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통일교) 한학자 총재와 정원주 비서실장 등이 ‘법조 로비’ 명목으로 억대 자금을 횡령한 범죄 혐의를 지난 2018년 인지하고도 수사하지 않은 사실이 확인됐다.
통일교가 낸 고소장에 ‘법조 로비’ 명목 ‘횡령’ 자백
2일 뉴스타파 취재를 종합하면, 통일교는 지난 2018년 자신들의 재산 소송을 총괄했던 인사와 법적 분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스스로 ‘횡령’ 혐의를 실토했다.
통일교는 문선명 초대 총재 사망을 전후로 부인 한학자 총재와 3남 문현진 UCI재단 이사장, 7남 문형진 씨 세력으로 분화됐다. 특히 문현진 이사장이 통일교에서 축출되는 과정에서 재산 상당 부분을 들고 나갔고, 통일교는 문 이사장 측 재산을 회수하기 위해 장기간 재산소송을 벌였다. 그러나 통일교는 여의도 파크원 부지 사업권, 서초 반포동 센트럴시티 등 여러 이권이 걸린 굵직한 소송에서 대부분 패소했다.
2018년 9월 14일 통일교가 서울중앙지검에 제출한 박 모 씨에 대한 고소장.
그런데 뉴스타파가 입수한 고소장에는 눈에 띄는 부분이 있다. 통일교가 법원·검찰 등 ‘법조 로비’ 명목으로 박 씨에게 수억 원을 건넸다는 내용이다.
피고소인 박OO은 위와 같은 배임행위와 별개로, 고소인(통일교)에게 '고소인의 소송과 관련하여 판사, 법원 직원 기타 소송관계자들을 관리하기 위해 돈이 필요하다'는 허황된 이유를 들며 돈을 요구했으며, 이에 고소인은 피고소인 박OO에게 4회에 걸쳐 합계 7억 7천만 원의 특별지원금을 지급하였습니다.
- 통일교의 박OO 등 고소장 일부 (2018. 9. 14.)
통일교가 2018년 9월 14일 서울중앙지검에 제출한 박 모 씨에 대한 고소장 일부.
통일교가 박 씨를 고소하는 과정에서 횡령 범행을 자백한 셈이다.
횡령 수사 대상은 ‘한학자 총재와 측근들’
고소장에 첨부된 증거자료에는 3장의 ‘현금수령증’이 담겨 있다. 문건의 제목은 ‘UCI소송 관련된 특별지원금 수령건’으로 문현진 이사장을 상대로 벌인 소송과 관련한 자금을 건넸다는 뜻이다. 현금 수령인란에 박 씨, 결재 라인에 통일교 한학자 총재의 최측근인 비서실장 정원주 씨, 부실장 윤영호 씨의 사인이 확인된다. 통일교 총재 비서실에서 직접 법조 로비 명목으로 박 씨에게 현금을 건넨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통일교 총재 비서실이 재산소송을 담당했던 박 모 씨와 작성한 현금수령증.
통일교는 3회차 지원금 명목으로 2017년 4~5월 경 3억여 원을 박 씨에게 추가로 건네, 총 7억7000만 원의 현금을 법조 로비 자금으로 썼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통일교는 2023년 4월 돌연 고소를 취소했고, 한 달 후 검찰은 ▲통일교가 고소를 취소한 점 ▲박 씨가 실제 법원·검찰을 상대로 로비한 증거가 부족한 점을 들어 박 씨를 불기소 처분했다.
통일교의 박 모 씨 고소 사건에 대한 2023년 5월 2일자 서울중앙지검의 불기소처분 결정서 일부.
결국 수사기관이 통일교가 박 씨에게 건넨 법조 로비 명목 자금의 횡령 혐의 수사에 착수하면, 수사 대상은 자금 집행을 승인했다는 취지의 진술서를 낸 한학자 총재와 현금수령증에 사인한 측근 정원주 비서실장, 윤영호 부실장이다.
통일교는 “이미 수사기관인 검찰과 경찰이 무혐의 판단한 건이라 드릴 말씀이 없다”고 해명했다.
시민단체 정의연대는 지난 2024년 3월 한학자 총재와 측근들을 특정경제가중처벌법상 횡령·배임·뇌물 등 혐의로 고발했지만, 경기북부경찰청은 지난해 4월 불송치 처분을 내렸다.
그러나 투기자본감시센터·무궁화클럽·정의연대 등 시민단체들이 지난해 5월 이 사건을 다시 고발했고, 현재 경기북부경찰청이 재수사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통일교는 경찰 재수사에 대해 “수사에 협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검찰, 한학자 횡령 의혹 알고도 7년 동안 수사 안 해
문제는 검찰이 이 같은 사실을 알고도 한학자 총재와 측근들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통일교가 횡령 자백이 담긴 고소장을 서울중앙지검에 접수한 날은 2018년 9월 14일. 약 7년 3개월이 지나도록 검찰이 통일교 수뇌부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는 소식은 없다. 통일교 측도 “서울중앙지검에서 이 내용에 대해 조사 받은 것은 없다”고 설명했다.
검찰이 박 씨를 불기소한 시점도 검찰이 통일교를 봐주려 한 것이 아닌지 의심하게 하는 대목이다. 통일교는 고소 약 4년 7개월이 지난 2023년 4월 4일에서야 박 씨에 대한 고소를 취소했다. 그런데 검찰은 통일교의 고소 취소 약 한 달 만인 2023년 5월 2일, 기다렸다는 듯 박 씨를 불기소 처분했다.
일각에서는 검찰이 통일교를 봐준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정의연대 김상민 사무총장은 “검찰이 통일교가 박 씨를 고소하면서 드러난 범죄 혐의에 대해 인지수사를 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검찰이 통일교를 봐준 것 아닌지 의심된다”고 말했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사기 사건의 편취범위를 확인하기 위해 금원 사용처에 수사를 집중했고, 따로 로비자금이 어떻게 조성됐는지는 조사하지 않았다"며 "고소사실 자체로 즉각적으로 불법이 드러나는 상황은 아니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뉴스타파 전혁수 jhs0925@newstapa.org
