀐 지금 내란 청산은 진행형이며, 시민이 지켜낸 민주주의 발자국들은 선명한 흔적을 새긴다. 하지만 묻게 된다. 한국 사회는 “역사가 인간 가까이 올 때 사회 내부에서 일어나는 온갖 어리석음과 병적 징후들”(레비스트로스)을 뒤로하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가.

지방선거가 있는 올해는 정치적으로 중요한 해다. 민주화 출발선이 된 1987년 대통령 직선부터 지난해 총선까지 한국 민주주의는 선거를 통해 불의를 교정하고 민주주의를 진전시켜왔다. ‘선거 민주주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해가 ‘내란 이후 1년’의 국가·정치 정상화 시간이라면, 올해는 지속 가능한 한국 민주주의 토대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지방선거는 정파들엔 ‘근본 선거’라 할 수 있다. 광역단체장부터 시군구 풀뿌리 의원까지 약 4000명 정치 자원들이 충원된다. 한때 ‘폐족’으로 몰렸던 86·민주당 정치가 2010년 지방선거에서 반전의 언덕을 마련하고 승승장구했듯 정파들의 인적·물적 토대가 된다.

그래서 올해 선거는 ‘정치 이성’이 지배하는 선거였으면 한다. 정치인들이 ‘이겨야 한다’는 열정으로 무장하고 나설 때, 유권자들은 ‘잘해야 한다’는 이성으로 마주할 수 있기를 바란다.

정치 이성은 ‘무엇이 옳고 효율적인가’를 따지는 ‘합리성’이 핵심이다. 본질은 ‘공공선’이지만 제도와 현실의 조건 또한 살펴야 한다. 현대 민주정의 목표는 정치적 대립과 극단을 통제하고 제도가 기능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적 옳음과 지혜를 씨줄 날줄의 사각틀에 넣어 꼼꼼히 살필 때 정치 이성은 현실적으로 작동한다. 이를 ‘정치 이성의 사각틀’이라 해볼 수 있을 것이다.

옳고 지혜로운 첫 칸의 경우 공공선이 제도화된다. 국민건강보험이 대표적이다. 옳지만 지혜롭지 않으면 국가·사회 의제는 실패하거나 미완성으로 남는다. 지난 정부의 의대 증원이 단적인 예다. 파당 정치를 심화시키는 세 번째나, 공익을 사유화해 정치를 파괴하는 마지막 칸은 언급할 가치조차 없다.


정치인의 행위를 정치 이성의 사각틀에 넣은 결과는 유권자에게 지도가 된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 이성이 작동해야 할 대상은 결국 여야의 ‘내란 이후 1년’이다.

여당의 검찰·사법·언론 3대 개혁법은 정치적으로 그르지 않았으나, 특검을 제외하곤 미욱한 것이 되었다. 윤석열의 2심부터 내란전담재판부가 가동되게 됐지만, 그동안 ‘위헌’ 논란과 함께 여당에 폭주 이미지를 더하는 이유가 되었다. 언론 입틀막 비판을 받은 정통망법 개정 또한 마찬가지다. 경향신문 신년 여론조사에서 서울에서 야당 후보들 당선을 기대하는 비중이 11%포인트 높은 결과는 ‘견제 심리’ 외에 달리 설명할 수 없다.

‘윤 어게인’ 극단 세력을 지지 기반으로 끌어들인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의 공학은 정치적으로 바르지 않으나 영리한 것으로 비쳤다. 하지만 지금은 그들 세력과 지방선거 승리를 희구하는 당내 요구 사이에서 몹시 곤궁한 처지가 됐다. 정치적 지혜와 달리 사적 이익의 지혜로움은 그저 영악함에 불과하다.


지금 정치가 여도 야도 아둔하다 비난하려는 뜻이 아니다. 정치인의 행위가 더 지적이길 바랄 뿐이다. 정치의 문제는 언제나 옳음보다 지혜의 부족에서 생겨나기 때문이다.

정치의 언어가 절대명제로 뒤덮일 때 몹시 사나운 시간이 된다. 윤리·도덕을 세우려 그 시대 가능한 선을 합의해내는 게 정치이기에 본질적으로 절대적이어선 안 된다. 특히 진영의 ‘정치적 정념’이 들끓는 선거 공간은 사나운 말들이 한층 가속하는 공간이다.

한국 민주주의를 이룬 선거 혁명들은 열정만으로 성취되지 않았다. 한국 선거 민주주의에서 정치 이성은 절묘한 단죄와 균형을 의미한다. 그래서 유권자들이 정파들의 정념에 휘둘리지 않았으면 한다. 대신 성찰이 중심을 잡는 지방선거이길 바란다. 부끄러움은 곧 성찰이고, 이는 변화를 품는다.


“지금 표면적으로 어느 집단이 승리하든 우리 앞에 놓인 건 여름의 만개가 아니라 얼음이 뒤덮이고 어둠과 고난이 가득 찬 극지의 밤이다.”

정치철학자 막스 베버가 진보적 학생들의 초청 강연에서 들려준 반동의 시대에 대한 예언 같은 염려다. 1차 세계대전 패전 직후 독일, 정치의 ‘인과율’이 방정식처럼 명료하지 않던 혼돈의 시절이다. 이후 독일의 비극적 역사를 아는 후대인들로선 모골이 송연하다.

김광호 논설위원

김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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